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없이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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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없이 살 수 있을까?
  • 강영희
  • 승인 2012.01.12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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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생각을 한다"
무거운 물건을 챙기느라 사진관에 도착해 시간을 보려고 주머니를 뒤졌는데 핸드폰이 없다는 걸 알았다. 인터넷으로 전화를 수십 차례 걸었고, 연락을 달라는 전화번호도 남겨보고, 문자도 띄웠다. 불편하면 가까운 전철역에 맡겨달라는 문자메시지도 여러 차례 보냈다. 친구 조언에 따라 돌려주면 2만원 드림(요즘은 문방구에서 구형 핸드폰을 1000원에 산단다)까지 두어 번 보냈다. 아무 답이 없었다. 

이제 겨우 약정이 끝나고 두어 달 된 터치폰. 약정이 끝나고 전화를 바꾸라는 수없는 문자와 전화에 시달렸지만 "멀쩡한 핸드폰을 바꾸는 일은 나쁜 일이다. 그래서 바꿀 생각이 없다."며 꿋꿋이 버텼는데. 참 허무했다. 수많은 모바일 쿠폰도 아깝고, 마음에 드는 글귀나 책이름을 모아놓은 메모장, 오래된 수백개 전화번호, 무엇보다 옛 친구들 연락처가 사라진 것이 안타까왔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니 핸드폰에 주렁주렁 달린 악세사리 사연들이 떠올랐다. 새 핸드폰 샀다고 친구가 선물한 돌고래가 크리스탈을 물고 있는 것,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악몽의 해골-잭과 유령신부 캐릭터 인형, 루마니아 대학생이 돌아다니며 팔던 루마니아식 장신구, 나무와 새가 장식된 나무공예품, 우리 가족들 사진이 들어 있는 미니앨범, 빨간실패-인형까지. 참 많이도 달고 다녔다. 그래도 녀석들 덕분에 찾기도 쉽고, 이곳저곳에 걸려 잘 빠지지도 않았다. 이어폰줄과 많이 꼬여서 그것 푸느라 고생도 했고, 조카 수빈이는 앨범에 가족들 얼굴 보는 걸 참 좋아했다. usb메모리는 빌려달라는 사람이 있어서 빼놨었고, 교통카드도 각이 져서 빼놨고. 

일단 당일이 다행 송년회라 긴급히 있는 명함을 뒤져 겨우겨우 연락을 취해두고, 가입된 카페나 클럽에도 그런 사항을 간단히 올렸다. 인터넷 전화에는 자주 연락하는 지인들 연락처가 20여개 있었다. 귀가 후 위치추적을 하려고 했더니 수많은 ARS안내문을 듣다가 문득 열을 받았다. 모든 ARS를 내 통화료로 들여야 하는 게 나는 항상 화가 나서 끊고 다시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런데 홈페이지가 통합되면서 통합인증을 핸드폰으로 받으라니? 그래서 홈피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하는 수 없이 ARS전화를 다시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담시간이 지나 분실신고만 가능하단다. 분실신고보다 위치추적이 필요했지만, 할 수 없이 분실신고와 발신 차단만 해 두었다.

어찌어찌 연말이 지나고 새해. 이틀 후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알림음이 나왔다. 한 달 만에 찾았다는 사람도 있어서 기다려볼지, 새 핸드폰을 장만해야 할지 결정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한 달을 기다려볼까? 이 참에 없애버릴까? 그러는 사이 1주일이 지났다. 지낼 만했다.

핸드폰 없이 살다

징그럽게 걸려오던 핸드폰을 바꾸라는 전화도 메시지도 없으니 속이 다 시원하다. 가끔 핸드폰 속 간단한 게임을 할 때마다 적지 않은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는데도 멈추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었는데, 그런 갈등 속에 빠질 일이 없어 즐겁다. 덕분에 책을 벌써 세 권이나 읽었다. 문득 안부인사를 건네고 싶었는데, 연락할 방도가 없어 아쉽기는 했다. 대신 시간이 짧게 날 때는 전화번호를 하나씩 외운다. 말하는 게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이기도 하고, 상대가 무슨 일을 할지도 모르는데 전화하는 게 폐를 줄까 싶어 문자메시지를 주로 보냈다. 그런데 직접 통화를 해보니 목소리를 듣는 일도 좋았다. 핸드폰을 충전하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고, 핸드폰을 넣느라 주머니 속이 복잡했는데 한결 가벼워졌고, 대문을 나설 때마다 핸드폰을 가져왔는지 어쨌는지 걱정하며 주머니며 가방을 뒤지는 일도 없어져서 속이 편해졌다.   

