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함에서 싹튼 여성운동의 씨앗, 다큐로 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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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함에서 싹튼 여성운동의 씨앗, 다큐로 풀다
  • 채이현 기자
  • 승인 2023.12.06 1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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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례 감독 다큐멘터리 '열 개의 우물' 상영회
1980년대 만석동, 십정동, 화수동 여성 삶터 조명

 

김미례 감독의 다큐멘터리 <열 개의 우물> 상영회가 5일 오후 부평테크시티 9층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상영회는 사회적협동조합 열우물사람들, 새로운 일상을 여는 사람들, 옹달샘(영유아 성평등 연구모임), 인천여성노동자회 공동 주관으로 진행됐다. 관객석이 빈 자리 없이 꽉 찼다.

<열 개의 우물>은 1980년대 인천 만석동, 십정동, 화수동 등 가난한 이들의 삶터에서 시작됐던 여성운동과 보육운동(탁아운동), 그리고 노동운동을 배경으로 한다. 카메라가 주시하는 것은 운동 그 자체라기 보다는 각 영역에서 활동했던 여성들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다. 지난 9월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이다.

 

당시 공부방에 왔던 아이들과의 활동 사진을 보여주는 장면
당시 공부방에 왔던 아이들과의 활동 사진을 보여주는 장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 꿈을 꿀 수 있었다”라는 진술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판자촌 아이들은 대체로 방치된 상태였다. 부모 모두가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 여성활동가들의 생각이었고, 그렇게 탁아기능을 하는 공부방을 동네에 마련했다. 김현숙 씨와 유효순 씨, 홍미영 씨도 그런 여성활동가 중 하나였다. 1970-80년대 지역운동, 학생운동 활동가들 사이에서 활발했던 탁아운동은 지역과 여성, 교육을 하나로 묶어내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당시 전국 100여 곳의 빈곤 지역에 탁아소가 생겼다고 한다.

이들은 십정동, 화수동, 만석동에 각각 공부방을 만들고 일하는 여성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아이를 맡아 돌보는 일을 했다. 공부방은 점차 공동체의 중심이 되었다. 아이들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엄마들도 모였다. 여성활동가들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여성들에게 모일 수 있는 공간과 모여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줬다. 공부방에서는 아내와 엄마로서의 여성들의 역할을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았다. 꿈을 가져라, 늦지 않았다, 주체적으로 살자 같은 말들이 가슴에 새겨졌다.

공부방에서 또 하나의 둥지를 만든 엄마들은 ‘자모회’를 결성했다. 자신의 아이처럼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의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모회 구성원들 중 일부는 지금까지 모임을 계속 이어나가며 지역 놀이방, 지역아동센터 등에 후원하고 있다. 수혜자로서의 입장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연대를 끌고 나가는 힘이 그들 사이에 생겨난 것이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하는 모습이 담긴 장면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하는 모습이 담긴 장면

 

또 하나의 인물, 안순애 씨가 소개된다. 어린 시절 인천 만석동에서 자랐고, 6.25 전쟁으로 피난온 흰 머리 어머니의 고된 노동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6학년이 되자 이런 저런 일로 학교에 돈을 가져가야 하는 일이 생겼고, 돈을 가져가지 않으면 집으로 다시 돌려보냈기 때문에 동네 아이들은 학교도 다니기 어려웠다. 안순애 씨도 결국 학교다니기를 포기했다. 학교에서 집에 가는 길 사이에 있던 것이 ‘동일방직’이었고, 하루 빨리 저 곳에 취직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1971년 가을, 안순애 씨는 동일방직에 입사한다. 열심히 일하고 집에 꼬박꼬박 돈을 보내는 가장 노릇을 위해 들어간 공장에서는 민주노조 운동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동일방직의 노동자의 대부분은 여성이었지만 노조 지부장은 늘 남성이었고, 사용자측 입장에서 노동자를 통제하는 어용 노동조합의 성격이 강했다. 이런 노조를 바꾸기 위해 1972년 동일방직노조 대의원대회에서는 여성 지부장을 선출했다. 한국 노조운동 역사상 최초의 여성 지부장이었다. 그 다음 선거에서도 여성 지부장이 당선됐다. 회사와 결탁된 남성노동자들은 불신임안을 제출했고, 나아가 지부장을 경찰에 고발해 연행시켰다.

안순애 씨는 회상한다. “잡혀가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모두가 무서웠지. 그 때 누구였는지도 몰라. 우리를 인간 취급할 줄 알았던거지. 여자니까 옷을 벗으면 경찰들이 몸에 손을 대지 못할거라고. 그 말을 듣고 모두 옷을 벗고 시위를 했는데 그대로 군홧발에 짓밟혔어. 그 때 많은 사람들이 끌려가고 남은 자리를 보니까, 작업 모자, 작업복, 브래지어 등이 널려 있는거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걸 주우면서 정리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그 후로도 계속된 투쟁 속에서 동일방직 여성노동자 중 124명이 해고 되었고, 안순애 씨도 그 중 하나였다. 생계도 잃고, 감옥과 죽음까지 각오해야 하는 것이 노동운동이었다. 세상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인격이 재처럼 바스라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목적의식 같은 것 없었어. 그냥 내 꼬라지가 그래서 살다보니까, 그게 다였다.”라고 말하는 안순애씨는 현재 충북 음성에서 농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왼쪽부터) 홍미영 전 부평구청장, 김미례 감독
상영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홍미영 씨(전 부평구청장)와 김미례 감독(오른쪽)

 

격동의 시기, 살아내고 바꿔내기 위해 애 쓴 여성들이 있었다. 이들의 삶이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법을 통해 감독은 ‘이어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김미례 감독은 “남성 중심으로 서술된 운동에서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들의 운동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공동체 내의 느슨한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마치 우물가에서 모여 물을 긷고, 빨래를 하러 모인 것 같은 네트워크가 있었다. 돌봄이라는 것은 삶의 틀이다. 내 주변을 둘러보며 해야할 몫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영상 속 주인공이자 전 부평구청장인 홍미영 씨는 “많은 여성들이 결혼, 육아와 함께 고립됐다. 가족 속에 있지만 밖에서도 일하고, 집에 와서도 아이 돌보고, 밥하고 등 할 일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모이게 하려고 했다. 아무것도 안해도 되니까 일단 오기만 하라고 한 후에 그 곳에서 강의도 듣고, 공동체 활동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자연스럽게 그것이 자모회가 되고, 후원회가 되면서 나와 가족을 넘어선 사회활동의 시작이 됐다. 그것이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의 힘이다.”라고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여기 와서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을 보니 내가 빈곤운동을 시작하던 초심을 떠올리게 된다”고도 말했다.

이 날 상영회에는 유독 돌봄영역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이 많이 참석했다. 지역아동센터, 공부방, 놀이방 등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선배들을 지켜봤다. 여전히 한 생명을 기르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 각자의 우물이 만든 네트워크가 더 큰 연결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다큐멘터리 출연자 홍미영, 신소영 씨와 '옹달샘' 회원들
다큐멘터리 출연자 홍미영, 신소영 씨와 '옹달샘' 회원들

 

상영회가 끝난 후 참가자 단체 사진 촬영
상영회 후 참석자들의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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