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지명따라 걸어보는 인천의 삼형제 섬길 - 신도, 시도, 모도
옹기종기 모여있는 삼형제 섬 중, 시도와 모도를 설화와 함께 건너가 본다. (신도 이야기는 지난 10월기사 참고)
시도는 삼형제섬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연재에서 언급하였듯, 시도는 살섬(화살섬)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시도의 이름이 활시위에서 유래하였다는 전설에 따라 그 유물을 찾던 중 신석기 시대에 사용했던 화살촉을 발견되었고, 모도로 가는 연도교 앞 노루메기에는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화살탑이 있다.
또한, 시도의 해안누리길에는 공동묘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1970년 말까지 공동묘지 진입로는 선착장을 가기위한 유일한 도로였다. 전기와 손전등이 없던 시절에는 이곳과 관련한 귀신 이야기가 많아서 밤에 지나다니기 무서웠다고 한다. 어느 시기에 조성되었는지 기록은 없지만 살던 주민 대부분은 이곳에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신을 관에 넣어 관까지 매장하는 풍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시도의 수기전망대에는 도깨비 관련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해안가에는 가가도깨비가 살고 있는데 가~가~ 소리를 세 번 들을 때 까지 도망가지 않으면 도깨비에게 잡혀간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이 주변에 오기를 꺼려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절벽이 가파르다하여 ‘박절’이라 불리는 곳으로 야간 간첩 침투를 우려하여 보초를 서던 지역이다. 현재까지도 초소와 방어진지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세 번째로 만나 볼 섬은 가장 작은 꼬마 섬, 모도 이다. 모도는 한자로 ‘띠 모(茅)’, ‘섬 도(島)’로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통진 조강포에서 중선을 부리던 차영선(車永善)이라는 사람이 그물질을 하는데 고기는 한 마리도 안 잡히고 띠 뿌리(벼과의 풀) 뭉치만 올라와 화가 나서 그물을 거두었다. 그 때부터 띠만 걸리는 섬이라고 해서 ‘띠염’ 즉 ‘띠 모(茅)’자와 ‘섬 도(島)’자를 써서 모도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설은 전설일 뿐 모도의 주변에는 조선시대 3대 어장이었던 만도리 어장이 있었고, 새우를 잡아 만선의 기쁨을 누렸던 곳도 시도와 모도 사이의 수로였다고 한다.
조선 말엽, 어렵게 농사지은 농산물과 바다에서 건져 올린 수산물을 관리들에게 빼앗기며 궁핍한 생활을 하던 섬마을에 거지 차림을 한 암행어사 이건창이 나타났다. 그는 섬의 실상을 조사하여 관리들의 수탈을 차단해주었다. 주민들은 이건창을 기리는 기념물을 세워 후손에게 알리고 있으며 불망비가 현재도 존재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해변 박주기는 박주가리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모도 남쪽 끝 뿌리 지명으로 모도의 모양이 마치 박쥐모양같이 생겼고, 곡식을 쌓은 것 같은 높은 더미가 있는 곳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2002년부터 신도, 시도, 모도 3개로 분리된 섬이 연도교로 이어져 하나의 섬처럼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영종도에서 배를 타고 신도에서 발걸음을 시작할 수 있으나,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영종도와 신도를 연결할 연도교(평화대교)가 건설 중이다.
바다가 육지가 되고, 섬과 섬이 연결되어간다. 뚜벅뚜벅 바다 위를 걸으며 심해로부터 들려오는 섬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다.
(참고: 인천광역시홈페이지, 네이버지식백과,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