일단 자주 연락하는 사람들 연락처는 수첩에 적어두고, 사람들에게는 사진관과 집 연락처를 알려줬다. 아무 문제 없었다.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친구 지인이 사무실에 핸드폰을 두고 나오는 바람에  다시 가지러 다녀오느라 늦었는데, 그 소식을 알 리 없는 나는 공중전화를 찾았다. 그런데 공중전화카드였고, 동전투입구는 다른 동전으로 막혀 있었다. 10분 이상 기다리는 일은 나에게는 좀 불안한 일이기는 했다. 긴급전화번호를 꼭 알아둬야겠다. (KT_1541, 1677도 있고) 한때 아이들에게 아직 핸드폰이 보급되지 않았을 때 긴급콜렉트콜 전화가 호황이었는데, 그도 없어지고 전화박스에 써 있지도 않고. 핸드폰에 거는 공중전화비를 아시는지? 1분에 70원이다. 

핸드폰, 사람을 증명하다 

그러나 곧 엄마의 긴급요청으로 현금서비스를 받는데, 핸드폰 인증서가 있어야 했다. 보이스피싱 때문에 보안강화로 본인 휴대폰으로 본인 인증이 되어야 가능하단다. 핸드폰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라고? 엄마한테 이유를 설명하고  출근하다가 ATM기를 발견했다. 하는 수 없이 돈을 뽑고, 동인천까지 가서 은행에 찾아가서 입금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인터넷 뱅킹으로 겨우 보내드렸다. 좀 불편하지만 궁하니 방법이 생긴다.

예전에 집이 없어 주민증을 만들지 못한 노숙인이 어렵게 모은 돈을 저금할 수 없었다고 했다. 현금을 둘 곳이 없어 몸에 지니고 다녔는데 상인에게 물건을 사려다가 물림을 당하는 상황에서 돈을 뺏는 줄 알고 칼을 휘둘렀다는 사건을 뉴스에서 들었다. 있는 사람은 느끼지 못하지만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잘못된 일이다. 예전에 주민증을 잃어버리면 적지 않은 곳에서 문제가 발생해 만드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도 난다. 본인이 눈앞에 있는데 본인이 있는데 본인이라는 증명을 해야 한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는 주민증도 모자라 핸드폰이 없으면 본인 인증이 안 된다니.

주민번호 도용으로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이 시스템을 바꿀 생각을 왜 하지 않을까? pc가 고장나거나 인터넷이 끊기거나 핸드폰을 잃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 있고, 무엇보다 어느 나라보다 IT에서 보안개념이 약한 우리나라에서 그 대안이 거의 없다. 게다가 이제는 핸드폰이 없으면 pc조차 맘대로 사용할 수 없다.

거꾸로 가자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하지만 그것이 없어도 삶에 무리가 되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게 기본이고 원칙이어야 한다. 보편적 복지라는 이슈 덕에 '보편'이라는 말이 많이 쓰였는데, 그야말로 '예외없이 누구나'라는 뜻이 보편이라는 거다.  다른 방식은  '부가서비스'여야 하지 않을까?  

핸드폰 없이 살 수 있을까?

마을 이장댁에 전화 하나만 있어도 되었다고 했지만 옛날 이야기다. 집집마다 전화 하나씩 생기니 이젠 온 가족이 전화 하나씩을, 그것도 엄청난 비용을 내고 사용하고 있다.

집에 하나씩 생겨나던 pc는 아이들이 있는 집에는 보통 한 두 대 더 있다. 인터넷이 연결되면서 인터넷 없이 컴퓨터를 쓸 일이 없다 할 정도로 보급되었다. 그것도 적지 않은 비용으로 지불했는데, 이젠 비싼 스마트 폰에 모바일로 인터넷까지. 집과 사무실에 인터넷을 쓰는 것도 피곤한데, 들고다니면서까지 인터넷을 써야 한다니. 이제는 컴퓨터조차 개개인이 들고다니고 있는 거다. 수많은 장점에도 아주 피곤한 상황이다.  

엄청나게 지불되는 통신비를 보면서 끊임없는 자본의 확장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된다. 그러니 우리 삶에서 서민들의 경제적 수입은 '계약직이다, 비정규직이다, 알바다'하며 끊임없이 줄어들고, 그렇다고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나 부모들이나 그런 시스템 속에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도시에서 핸드폰 없이, pc 없이, 인터넷 없이 사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은 거 같다. 그렇게 사는 어르신들을 보면 말이다. 게다가 나는 핸드폰을 빼고는 다 있어서 그럭저럭 지낼 만하다. 옛 친구 연락처를 알 수 없는 게 지금 가장 큰 안타까움이고, 인터넷 사이트에 비번을 까먹었는데 이건 또 어떻게 받나? 항상 휴대폰 인증을 받았던 거 같은데, 이건 또 어쩌나? 

어떻게 하지?

이런 21세기 이후를 이야기한 수많은 글과 영화들이 있다. 인터넷 조작을 통해 있는 사람을 없게 만들었던 산드라 블록의 <네트>,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패러다임을 극단적으로 제시한 <매트릭스>. 문명의 이기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든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핸드폰은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바랄 수밖에 없다. 그저 개인 의지로 가능한 일일까? 아니면 불가능한 일일까?

여하튼 오늘로 13일이다. 내 전화로 오는 연락을 인터넷 전화로 연결했다. 살아가는 데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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