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화가 우리집에서 이렇게 활짝 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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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화가 우리집에서 이렇게 활짝 피다니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3.30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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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팝 포엠, 박형준 시인 시낭송회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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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구 구월동에 있는 '리스팝 포엠'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시인을 초대해 시낭송회를 연다. 3월 29일 오전 11시, 스무명 남짓 모인 사람들이 박형준 시인의 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박형준 시인이 <가구의 힘>을 읽었다.
“얼마 전에 졸부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외삼촌이다 / 나는 그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만들어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마다 사각 브라운관 TV들이 한 대씩 놓여있는 것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닌지 다녀오신 얘기를 하며/ 시장에서 사온 고구마 순을 뚝뚝 끊어 벗겨내실 때마다/ 무능한 나의 살갗도 아팠지만/ 나는 그 집이 뭐 여관인가/ 빈방에도 TV가 있게 하고 한 마디 해주었다/ 책장에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대계라든가/ 니체와 왕비열전이 함께 금박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할 그 집을 생각하며/ 나는 비좁은 집의 방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가구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나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 나오는 오래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올라야 하거든

나는 여러 번 이사를 갔었지만/ 그때마다 장롱에 생채기가 새로 하나씩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 끌고 왔던 것이다/ 새로 산 가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만 봐도/ 금방 초라해지는 여자처럼 사람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먼지 가득 뒤집어쓴 다리 부러진 가구가/ 고물이 된 금성라디오를 잘못 틀었다가/ 우연히 맑은 소리를 만났을 때만큼이나/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법이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기 때문이다/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것……/ 하고 졸부의 집에서 출발한 생각이 여기에서 막혔을 때/ 어머니가 밥 먹고 자야지 하는 음성이 좀 누그러져 들려왔다/ 너무 조용해서 상심한 나머지 내가 잠든 걸로 오해하셨나  

나는 갑자기 억지로라도 생각을 막바지로 몰고 싶어져서/ 어머니의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받아들이며/ 깨우러 올 때까지 서글픈 가구론을 펼쳤다”

<가구의 힘>
“동네 앞에 인천제철이 있고, 기차가 지나고, 동국제강이 있고, 좀 더 가면 화수부두가 있는 곳, 송현아파트에 살았을 때 썼다. 89년말 제대를 하고, 몇 달 일하다가 가을쯤 신춘문예를 준비할 때였다. ‘이번에도 안 되면 대우중공업 다니는 형 ‘빽’으로 취직해야겠다. 올해도 당선되지 않으면 시를 안 쓰겠다’고 ‘마음먹고’ 시를 썼다. 날마다 작은방에 틀어박혀 200~300행 정도 되는 장시를 썼다. 야심차게 내 모든 걸 밀어넣고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때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시골에서 올라오셔서는 서울 친척집을 돌고, 마지막으로 내가 형과 살던 곳으로 왔다. 거실에서 고구마순을 다듬으면서 잔소리를 했다. 나는 그때 밤에는 시를 쓰고, 낮에는 잠을 퍼잤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나름 효자인지라 문을 반쯤 열고 놓았는데, 그 사이로 어머니 말씀이 들어왔다. 항변으로, 시 쓴 여백에 ‘낙서’를 했다. 나중에 낙서를 보니 시 같더라. 정서해서 보냈더니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어머니가 한몫했다. 잠깐, 1, 2행 졸부 된 외삼촌은 ‘시적 허용’이다. 내 외삼촌은 시골에서 농사를 많이 열심히 짓는 분이다. 외삼촌이라는 ‘거리감’이 있어야 사유할 수 있다. 빨리 쓴 시지만, 잠재된 뭔가가 어머니를 통해서 촉발되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어머니의 잔소리 때문에 쓴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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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쉬다 1>
“밤에 시를 쓰고, 낮 두시쯤에 일어나는 생활은 나름 현명한 생활 방편이었다. 늦게 일어나야 밥을 늦게 먹고, 어디 갈 데가 없으니까 네다섯시쯤 동인천역까지 걸어가 대한서림 2층에서 시집을 비롯한 책을 좀 보고, 오락실에 들렀다가, 자유공원에 올라갔다.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일상이었다. 도시 공원은 카페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도시의 커튼’ 같다. 커튼 너머 도시 사람들의 기쁨과 추억이 어른거린다. 공원을 찾는 늙은 사람들은 겉으론 화려하진 않다. 그 사람들에게서 소박함, 명랑함, 밝음을 보려고 했다. ‘시쓰기’와도 닮아 있다. 고양이를 만지는 것과 같은 부드러움이 있다. ‘부질없는’ 것이 있다. ‘부질있는 일’이면 여러분이 여기 오겠냐. 이런 부분이 시가 갖고 있는 면이다. 참, <가구의 힘> <공원에서 쉬다1>로 내가 백수같지만 나름 상당히 열심히 일한 사람이다.(사람들 웃음)”

