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를 타동 사람들한테 빼앗긴 거나 마찬가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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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를 타동 사람들한테 빼앗긴 거나 마찬가지지"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3.27 00:01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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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의골로 시집와 68년째 살고 있는 최기선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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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가 코 앞에 있어도 요샌 갈 수가 없어. 걸어다닐 힘도 없지만 사람 많은 데 낑겨앉기도 싫어. 나무에 주인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타동 사람들한테 빼앗긴 거나 마찬가지지. 여름에 고사 지낼 때는 이 동네 사람이 다 앉지만, 그 나머지는 어디 앉을 수가 있어야지.” 3월 26일, 장수동 만의골 은행나무에서 몇 십미터 떨어진 데 사는 최기선 할머니(84세)를 만났다. 할머니는 이 마을로 시집와서 68년째 살고 있다.

“해방 되던 해 3월에 시집 왔는데 그해 8월에 해방이 됐어. 서울 서초동에서 태어나 살다가, 수도국산 아래서 살다, 주안으로 이사와 살다, 여기로 시집왔어.” 할머니는 만의골이 참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옛날엔 산골이었어. 사람 구경은 못했어. 차도 없고, 그때나 이때나 여기는 집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어.” 할머니는 예전에 고개 너머 부천으로 장을 보러 다녔다. 가파른 고개 너머로 애들은 학교를 다녔고, 어른들은 장을 보고 볼일을 보러 다녔다. “부천 가는 길이 아주 가파라서 눈 오면 댕기지도 못했어. 어느 날 부대 짓고 나서는 길이 막혔어. 그때부터는 만수동 창대시장이나 구월동 모래내시장으로 다녔지. 지금처럼 차들이 많지 않아 한 번 나가는 것도 일이었어. 요샌 차가 워낙 많아져서 못 가는 데가 없잖아.”

할머니가 갓 시집 왔을 당시 은행나무는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그때 나무는 아주 건강했어. 잎사구도 아주 컸어. 그랬는데, 지금은 잎사구가 자디잘아.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작아졌어. 살기가 힘든가 봐. 여름에는 나무 그늘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놀았는데 지금은 타동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나무 옆으로 개울물이 얼마나 맑았는지 몰라. 먹을 수도 있었어. 가을이면 마차에 배추를 싣고 가서 씻어왔어. 그렇게 김장했는데. 저 위부터 말간 물이 내려왔거든. 그렇게 맑던 물을 부대 짓고 나서 못 쓰잖아. 냄새도 나구.”

몇 년 전까지 할머니는 만수동 창대시장 가까이에서 파마를 했다. 요즘은 장자골로 간다. “장자골도 많이 변했어. 요 밑인데, 사람들이 집을 다시 짓기도 하고, 떠나기도 했어. 거기 아파트꺼정 들어섰잖아. 그 마을에도 여기 은행나무처럼 큰 느티나무가 있었어. 언젠가 그 마을로 뭘 먹으러 갔다가 지나가면서 봤어. 여기는 낭구 때문에 집도 못 지어. 은행낭구 가까이라고 못 짓게 하잖아.” 지금은 남이 장사를 하지만, 얼마 전까지 할머니 딸들이 '감나무집'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음식점을 했다. 집을 새로 짓기 전에 살던 집 대문 옆에는 색바랜 소파가 놓여 있었다. 할아버지가 나와 앉아 은행나무를 바라보던 곳이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잠시 쉬었다 가기도 하고, 때로는 소독통이나 물병이 놓여 있기도 했다. 하지만 대개는 햇볕과 바람이 쉬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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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손자들은 만의골에 놀러오면 주로 은행나무 주변에서 놀았다. 요샌 크기도 컸지만 텔레비전만 보다 간다. 워낙 사람들이 북적대서 예전같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다리(외곽순환도로)가 마을 앞에 ‘바짝’ 생기는 바람에 만의골을 다 버렸다고 했다. 사실, 도로가 마을을 짓누르는 느낌도 받는다. 좀 멀리 내거나 내지 말았어야 했다. 사람들이 낸 길은 언제나 숨통을 조인다. 속도를 앞세워 만든 길이 마을 앞을 가로막았다. 할머니는 요새 화 나는 일이 있다. 몇 년 전에 집을 지을 때 너무 높게 짓는 바람에 다시 집 옆에 건물을 짓다가 헐렸다. “집을 너무 높게 지어서 장사하기 힘들어. 여기는 소래산 상아산 관모산을 다니는 사람이 많은데, 그 사람들은 신발 안 벗고 국수 먹고 싶어하거든. 우리도 집을 짓다가 다 허물고 말았어. 요새는 그 스트레스로 소화도 안 돼. 부애가 나. 마을 사람들이 집을 잘 짓고 장사하는 게 배아파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일이 잘 되지 않으니까 울화통이 터져.”
 
은행나무에서 가장 가까이 사는 할머니는 문만 열면 나무 한 그루가 떡 하니 보였다. 할머니는 조금 있으면 예쁜 싹이 난다고 알려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나무를 좋아하고 기렸다. 사람들이 갹출해서 고사를 지냈다. 음력 칠월에는 고사 지낼 때 소머리 삶아서 나눠먹고, 음력 시월이면 산에 올라가 산신제도 지냈다. “고사 지낼 때 사람이 엉뚱하게 많아. 예전에는 마을 사람만 있었거든. 인천대공원 자리에도 마을이 있었어. 밭들도 있고. 사람들은 많이 이사갔지.”

“이맘때면 나물 뜯으러 많이 다녔어. 소래산으로 관모산으로 다 다녔어. 시방은 나물이 없어. 취나물이고 뭐고 지금은 씨도 없거든. 나물 뜯으러 안 다닌 데가 없었어. 내가 이렇게 아픈 건 젊어서 일을 많이 해서 그래. 지게질까지 다 해서 골병 든 거야.” 할머니는 창 밖으로 관모산 쪽을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바라보는 곳에는 서울외곽순환도로가 하늘에 높게 걸려 있었다. 할머니는 마을이고, 사람들이고 예전이 훨씬 좋다고 말했다. “일할 게 있으면 은행나무 아래로 갖고 가서 일했어. 마을 사람들도 거기서 만나고. 근데 요샌 타동 사람들한테 밀려서, 아예 갈 생각도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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