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막해수욕장 옆 분오리돈대
돈대 가운데 시야가 가장 넓은 곳
분오리돈대는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6호이며, 화도면 사기리 산 185-1번지에 있다. 마니산 동남쪽 아래, 산자락에서 길게 이어지는 끝자락에 삐죽이 나와 있다. 선두리포구 쪽에서 바라보면 곶으로 돼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바다를 향해 돌출해서 곶을 이룬 지형이라 시야가 꽤 넓다.
분오리돈대는 초승달 모양인데, 이는 땅 모양을 그대로 이용해서 지은 까닭이다. 돈대의 동쪽 벽은 절벽을 그대로 이용해서 돌로 쌓아 올렸다. 그곳을 기준으로 나머지 성벽들은 돌로 5미터가량 높이로 쌓아 높이를 맞추었다.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접경지역이나 해안가에 세운 초소다. 강화도에 있는 돈대는 대부분 조선 숙종 5년(1679)에 윤이제가 병조판서 김석주의 명령을 받아 경상도 군위의 어영군 8000여 명을 동원해 쌓았다. 분오리돈대로 마찬가지다.
분오리돈대는 강화에 있는 돈대 가운데 사람 발길이 가장 많은 곳이다. 사시사철 북적대는 동막해수욕장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동막해수욕장 옆 분오리돈대
강화도에 가자. 1990년대 초, 차를 뽑은 지 얼만 안 된 필자는 친구와 함께 강화도로 목적지를 정했다. 그때 강화군은 경기도 소속이었다. 1995년에 인천광역시에 소속됐으니 인천을 벗어나는 거였다. 그 당시는 강화로 들어가는 길은 강화대교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말에 강화를 간다는 것은 오가는 길에서 머물 작정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주말이면 강화를 오가는 길이 막힌다. 차량이 많은 복잡한 시간을 피하면 그럭저럭 다닐 만하지만, 까딱하다간 길에서 평소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머물게 된다. 그나마 초지대교가 생겨서 교통량을 절반으로 나눴어도 막힐 때는 제법 복잡하다. 참고로, 초지대교는 2001년 8월에 완공됐다.
강화로 가기로 하고, 강화도에서도 우리가 간 곳은 강화도 남쪽이었다. 목적지는 동막해수욕장. ‘해수욕장’이라는 말이 주는 시원함과 자유분방함 때문인지 우리는 서슴지 않고 화도면 동막리를 향했다. 탁 트인 바닷가를 보면 속도 시원하겠지.
하지만 우리는 동막해수욕장에 도착하고선 무척 실망했다. 넓게 펼쳐진 바다와 넘실대는 파도를 상상하고 달려왔건만, 물 빠진 갯벌이라니. 모래밭이 있긴 했지만 그다지 넓지 않았고 거친 돌멩이와 조개껍데기가 섞여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강화에 살면서 갯벌이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자산인지 알았지만 그때는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만 바다 같았다.
어쨌든, 우리가 원하는 바다는 아니었지만 이왕지사 왔으니 반푼이라도 풀 겸 산책하기로 했다. 게다가 두어 시간을 차 안에 앉아 있었으니 가벼운 운동이라도 해서 찌뿌드드한 몸을 풀어야 했다. 쉬엄쉬엄 걷는데 저만치 허름한 좌판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 있던 할머니가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우리는 할머니가 부르니까, 그것도 너무 열심히 부르니까 그곳으로 향했다. “커피 마시고 가!”
할머니는 그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장사를 한다고 했다. 직접 농사지은 쌀과 콩 등을 비롯한 농작물과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장류를 가지고 와 판다며 필요한 게 없느냐고 했다. 우리는 오백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할머니의 구수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저 분오리돈대를 지키는 사람이야!”
할머니가 가리킨 곳은 풀이 무성했다. 풀 사이로 커다란 돌이 조금 보였을 뿐이었다.
“할머니, 저게 뭐라구요?”
“돈대, 분오리돈대 몰라? 문화재 보러 온 거 아니야?”
사실 그때 ‘돈대’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러면서 문화재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우리는 풀더미를 향해 몇 발자국 올라가다 말았다. 할머니가 풀을 잘랐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풀이 많았고, 혹시 뱀이라도 나타날까 싶어 되돌아왔다.
“풀이 너무 많지? 내가 낫으로 베었으니까 저 정도지 더 했어!”
이렇게 해서 내가 처음 분오리돈대를 마주했다. 그러고부터 강화를 갈 때면 분오리돈대를 꼭 들렀다. 지금은 할머니가 장사하던 곳은 흔적조차 없다.
돈대의 특성을 안팎에서 가장 잘 볼 수 있어
분오리돈대는 동막해수욕장이나 분오리포구에서 분오리돈대를 가자면 평지이지만 바다에서 바라보는 돈대는 절벽에 닿아 있다. 해안이 절벽과 급경사로 이뤄져 있어 경치가 좋다. 아래 쪽에는 데크가 연결돼 있어 바닷가 가까이 내려갈 수 있다. 물이 들어올 때나 나갈 때나 데크를 걸으면 또 다른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분오리돈대 내부는 초승달 모양이고, 둘레는 113미터다. 보폭이 큰 걸음으로 걸으면 84보쯤 된다. 안쪽 둘레는 약 70미터이고, 너비는 약 12.8미터 정도다. 돈대 내부에는 네 개의 포좌가 바다를 향해 네모 모양으로 뚫려 있다. 예전에는 성벽 위에 치첩이 37개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다. 지금 분오리돈대는 1995년에 복원됐다.
지금은 문화재 관리가 잘 돼 함부로 할 수 없지만 2, 30년 전만 해도 지금과 상황이 달랐다. 분오리돈대에 가면 짜장면이나 피자를 주문해서 먹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여름철에 돈대 내부에 있는 포좌가 뚫린 곳에 들어가 전화로 음식을 주문해 먹는 사람이 있었다. 음식 배달하는 사람이 돈대 안을 돌면서 “피자 시키신 분!”이라고 외쳤다. 지금 그랬다간 금방 신고가 들어갈 것이다.
분오리돈대는 볼 게 많다. 무엇보다 시야가 넓다. 돈대 안팎을 휘이 둘러볼 수 있고, 바닷가로 나가서 돈대를 올려다 볼 수 있다. 물론 여름에는 풀 때문에 성벽을 제대로 볼 수 없지만 바닷가로 난 데크를 걸으면서 돈대의 특성을 잘 파악할 수 있다. 물이 나가면 나간 대로 물이 들어오면 들어온 대로 갯벌과 바다를 실컷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