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공연을 본 서구 거북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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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공연을 본 서구 거북시장 사람들
  • 채이현 기자
  • 승인 2023.12.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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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문화재단, 문화의거리 조성 사업으로 거북시장서 기획 공연
연극, 버스킹 등 16회 공연... 시장 상인, 지역 주민 대만족
연극 '거북마을 사람들' 장면 (사진=서구문화재단)
연극 '거북마을 사람들' 장면 (사진=서구문화재단)

 

인천 서구 석남 2동에 위치한 거북시장,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자리를 지켜야 하는 상인들이 하루를 보내는 곳이다. 대부분의 시간은 기다림이고, 대부분의 만남은 스치듯 지나가는 것이어서 재래시장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이들의 표정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서구문화재단은 바로 이곳에 판을 깔았다. 지난 10월부터였다. 문화의 거리 조성 사업이란 이름으로 거북시장 상가건물 2층 한 쪽을 차지하고, 벽면에 그림을 걸었다. 지역의 예술동아리들이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에 공연했다.

11월에는 전문 극단인 대중아트컴퍼니의 ‘거북마을 사람들’ 연극이 펼쳐졌다. 공연 공간을 만들기 위해 조명을 매달고 암막 커튼을 둘러쳤다. 무대 장치도 시골 농촌 풍경을 실사 출력하여 붙여놓은 것이 전부였다.

관람객이 얼마나 올까 싶어 30여 개의 작은 의자를 놓았는데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관객들의 대부분은 거북시장 상인들과 주변 지역 주민들이었다. 결국 조명을 위해 쳐 놓았던 암막 커튼을 걷고 서서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뒷줄의 관객들은 까치발을 들고 봤다. 아이부터 90세의 어르신까지, 관객들의 눈빛은 진지했고,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난생 처음 연극을 봤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장을 보러 왔다가 연극을 보게 된 한 관객은 “평생 연극은 처음 봤다. 이렇게 눈앞에서 직접 보니 연극이 살아있고, 생생하다고 얘기하는 뜻이 뭔지 알게 된 기회였다.”고 말했다.

어떤 상인은 “이런 곳(시장)에까지 와서 전문극단이 전문 배우들과 우리 동네 이야기를 주제로 좋은 공연을 해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또 이런 공연을 볼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며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연극은 총 다섯 번 막이 올랐고, 매번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마지막 주말 이틀간은 10팀의 버스킹 공연을 진행했다.

 

서구에서 활동하는 동아리들이 함께 모여 자생적으로 만든 '노을 오케스트라'가 거북시장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서구문화재단)

 

거북시장에서 일어난 예술 열풍은 12월 1일, 50인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정점을 찍었다. 서구에서 활동하는 예술동아리들이 ‘서구 생활문화 한마당’에서 만나 교류하며 자생적으로 만든 아마추어 단체의 연주였다. 꾸준한 생활문화 지원 사업으로 이런 자생 단체가 생겨나고, 지역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게 되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끝나도 관객들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감동하고 감탄했다. 누가 이 시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예상했겠냐며 기적이라고들 했다. 누구나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 권리를 행사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서구문화재단은 올해 거북시장과 그 일대를 조사하며 노령화와 지역소멸이라는 문제를 마주했고, 이 지역에 대한 심폐소생을 시작하기로 했다. 실험적으로 진행한 프로그램이 말 그대로 대박이 났고, 주민들의 만족감도 높았다.

사업 담당자인 서구문화재단 최지은 주임은 “일회성 사업으로 끝내지 않을 것이다. 거북시장을 중심으로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지속·확대할 것이다. 관련 기관과 협력하며 다양한 기술을 이용해 주변 지역의 경관을 개선해나가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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