다시 ‘마당’에서 펼쳐질 ‘우리’의 이야기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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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당’에서 펼쳐질 ‘우리’의 이야기를 위하여
  • 채이현 인턴기자
  • 승인 2023.09.01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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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대 사람들]
- 미추홀학산문화원 박성희 사무국장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시대다.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들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관계에 매이지 않으며, 자기 보존을 위한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믿는다. 인간이 느끼는 고독을 완전히 타인이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고독이 아닌 고립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예전에는 살인 사건이 나면 신문의 톱기사를 장식하곤 했다. 이제 너무나 익숙해진 타인의 불행에 사람 하나 죽는 것쯤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나의 불행에도 사람들은 아무 관심이 없다. 모두가 모두에게 무관심하고, 진심을 다해 개입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어김없이 무너진다.

그럼에도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다.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형태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챙기고, 함께 연대하며 ‘우리’라는 경계를 조금씩 넓혀가려는 것이다. 얼핏 나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들의 삶이 나와 얼마나 많은 접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리려는 시도도 많다.

미추홀구 학산문화원의 학산마당극놀래는 그러한 시도들 중 하나다. 미추홀구 주민들로 구성된 마당예술동아리들이 예술가의 도움을 받아 지역 이야기, 시대의 화두나 이슈를 연극, 탈춤극, 풍물극, 난타극, 낭독극, 음악극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여 15분짜리 창작물로 만들고 경연한다. 

2014년 첫걸음을 시작해 올해 열 돌을 맞이한 학산마당극놀래는 현재까지 총 138개 마당예술동아리들이 138편의 시민마당극을 창작하고 경연대회에 참가했다. 미추홀구 학산문화원의 박성희 사무국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미추홀학산문화원 박성희 사무국장
미추홀학산문화원 박성희 사무국장

 

채이현: 학산마당극놀래 10주년 뿐 아니라 학산문화원도 20주년을 맞이한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해네요. 학산마당극놀래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박성희: 2011년과 2012년 사이에 학산문화원이 중장기 발전전략을 세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추진목표가 지역문화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구에 21개 동이 있었는데, 21개의 마당극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일단 구심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되니까요. 농촌사회의 마을문화 형태는 사라졌지만 도심에도 품앗이와 연대가 가능한 공동체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문제의식이었던 거죠.  

 

채이현: 왜 많은 장르 중에서도 마당극으로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성희: ‘마당’의 개념이 워낙 다양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광장,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의 의미입니다. 장르적으로는 1970-1980년대에 우리나라 전통 탈춤마당과 서양의 연극을 결합한 ‘마당극’이라는 장르가 생겼어요. 노동자, 농민, 학생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마당에 모여서 즉흥적이면서도 자신들이 주체가 되는 극을 만들어냈거든요. 이를 지역에도 접목할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채이현: 훨씬 더 이전에 ‘난장’이라고 불리던 것들, 지배층에 대한 불만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던 서민 문화가 떠오르네요.

박성희: 예부터 우리는 풍류를 탈 줄 알았어요. 동네에서 밭을 갈다가 어떤 사람이 쇠를 치고, 거기에 맞춰 장구를 치면 모여서 춤추고. 그렇게 즐길 줄 알았죠. ‘놀래’의 마당극은 100% 창작극이에요. 소재는 지역이야기, 역사, 지역의 이슈 (재개발, 세대간 갈등, 아파트와 빌라 간의 벽, 이웃 간의 침묵) 등 다양합니다.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라는 점이 특징이지요.

저는 이것을 이야기 주권을 회복한다고 얘기해요. 스스로 이야기를 찾아 만들고 문화예술과 결합해서 마당에서 풀어냈을 때 그것을 보는 사람도, 행하는 사람도 공감하고 해방감 느끼거든요. 그렇게 또 일상으로 돌아가고요. 문화는 향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창작도 중요하거든요. 엘리트 중심의 문화를 수동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창작의 주체가 되는 것도 문화민주화의 과정입니다. 

 

채이현 : 아무래도 초기에는 동아리를 구성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요?

박성희: 그랬죠. 동아리는 자발성이 중요한데 참가자의 진입장벽을 낮추려고 노력했어요. 당시 주안미디어축제가 21개동의 릴레이 축제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여기에 마당극을 결합시켰어요. 축제 준비 주체들이 있으니까 그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요. 각 동과 주민자치회 중심으로 행정기관에서 많이 협조해 주셨어요. 통장님들, 새마을부녀회, 야간자율방범대 등 자생단체도 나서주셨고. 그렇게 초창기에는 그룹으로 많이 참여하셨죠. 물론 동원성이다보니 한계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진행할 동력이 생겼어요.

그렇게 3년 정도 진행하다가 주안미디어축제와 별도로 운영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됐어요. 자발적인 참가자들로 이루어진 동아리요. 현재는 동아리 10개, 100여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기본 축제의 틀이 있어서 수월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구청장님을 포함해 각  행정기관에서 도심공동체의 중요성에 공감해 주셔서 시작이 가능했죠. 

 

채이현 : 동아리들은 경연을 위해 언제부터 준비하나요?

박성희: 보통 6개월 정도 걸려요. 소재 발굴을 위해 토론하고 대본도 쓰고, 연습을 하니까요. 1주일에 두 번 2시간 연습하고요. 주로 50-60대가 많고, 여성분들이 많아요. 시각장애인, 발달장애인, 결혼이주여성 등 구성원도 다양합니다. 최대한 소외되는 계층 없게 다양하게 구성하고 거기에 맞게 지원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또, 동아리마다 마당예술강사가 함께하며 원활한 진행을 돕습니다. 마당예술강사들의 경우 이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같이 워크샵을 하고 공부도 하면서 네트워크를 구성했어요. 매년 동아리지기 모임과 강사모임 두 축으로 내용을 공유하며 축제를 만듭니다.

