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뒤집는 남녀의 생물학적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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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뒤집는 남녀의 생물학적 본질
  • 안재연
  • 승인 2023.11.01 0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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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으로 가는 길]
(4) 북 리뷰 - ①〈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 안재연 시민작가
인천YWCA와 인천in이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해 성인지 관점의 콘텐츠를 개발해 연재합니다. 인천YWCA 이를위해 지난 3월부터 시민작가단 육성사업을 벌여왔습니다. 이번 콘텐츠 기획에는 최종 선정된 6명의 시민작가가 참여하여 성평등과 관련해 ◇벡텔초이스 영화 소개 ◇기관·단체 관계자 인터뷰 ◇컬럼 ◇북 리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열네번째 순서는 안재연 시민작가의 북 리뷰입니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임소연 저

민음사 출판(2022)

 

인천YWCA 양성평등 연재를 시작하며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그 안의 철학들에 대해 무지한 나는 섣부르게 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을 접하고 ‘과학이라면 어떨까? 객관적인 진실이니까!’ 하고 마음이 동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볼까?’ 수준인 초심자인 나에게 딱 맞는다고 생각했다. 책의 크기도 부담스럽지 않은 성인 여성의 손 크기 하나만 한 책이다. ‘민음사의 탐구 시리즈’라는 면도 매력적이었다. 오랜 역사의 출판사에서 나온 과학자의 책이다. ‘여성과 과학’, 이 얼마나 공명정대할 것인가! 하는 흥분으로 책을 열었다.

서문을 읽으니 1990년대 할리우드 영화 <마이키 이야기>가 생각났다. 진주알 같은 뽀얀 난자가 우아하게 있다. 난자는 움직임이 없다. 자신의 의지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수만 마리의 정자가 헤엄쳐 간다. 목표물인 난자를 향한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1등 정자가 난자를 차지한다. CG가 흔하지 않던 시대에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장면은 신비롭고 충격적이었다.

잉태의 순간 여성을 상징하는 난자는 수동적으로 표현되어 왔다. 반면 남자를 상징하는 정자는 자체적 추진력과 능동성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었다. (마치 각각의 정자는 자아라도 있듯) ‘경쟁적인 정자와 조신한 난자’는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근래 들어 사실이 밝혀진 이야기가 아니다. 그 이야기는 이미 1970년대부터 과학자의 실험실에서 퇴출당하기 시작한 내용이다. 오히려 정자는 수동적인 존재로 ‘난자의 여포액에 포함된 화학물질에 반응’한다. 난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수정에 적합한 ‘정자를 골라내는’ 능동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성으로부터 시작되는 불평등함과 그로부터 야기되는 불편함은 이렇듯 가장 객관적이고 엄밀해 보이는 과학에서도 편견의 영향을 받아왔다며 저자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과학은 뇌의 성차(性差) 연구에 집착한다. 뇌의 생물학적 차이는 겉으로 보이는 능력 차이를 설명하는 원인이 아니다. 능력 차이가 반영된 결과인 셈이다. 페미니즘은 ‘성차 연구는 정작 성차 문제에 대한 비판적 사유가 담겨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신경과학자인 다프나 조엘은 ‘모자이크 뇌’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다. 흔히 여성과 남성의 특성으로 구분되는 여러 특징이 한데 뒤섞인 상태가 인간의 뇌라는 점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여자가 여자 뇌를 갖고, 남자가 남자 뇌를 갖는 것이 아닌데 왜 두 성별은 이렇게 달라 보일까? 성별에 관한 사회문화적 범주인 ‘젠더’가 둘로 구분되기 때문이라고 조엘은 말한다.

내비게이션의 기본 목소리는 왜 ‘여성’ 목소리인지, 왜 ‘여성형’ 챗봇 서비스여야 하는지, 비서 로봇의 외형은 왜 ‘여성성’을 띄고 있는지. 반면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춘 로봇은 왜 남성형인지? 그 이전에 “왜 인공지능을 인간처럼 만들어야 할까?” 등 과학기술의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부분을 ‘객관적’으로 알려준다.

특히 흥미로웠던 대목은 ‘자연과 여성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다. 생태주의와 페미니즘을 결합한 ‘에코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서양 페미니즘 이론가들의 핵심 논의에서 ‘에코페미니즘’이 보이지 않는 이유 역시 잘 설명해 준다.

생물학적 본질이나 여성이라는 보편적 범주에서가 아닌, 지역공동체의 고유한 경험에서 나오는 ‘여성의 힘’에 대해 말한다. 인도 여성들의 벌목 이야기와 1980년대 아프리카 말라위 지역의 상수도 개발 사업을 예로 들었다. 지역 여성이 축적한 주변의 자연에 관한 지식과 노동 경험은 과학기술이 더 효력을 발휘하게 하고, 개선된 과학기술은 여성의 삶의 질과 사회경제적 위상을 높인다. 에코페미니즘과 과학기술이 선순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연은 누군가가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며 여성도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경쟁과 지배를 우선하는 전략을 버리고 기본 원칙을 돌봄에 둔 과학이야말로 지구와 인류를 구출할 희망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괴짜 엔지니어가 아니라 에코페미니스트 엔지니어라고 말이다.

필자는 평소 ‘경구피임약은 왜 여성용만 있지?’, ‘일반의약품의 성인 1일 1회 1알, 이라고 쓰여 있는 약의 고정값은 여성도 포함인 것이 맞나?’, ‘180cm에 70kg도, 160cm에 50kg도 같은 용량을 먹어도 무방한가?’ 하는 물음들을 갖고 있었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에 그 답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여성이 과학과 아주 친해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여성에게 낯선 과학이 아닌 낯익은 과학으로 변모하기 위해 과학은 여성들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이 책은 과학자를 꿈꾸는 어린 여성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된다. 또 객관적 수치로의 응원이 되어줄 것이다. 과학과 거리를 두며 사는 또 다른 여성들에게도 권 할 만하다. ‘전혀 객관적이지 않다’라거나 ‘과학적이지 않다’라는 반응에 말문이 막혀 답답함을 느꼈던 부분에 대해 과학적으로 검증된 답변을 해 줄 수 있는 여성 과학 기본 상식서다.

과학도 분명 편향적인 단면이 있다.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 여성 과학자가 더 늘어날수록 과학의 객관성이 더 공고해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꿈꾸는 여성과 과학이 손을 맞잡은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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