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마당과 바람길 내어준 400살 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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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마당과 바람길 내어준 400살 된 나무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3.2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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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로 둘러싸인 장수동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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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400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너른 밭이 있던 곳에 사람들이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나무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트럭이 다니기 좋게 나뭇가지를 뚝뚝 잘라냈다. 나무는 생살이 떨어져나가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지만, 간신히 움찔거리다 눈을 질끈 감았다. 하루 하루 날이 갈수록 나무 주변으로 빌라가 빼곡하게 들어섰다. 나무 높이 19m, 가슴둘레 3.4m. 나무는 400년 가까이 보던 하늘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들판을 가로지르던 바람도 쏘이지 못한다. 남동구 장수동 518-2번지에 있는 느티나무는 숨 쉬기가 힘들다.
 
장수동은 구한말 인천부 조동면이었다. 이곳에는 장자골, 만의골, 무네미 마을이 있었다. 1906년 인천부가 동네이름을 정할 때, 장자리 만의리 수현리로 바꾸었다. 1914년에 장자리의 ‘장’과 수현리의 ‘수’를 합쳐 ‘장수동’이라 불렀다. 장자골은 ‘부자가 살던 곳’, ‘맏아들이 살던 곳’, ‘정자나무가 있던 곳’이라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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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골에는 ‘팔장사’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장자골은 소문난 부자들이 사는 동네로 유명했다. 어느 날 수상한 남자 여러 명이 주막을 찾아와 술을 먹고 떠들었다. 주모가 그들이 도둑 같아 몰래 남편을 시켜 동네 장정들한테 일러주었다. 소식을 들은 동네 ‘팔장사’는 도둑을 단숨에 잡기로 하고 길목에서 숨어 기다렸다. 자정이 가까워오자, 도둑들은 마을에서 가장 부잣집을 찾아 노략질을 했다. 이때 도둑들의 무기를 빼앗고 포도청에 넘겼다. 사또는 팔장사에게 상을 내렸다. 이 고을에 도둑이 들면 마을 장정들이 나서서 도둑을 잡고, 마을 느티나무에 사지를 묶은 뒤 손톱 발톱을 뽑은 다음 풀어주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장자골에는 도둑이 얼씬거리지 못했다.
 
어려서 이 마을에 살았다는 정인숙씨는 “마을 한가운데 느티나무가 있었다. 그늘이 많아 여름에 쉬기 좋았다. 나무를 가로질러 친구 집에 놀러갔다”면서 “요즘 세상에 변하지 않은 곳이 없다지만, 나무를 둘러싸고 빌라가 빼곡한 걸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장자골 느티나무는 사람들한테  너른 마당과 굵은 가지, 바람길을 내준 채 여전히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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