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보상은 늦어지고, 사람들 떠나 죽어가는 제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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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보상은 늦어지고, 사람들 떠나 죽어가는 제물포
  • 이병기
  • 승인 2009.12.28 01: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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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할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아요"

6000명 이상의 손님이 떠나간 제물포 분식골목엔 일부 상인들만이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사람들의 말소리,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제물포 뒷역. 친구들과 1000원짜리 자장면, 튀김 등을 먹었던 분식골목이나 날 밝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던 술집 대부분이 간판만 덩그라니 남긴 채 떠나갔다. 활기가 넘쳤던 거리는 간간히 발자국 소리만 들려온다.

 어쩌면 2006년 말 인천시가 제물포역세권 재정비촉진계획을 수립하며 예견됐던 일이기도 하다. 또한 지난 여름 인천대학교가 송도로 캠퍼스를 이전하면서 6000여명 이상 손님을 잃은 상인들이 폐업이나 이전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12월 9일 저녁 5시가 조금 넘은 제물포역 북광장. 수업이 끝난 중·고등학생들이 전철을 타려고 역 쪽으로 내려온다. 언덕 위로 이어진 왼편 상가에는 불빛 대신 '사무실 임대'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셔터가 내려진 곳도 간간히 보인다.

 U자 형으로 만들어진 길에 택시가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예전과 다를 바 없다. 상인들은 떠나갔어도 남아 있는 인근 주민들 덕분에 아직도 택시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이리라. 다만 예전만큼 벌이가 시원찮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북광장에서 왼편 철길을 따라가니 분식골목이 나온다. 자장면 1000원, 짬뽕 1500원, 탕수육 2000원 등 중·고등학생부터 가난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못한 이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분식집들이 길을 따라 이어진다.

상인이 떠난 가게에 9월부터 밀린 수도요금으로 정수된다는 예고장이 붙어 있다.

 그러나 저녁 어스름이 와도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몇 곳만이 불을 켜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각종 재료들이 튀겨지는 소리와 기름냄새가 남아 있는 이들의 존재감을 알린다. 교복 입은 학생들 2~3명이 자장면으로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 있다.

 "2학기때 부터 장사가 안 돼. 인천대가 이사가니 학생들이 다 빠져나갔지. 장사 안 되니 상인들도 떠나고. 이제 미련도 없어. 나도 더이상 장사할 생각 없고. 그냥 지금은 아무 생각 없어."

 텅 빈 가게 안, 탁자 위엔 다 먹은 자장면 그릇 2개가 놓여 있다. 자포자기한 얼굴로 저녁 튀김을 준비하던 분식집 아주머니가 낮게 대답한다. 오늘은 손님이 얼마나 올지 모르지만, 이제까지 하던 대로 분식집 앞 간이대에는 튀김이 수북이 쌓여 있다. '장사는 되지 않더라도, 나는 내 할일을 하겠다'는 사회를 향한 무언의 항의로 느껴진다. 

 상인이 떠난 한 분식집 유리창에는 '수도전 정수 예고장'이 붙어 있다. 9~11월분 미납금액 3만7380원. 12월 18일까지 요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정수된다는 예고장이지만 주인이 떠난 분식집엔 더 이상 수도는 필요없다.

 세입자 맞는 비바람, 건물주도 맞는다

이야기꽃을 피우며 밤을 지새던 제물포 뒷역. 지금은 건물 전체에 불이 꺼진 곳도 있을 정도로 많은 상인들이 떠나갔다.

 발걸음을 되돌렸다. 다시 북광장을 지나 이번엔 술집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밤에도 네온사인 불빛으로 대낮을 방불케 했던 거리가 어둡게 죽어 있다. 빌딩 전체가 영업을 하지 않는 곳도 있고, 건물당 1~2곳에서 많아야 3~4곳만 장사를 하고 있다. 마치 '할렘가'를 연상시킨다.

 "장사는 안 되지, 집 주인은 세를 깎아주지도 않아. 개발이 언제 될지 알 수도 없으니 나가는 거야. 들어오는 사람은 없고. 예전에 비해 매출이 3분의 1이야. 나도 건물 1층에서 구멍가게랑 이것(노점상)을 하지만, 힘들어 죽겠어. 몇몇은 개발되면 받아보려고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말을 잇는 강민희(63)씨가 글썽거린다. 소시지, 떡볶이와 순대, 오뎅이 놓인 포장마차가 어두워진 골목 입구를 지키고 있다. 이렇게 장사가 되지 않을 땐 건물주가 세를 조금 깎아주면 좋으련만, 그만의 바람이 됐다.