 

2017년 제4회 학산마당극놀래
2017년 제4회 학산마당극놀래

 

채이현 : 10년이란 시간 동안 겪었던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주로 어떤 것인가요?

박성희: 유명한 연예인 공연에는 몇 만 명이 모이고 크게 기사화가 되지만, 사실 저희가 하는 공연 같은 경우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문화예술 분야는 정량적 평가 못지않게 정성적 평가가 중요한데 그에 맞는 기준이 딱히 없어요. 한 사람이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기량이 향상되는데 그 과정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성과가 날 때까지 시간도 필요한데 이런 내용을 전달하고 지속적 관심을 호소하는 것이 가끔 어려워요.

소규모 축제라도 누가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느냐는 것에서 가치를 평가해주었으면 하는데 이런 부분의 공유와 합의가 어려울 때도 있죠. 다행이 구청에서 예산을 끊은 적은 한 번도 없어서 사업은 계속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제 질적으로도 한 단계 높여야 되는데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해요. 시민들의 자발적 공연뿐만 아니라 전문 예술가들의 공연이 결합이 되어야 완성도가 높아지거든요. 10년이 지난 현재의 과제라고 할 수 있겠죠. 

 

채이현 : 이런 사업들을 진행할 때 학산문화원이 가장 우선으로 지향하는 가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박성희: 문화원은 기본적으로 지역 문화 발굴, 보존, 계승하고 지역사회에 알리고 활용하는 일을 해요. 그리고 기록, 아카이빙 작업을 하죠. 또 기록된 데이터 중에 2차 콘텐츠를 창작해요. 연극, 교육, 책으로 만드는 작업들이 그것인데요. 예산이 허용된 범위 안에서는 저희가 해야 할 역할을 해 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학산문화원이 조금 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다면, 문화기본권을 강화시키는 것이에요. 지역을 중심으로, 시민이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모든 사업의 바탕에 이 기준을 놓고 고민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고. 

 

채이현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산문화원의 존재와 활동에 대해 모르는 시민들이 많을 것 같아요.

박성희: 정말 그렇죠. 미추홀구 인구가 40만인데 홈페이지에 찾아오시는 분들 수만 봐도 아직 그에 한참 못 미치니까요. 사업을 하나 해도 홍보에 쓸 수 있는 예산이 부족합니다. 음악회를 한 달에 한 번 한다고 해도 공간이 협소한 경우가 많고, 문화예술교육 참여 인원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서. 더 많은 분께 다가가고 싶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아 늘 아쉬운 점입니다. 

 

채이현: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와 신뢰가 사회를 이루는 바탕이 된다고 했을 때, ‘마당’은 그 맥락을 만드는 하나의 숨구멍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마을 네트워크의 재생과 활성화를 위한 것이요.

박성희: 어차피 저희 관객은 공연자의 가족, 지인들일 수밖에 없어요. 한 마을이야기를 하면 그 마을 사람들이 오는 거고요. 공감대가 있어야 이해가 되니까요. 저는 그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요. 

이제는 정말 사회 안전망이 필요해요. 시민의식과 신뢰가 높은 사회는 꽤 튼튼한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어요. 최근 우리 사회에 연이어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은 한국 사회가 이제 법과 제도만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어요. 학산마당극놀래가 문화라는 매개를 통해 지역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주민들의 관계를 단단히 하고 사회를 보호하는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채이현: 시민의식을 얘기하셔서 그런데요. 문화예술이 시민의식 향상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저는 ‘가족’ 중심의 사회가 굉장히 전근대적으로 여겨지거든요. 우리 사회에 정말 ‘시민’의 공동체인 ‘국가’라는 공동체가 존재하는가 의문이 들 때도 있고요. 

박성희: 우리나라는 가족, 학연, 지연은 끈끈한데 그 외에는 철저히 개별화 되어 있어요. 저는 자기 이해관계를 넘어선 활동이 많아질수록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사회가 된다고 믿어요.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가장 모범적인 형태가 문화 예술 활동에서의 만남이라고 생각해요. 

마당극 후에 가장 많이 나오는 소감이 “너무 우울했는데 여기서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곳을 찾았다.”, “나의 존재를 확인 받는 느낌이다”라는 건데요. 자기가 존중받고 존재감을 얻어야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 여유도 생기죠. 마당극을 하다보면 나와 가족 중심으로만 생각하던 것이 내 이웃과 지역의 문제로까지 확장되거든요. 이런 시도가 양적으로 많아지면 질적으로도 성장할 것이라고 믿어요. 이런 망이 더욱 촘촘해지면 좋겠어요. 

코로나 이후에 이런 생활문화 동아리들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었는데, 오히려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요. 고립되고 단절되었다고 느끼는 것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니까요. 여기에 지역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채이현: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10살 생일을 맞은 놀래, 이번 공연 참가자 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박성희: 여러 가지 고민과 노력의 과정이 있었죠. 이렇게까지 어렵게 축제를 만들어야 하냐는 생각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 과정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포기할 수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 당일에는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완전히 몰입하는 경험, 관객과 하나가 되는 경험이 주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해요. 한 개인이 무대 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로 이 축제는 충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인생을 변화시키는 일이니까요. 온 열정을 다해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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