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의골 800살 은행나무 주변 음식점 우후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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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의골 800살 은행나무 주변 음식점 우후죽순
  • 김영숙
  • 승인 2012.12.1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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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소음, 오폐수 장수천 유입 '골머리'


2005년 은행나무 겨울 풍경


나무는 어떤 소리를 좋아할까? 새 소리, 벌레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바람 지나는 소리, 눈 소복이 내리는 소리, 나뭇잎 구르는 소리……. 나무에게 물었다. 어떤 소리를 좋아하고, 또 어떤 소리를 싫어하냐고. 하지만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의골로 불리는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에 가면 800살 된 은행나무가 있다. 이 마을에 있는 나무는 십년 전에도 이십년 전에도 800살이라 했으니 정확히 몇 살인지 알 수 없다. 인천시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된 이 은행나무를 보러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다.  잘생긴 이 나무는 높이 30m, 둘레 8.6m이다. 인천시와 경기도 시흥시의 경계를 이루는 이곳은 평일이면 5000여명, 주말에는 1만1000여명이 찾는다. 소래산과 인천대공원 사이에 있는 터라 운동하느라 산을 오가는 사람들이 늘 북적댄다. 그러다 보니 음식점이 수없이 생겨났다.

 만의골.  쉬는 날 사람들이 운동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오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시끄럽다는 것. 은행나무 바로 옆은 바로 옆사람과도 대화하기 힘들 정도로 소음이 심하다. 은행나무 바로 옆에서는 불우이웃 성금을 모은다는 무명가수가 노래를 하고 있고, 음식점 앞에서는 분장한 엿장수가 엠프를 크게 틀어놓고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십년 전만 해도 음식점이라고는 서너 군데였는데 지금은 허가받은 곳만 25군데다. 휴일이 되면 좌판을 비롯해 트럭에 장사하는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시끄럽기 그지없다. 몇 년 만에 은행나무를 찾았다는 안산에 사는 정은진씨는 “조용한 나무만 생각하고 왔는데 너무 시끄러워 정신이 하나도 없다. 빨리 자리를 뜨고 싶다”면서 “은행나무도 정신이 없겠다”고 말했다. 은행나무에 귀가 있다면 아마 커다란 딱지가 두껍게 앉지 않았을까. 그렇잖아도 밤낮으로 외곽순환도로를 지나는 차 소리를 들어야 하고, 장사꾼들이 틀어놓은 음악소리를 들어야 하고, 무명가수의 노래를 들어야 하니 말이다.

나무 그늘에서 열무를 다듬고 있는 마을아낙들
 

그래도 지금은 겨울이어서 조용한 편이지만, 주말은 여지없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 엄마손두부를 운영하면서 통장 일을 본다는 신윤철씨는 “시끄럽다는 사람이 많아 가보면 은행나무 바로 옆은 정말 요란하다. 봄 여름 가을은 더 정신없다.”면서 “한 음악만 나오면 그래도 들을 만하겠는데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트니까 1분도 못 있겠더라. 번영회에서 상인들에게 이야기해보지만 조용히 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다”고 했다.

 남동구 도시공원과 김인수씨는 “종종 민원을 받아 가보면 소음 체감온도가 다 다르더라. 주민, 상인, 이곳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 시끌벅적해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시끄러운 정도가 심하다는 사람도 있다”면서 “소음에 대해서 법적 제재는 불가능하다. 정도가 심하면 계도하고, 양해를 구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만의골 은행나무 주변은 소음문제 말고도 문제는 더 있다. 장수천 네트워크 사무국장 김성근씨는 “소음 문제도 크고, 음식점이 많아지면서 생활 오폐수가 장수천으로 유입돼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궁여지책으로 내년에는 장수천 상류격인 이곳에 미나리와 부들을 심어 물을 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005년 여름, 제를 올리는 사람들
 

20~30년 전만 해도 은행나무 바로 앞으로 흐르는 시냇물에서 마을사람들은 배추를 절여 김장을 했다고 한다. 논일 밭일을 하러 오다가다 은행나무 아래서 잠시 쉬었고, 일손을 내려놓고 마을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래서 이 마을사람들은 음력 7월에는 나무에서 고사를 지내고, 10월에는 산신제를 올렸다. 집안에 액운이나 돌림병이 돌면 이 나무에 제물을 차려놓고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 지금은 규모가 커져서 더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제가 되었지만, 예전처럼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에서 올리는 진심을 다하는 제와는 견줄 수 없을 것이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변화를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곳의 주인공은 800년 세월을 오롯이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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