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弔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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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弔辭]
  • 엄종희
  • 승인 2012.01.30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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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훈 선생님을 보내며 - 엄종희


홍성훈 선생님

2주 전 걱정하는 저에게 전화를 하셔서 본인의 병세와 예후에 대해서 해탈의 경지에 이른 듯한 담담하고 평온했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제 귓가에 맴돌고 있습니다.

당신의 인품이 묻어나는 듯한 인생의 마지막 길도 이렇게 깔끔하게 하고 떠나시는군요.

이리도 빨리 이승을 정리하고 원하던 하느님 품으로 가셨다는 사실이 “당신답다”라는 느낌과 더불어 안타까움이 먼저 앞을 가로 막는군요.

사랑하고 존경하는 잔돌 홍성훈 선생님.

다행히 주무시던 중에 고요히 영면하셨다고 하니 이것 또한 당신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히말라야 눈덮힌 산정이 주는 고요함과 장엄함이 네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품어주듯이 홍 선생님의 그 삶이 치열했지만 마지막은 공력 높으신 분의 입적처럼 고요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불러가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천운이 닿아 당신과 지상에서 인연을 맺게 된 저 자신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홍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이 시국이 어지럽던 1986년께 인천사회운동연합 후원자 모임에서였죠. 첫 만남에 전 선생님의 인품에 반해 일생의 큰 스승, 멘토로 삼고 한없이 존경을 했습니다.

소위 KS마크인 경기고 서울의대를 나와 의료인으로서 호위호식하며 잘 사실 수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두웠던 시대상황에 고생하는 후배들, 사회단체들의 든든한 울타리이자 큰 형님이 되어주시며 힘든 이웃들에게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당신의 어깨를 선뜻 내어주시는 따뜻하고 다정한 어른이셨습니다.

선생님과 만난 26년 동안의 인연이 제게도 많은 변화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교회를 알게 해 주시고 신앙인의 자세, 사회인으로서 바르게 행동해야 할 규범, 그리고 언젠가 의약분업으로 전국의 모든 의원들이 파업을 하여 문을 닫을 때 다른 동료 의사들의 압박과 만류에도 선생님께서는 의료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환자 곁을 떠나서는 안된다며 끝까지 환자 곁을 지키셨습니다.

저에게 의료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 등을 몸소 깨우쳐주신 어른이셨습니다. 당신을 따르고자 했던 제게 히말라야 트래킹, 전국의 크고 작은 산행, 산티아고 순례길 등에 선뜻 동행자로 받아주시여 가깝게 모시면서 뵌 선생님의 솔직담백함과 정의로움, 약자에 대한 배려와 사랑, 절제된 부지럼과 겸손함 등 훌륭하신 인품에 선생님의 영원한 따라쟁이로 배울 게 많은데, 이젠 여기에서 그만 선생님과 이별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 편안히 가십시오.

살아 계시는 동안 마지막 심지까지 다 태우고 당신이 품은 사랑을 다 내어주시고 가신 홍 선생님께 부끄러워 하지 못했던 말을 시로 전할까 합니다.


<사랑> - 김기림

나는 사랑하였습니다.

나는 열심히 사랑했습니다.

나는 죽도록 사랑하렵니다

죽어서도 나는 사랑할 것입니다.

죽어 그곳에도 사랑이 있다면

나는 쳇바퀴 돌 듯

다시 그렇게 사랑을

사랑할 것입니다.
 

홍성훈 선생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2012년 1월30일

따라쟁이 엄종희 올림.

(2012년 1월30일 오전 10시, 제물포성당에서 거행된 홍성훈 원장님 장례미사에서 엄종희님(전 대한한의사협회장) 이 올린 조사(弔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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