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풍경과 낯선 공백의 충돌... 추상민 개인전 ‘언캐니 보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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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풍경과 낯선 공백의 충돌... 추상민 개인전 ‘언캐니 보이드’
  • 채이현 기자
  • 승인 2023.11.3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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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까지 중구 신포로 임시공간에서 전시

 

인천 중구 신포로에 있는 갤러리 임시공간에서 12월 10일(일)까지 추상민 작가의 회화 전시가 열린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무료로 관람 가능하고, 월요일은 휴관이다.

전시 제목은 '언캐니 보이드'(Uncanny Void)다. 언캐니(uncanny)는 이상한, 묘한 이라는 뜻을 지닌 형용사, 보이드(void)는 커다란 빈 공간, 공허를 뜻하는 명사다. 언캐니 보이드(Uncanny Void)는 묘한 빈 공간 정도의 뜻이다.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풍경, 모두의 기억 어딘가에 있을 법한 풍경이 펼쳐진다. 작가가 버내큘러 건축이라 불리는 자연발생적인 건축 풍경을 대상으로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이 실용적 판단, 혹은 지역 환경에 맞게 변화시키고 새롭게 만든 디자인을 버내큘러 건축이라고 보면 된다.

이는 건물 설계과정에서 건축가가 의도하지 않은 부분이고, 심지어 건축가 본인의 의도와 전혀 어긋날 수도 있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사용자의 주체성을 강하게 반영한다. 각기 다른 모양의 방법창, 가게마다 달아놓은 색색깔의 햇빛 가리개, 발코니를 사용하는 방식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아마도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풍경일 것이고, 생활양식이나 기술의 시대적 변화를 켜켜이 축적해 보여주는 증거기도 하다.

 

언캐니 보이드 전시 현장 / 임시공간
'언캐니 보이드' 전시회장 / 임시공간

 

언뜻 사진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추상민 작가의 '버내큘러 스페이스' 연작에선  재료의 질감과 디테일이 세밀히 묘사되어 있다. '건축가 없는 건축'의 건축가가 되어 물감과 붓을 이용해 벽돌을 한 장씩 쌓아올리고, 기둥을 세우고, 창을 내고, 난간을 설치하고, 타일을 한 조각씩 붙이고, 페인트칠을 해나갔다. 이 지난한 재현의 노동의 결과 작가는 관객의 손을 붙잡고 작품 속 공간 속으로 순식간에 데려다 놓을 수 있게 됐다. 그의 작품 앞에 선 관람객들이 개인적인 감상보다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공동체적 감정을 우선적으로 느끼게 되는 이유다.

거의 동시적으로 다른 형태의 재현도 일어난다. 작가가 실제 공간에서 순간적으로 경험했던 감정과 감각이다. 원근이나 비율의 왜곡, 일부 요소들의 선택적 소거 등을 통해 풍경을 재설계한다. 이는 공동의 감각이라는 토대 위에 개인의 감각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건축물의 개구부 너머의 풍경이나 사람 등 유동적인 장면을 단색면으로 처리해버리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이때 사용되는 코랄 레드나 버디터 블루는 실제 풍경과 완벽하게 유리되어 가상의 입구를 상상하게 한다. 익숙한 풍경 위에 작가가 새로 덧대어 놓은 여러 겹의 층은 크로마키 배경같다. 익숙한 공간 속으로 데려다 놓았던 손이 관객의 손을 놓아버리는 순간이다. 보는 이에게 맡겨진 빈 공간이다. 실제적 재현과 감각적 재현의 결합과 충돌, 그 과정에서 발생한 묘한 공백, 이상한 공간감이 바로 ‘언캐니 보이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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