 북광장에서 큰 길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주민들이 붙여 놓은 현수막이 눈에 띈다. '건물주님 개발도 멀었고…. 월세도 비싸 세입자 다 죽어요. 세입자가 맞고 있는 비바람…. 곧 건물주님이 맞습니다.' 서민들에게는 기약없는 개발 기대를 품게한 인천시도 원망이지만, 사정을 봐주지 않고 월세를 꼬박꼬박 받는 건물주들도 야속함의 대상이다.

 상인들이 자리를 떠나는 것은 위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북광장에서 지하로 내려가 인천전문대로 이어지는 지하상가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가게 셔터가 내려져 있고, 간간히 문을 연 곳이 보인다. 그나마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구류, 레코드 가게 등이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사를 하는 가게들은 셔터가 내려진 주변 자리까지 물건을 진열해 놓고 손님들을 기다린다.

 "제물포역 개발 얘기가 나오면서부터 이렇게 됐어요. 사람들은 나가고, 장사는 앞으로 얼마 하지도 못해 들어오지도 않죠." 레코드가게 사장님의 말이다.

제물포 북광장 지하상가는 상인 대부분이 떠나 가게 셔터가 내려져 있다.

 도화지구 주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북광장에서 올라와 인천비즈니스고등학교(구 선화여상) 방면으로 가면 도화지구가 나온다. 도화지구는 지난 2006년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돼 이듬해부터 보상계획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2007년도부터 주민들과 상인들의 생활이 엉망이 됐다는 것이다.

 # 유해연(42)씨는 도화지구 안에서 그녀의 아버지때부터 21년째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가 교통도 나쁘지 않고, 살기는 좋은 동네예요. 장사도 이만큼 되니 문구점이 오래될 수 있었죠. 2007년 동네가 개발된다는 주민설명회를 듣고 물건을 줄이기 시작했어요. 그해 말에 보상금을 준다고 했지만 받지 못했죠. 어쩔 수 없이 장사를 하기 위해 2008년에 다시 물건을 들여오고. 도시개발공사에 전화하니 '2~3개월만 지나면 된다'고 했는데 2년이 지났죠."

 유씨는 "물건은 저렴할 때 많이 구입해야 이윤이 남는데, 언제 나갈지 몰라 조금씩 사다 보니 이윤도 남지 않았다"며 "돈도 못 벌고, 장사도 되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더군다나 문구점의 경우 물건의 종류가 많고, 구입도 박스 단위로 하기 때문에 1~2개만 팔고 나머지 팔지 못한 상품들은 어쩔 수 없이 손해를 보며 처분해야 하는 실정이다.

 "인천대 학생들이 있을 때는 MT나 축제, 동아리 활동으로 단체주문이 많았어요. 이들이 없어지니 물건이 움직이질 않죠. '그동안 벌었으니 다른 일을 찾자'는 생각도 했지만, 보상은 나오지도 않고 이사를 가게 되면 보상을 받지 못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예요."

 이런 딱한 사정은 유씨만 겪는 게 아니다. 다른 주민들도 보상을 포기하고 나가자니 너무 억울한 심정에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 주택을 개조해 학생들에게 하숙을 주던 노인들의 사정은 더 어렵다. 매월 하숙비로 생활하던 그들은 텅 빈 집에서 자녀들에게 용돈을 받거나 모아둔 돈으로 힘들게 살아간다.

 도화구역 사업시행자인 인천도시개발공사(도개공)는 12월 15일까지 도화지구 2차 감정을 진행하고 있다. 도개공이 한국감정원에 보낸 공문에 따르면 '내년 2월 말까지 협의보상에 착수하겠다'고 나와 있다. 주민들은 이 내용에 한 가닥 희망을 품고 기다리고 있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도개공 관계자는 "내년 초까지 보상 착수를 계획하고 있지만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1년 이상 늦어지는 경우도 있어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며 "주민들이 오래 기다렸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정리될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하숙생들로 넘쳐났을 주택가가 찬 겨울 밤 더욱 쓸쓸히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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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민 2014-12-28 05:13:50
마음이 아프네요. 한때는 내집처럼 돌아다니구 정말 정많은 골목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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