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미술가'로 38년, 월미도를 지켜온 인물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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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미술가'로 38년, 월미도를 지켜온 인물화가
  • 송정훈 객원기자
  • 승인 2024.05.0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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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대 사람들]
월미도 '문화의 거리'와 역사를 함께한 송준일 화백

한 장소가 기억에 남는 데는 풍경, 음식, 같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도 그중 하나일 수 있다.
인천에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인 월미도 ‘문화의 거리’가 조성된 이후부터 38년 동안 거리 미술가로 자리를 지켜온 송준일 화백(65)이 그중 한 사람이다. 송 화백을 그의 연수구 원인재 작업실에서 만나 지나온 얘기를 들어봤다.

 

- 인물화를 주로 작업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송준일 작가

제가 하는 작업은 초상화 보다는 인물화가 많습니다. 사람 얼굴을 그린 작품을 초상화라고 사람들이 말하는데 초상화와 인물화는 다릅니다. 초상화는 ‘특정’ 인간이 가진 특성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목적이 있고, 인물화는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 가진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목적이 있어요. 지금은 많이 알려졌지만 예전에는 ‘초상’이라는 단어를 장례와 혼돈해서 초상화라고 하면 왜곡된 느낌을 받는 분들도 있었어요. 우리가 그냥 그 순간만 기뻐하고 좋아하고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잖아요. 핸드폰이 좋아지면서 사진이 일상이 됐지만, 예전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그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게 마냥 쉽지는 않았죠.

사진도 그렇지만 그림으로 그 기록을 남기는 것 또한 굉장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특별한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 자체를 기억하고 기록할 필요가 있겠더라고요. 
그게 40년 동안 꾸준히 인물화를 그려내는 이유 중 하나인 듯해요. 요즘은 인물화를 많이들 안 그리는 세상이 됐는데 아무래도 풍경화에 비해 인물을 그리면 어떤 부분이 사실과 다르게 그려졌고, 표현이 덜 됐는지 눈에 많이 띄다 보니 인물화를 멀리하는데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렇지만 저는 인물화만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념적인 사건과 인물을 함께 그려내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작품으로 남기고 있어요.

 

영미-열풍/수묵담채/110*67cm/2018
영미-열풍/수묵담채/110*67cm/2018

 

- 40년 동안 작품 활동하셨으면 많은 변화가 있었을 텐데요.

처음 인물화를 시작할 때는 수묵 작업으로 많이 했어요. 수묵 작업은 화선지에 작업을 하는데, 이게 예민해서 작업이 쉽지 않거든요.
그러다 보니 배우기도 힘들었고 그래서 지금은 인물화에도 수채화로 주로 작업해요. 수강생들도 그걸 편해하고, 세상 흐름에 적응해 가는 거죠.

 

- 월미도에서 38년 동안 거리 화가로 보내셨다면 들려주실 얘기도 소개해주시죠.

올 해로 월미도에서 작업을 38년째 하고 있어요. 거리 화가도 떳떳하게 자부심 가지고 하는 일이거든요. 문화의 거리가 생기면서 나가기 시작했는데, 사실 작가가 작품 판매나 화실에서 수강생 가르쳐서는 생활이 힘들어요. 그래서 생활에 보탬도 되고자 해서 시작했는데 어느 때부터는 그걸 떠나서 내 인생에 일부가 됐죠. 한때는 미대를 다니는 학생들부터 전업 작가들까지 20여 명이 넘어 있을 때도 있었는데, 중간에 진로를 바꾸기도 하고 이런저런 사연들로 하나둘 떠나고 지금은 나까지 5명 정도만 남았네요.

 

이정후/수묵담채/53*45.5cm/2024
이정후/수묵담채/53*45.5cm/2024

 

주로 연인들이 많이 와서 그림을 그려갔죠. 코로나가 끝나고 작년에 월미도에 다시 캔버스를 폈는데,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 그림을 보이면서 "이거 그리신 분 맞으세요?” 하는 거예요.그림을 보니 내가 그린 게 맞아서 그렇다고 했더니 코로나 전에 놀러 왔었는데 그 사이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서 가족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그때 그려준 화가는 누군지 생각이 안 나고 혹시나 해서 그림을 가지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사연들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 사진으로도 남길 수 있지만 그림이 주는 매력이 이런 게 아닌가 싶어요.

 

 

- 월미도를 지켜온 거리 화가로서 하실 말씀이 많겠는데요.

격세지감이 실감이 나는 게 월미도죠. 바로 건너다보이는 배로만 들어갈 수 있던 영종도가 대교가 두 개나 생기고 공항이 들어서고 큰 도시가 됐으니까요.
그 시절만큼 월미도도 많이 변했죠. 모노레일도 생기고 건물들도 많아지고 놀이시설도 들어서고, 문화의 거리라는 이름에 맞게 갤러리도 생겼지요. 작년 11월에는 월미도 김정숙 갤러리에서 개인전도 열었어요.

 

월미도 문화의 거리
월미도 문화의 거리@한국관광공사

 

월미도 거리 화가로 기쁜 일이죠. 반면에 아쉬운 점도 있어요. 제가 38년을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서 활동했는데 정권이 바뀌고 구청장이 바뀌고 또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단속을 해요.
그때마다 중구청을 방문해서 구청장 면담도 신청하고, 담당부서 찾아가서 얘기하면 한동안 단속을 안 하다가 또 구청장 바뀌면 단속이 나오고 이게 38년을 반복하고 있어요. 거리공연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허가받지 않은 거리공연이 음식점 영업에 방해가 된다고 민원을 넣으면 화가들까지 단속받게 되는 경우도 많아요.

 

상인들 처지도 이해는 하지만 월미도 '문화의 거리’잖아요. ‘문화의 거리’에 미술. 음악 같은 문화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죠. 그래서 중구청에 거리 화가들이라도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양성화를 하자라고 건의를 많이 했어요.
실제로 담당 부서에서 등록제를 통한 양성화 얘기가 나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담당 부서장이 자리를 옮기면서 추진되지 못했죠.
파리 몽마르트르언덕 테르트르 광장 화가의 거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관광상품이잖아요.
모스크바 문화 거리 아르빠뜨도 마찬가지고요.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 이름에 맞게 이런 관광상품을 양성하는 것도 관광객들이 월미도를 찾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문화의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그걸 구경하는 사람들 자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조형물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대학로나 해운대에 거리 화가들이 있었는데, 대학로도 그렇고 해운대 같은 경우도 복잡하고 유흥객이 많아지면서 지금은 명맥이 끊어지다시피 됐어요.
그래도 월미도는 낭만과 운치가 남아있어 문화의 거리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봐요. 이런 환경이 조성되면 함께 하겠다는 화가들도 많이 있어요.
앞으로 월미도 문화의 거리가 이름에 걸맞은 명성을 만들어가는 데 다 같이 힘을 모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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