<껌종이를 주우면서>
“고향인 정읍에 살 때 ‘읍내’까지 친구들과 들판 한가운데 철로를 걸어다녔다. 철로에는 ‘껌종이’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예전에는 기차문이 열려서 사람들이 껌종이를 마구 버렸다. 시골 아이들이 ‘이브’ 껌종이에서 ‘부재(不在)의 냄새’를 맡으면서 걸었다. 도시로 가고 싶은 시골 아이들의 꿈, 불안이 있었다. 침목을 밟고 읍내로 가면서 서울로 가는 연습을 하는 거였다. 또 기찻길에 치여 죽은 사람들의 기억이 있다. 기찻길은 은근히 따뜻해서 노인들이 앉아있곤 했다. 철로에는 ‘죽은 사람들의 피’를 먹고 핀 꽃들과 껌종이 냄새가 있었다. 아이들이 읍내로 가봤자 짜장면을 먹을 돈은 없었다. 창문 너머로 빈 그릇이 쌓인 것을 보면서 현실은 불안하지만, ‘불안한 행복’을 느꼈다. 철로를 보면서 ‘부재하는 것’들이 갖는 향내를 맡으면서 약간 행복했다.”

<저곳>
“공중(空中)은 중심이 비어있지만 넉넉한 곳이다. 바슐라르에 따르면, 새들은 날아갈 때만 새다. 하늘을 나는 새는 화려하지 않고 푸르거나 검다. 지상에서는 공작새처럼 화려하게 살고, 공중을 나는 새는 그렇지 않다. 큰새든 작은새든 공중에서는 평등하다. 장가 못 간 사람의 비애나 한탄이라고나 할까. 2002년 당시에는 장가를 가고 싶었나 보다.(웃음) ‘초월에 대한 욕망’도 있지만 따뜻한 일상을 꿈꾸는 낙가적인 면도 있다.”

<사랑>
“한 여자와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날개를 푸득거리며 날고 싶은 오리가 바로 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다.”

<빛의 소묘>
“저녁 무렵, ‘어떤 상태’, 삶의 미묘한 순간을 관조하듯 몰두해서 쓴 시다. 소금쟁이가 물 위를 걸을 때의 미묘한 파장, 미묘한 상태처럼 우리 발자국에서도 뭔가 남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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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젊은 날 동백을 보지 못하셨다/ 땡볕에 잘 말린 고추를 빻아/ 섬으로 장사 떠나셨던 어머니/ 함지박에 고춧가루를 이고/ 여름에 떠났던 어머니는 가을이 되어 돌아오셨다/ 월남치마에서 파도소리가 서걱거렸다/ 우리는 옴팍집에서 기와집으로 이사를 갔다/ 해당화 한그루가 마당 한쪽에 자리잡은 건 그 무렵이었다/ 어머니가 섬으로 떠나고 해당화꽃은 가을까지/ 꽃이 말리비틀어진 자리에 빨간 멍을 간직했다/ 나는 공동우물가에서 저녁해가 지고/ 한참을 떠 있는 잔광 속에서 서성거렸다/ 어머니는 고춧가루를 다 팔고 빈 함지박에/ 달무리 지는 밤길을 이고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이제 팔순이 되셨다/ 어느날 새벽에 소녀처럼 들떠서 전화를 하셨다/ 사흘이 지나 활짝 핀 해당화 옆에서/ 웃고 있는 어머니 사진이 도착했다/ 어머니는 한번도 동백들 보지 못하셨다/ 심장이 고춧가루처럼 타버려/ 소닷가루 아홉 말을 잡수신 어머니/ 목을 뚝뚝 부러뜨리며 지는 그런 삶을 몰랐다/ 밑뿌리부터 환하게 핀 해당화꽃으로/ 언제나 지고 나서도 빨간 멍자국을 간직했다/ 어머니는 기다림을 내게 물려주셨다”

<멍>
“시골집에 갔을 때 마당에 핀 해당화꽃을 보면서, ‘우리집에서 이렇게 활짝 피다니!’ 놀랐다.  나름 큰 사건이었다. 그렇게 잘 산다는 행운목도 잘 키우지 못하는 나한테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사진으로 찍어 간직하고 싶었지만 사진기가 없어 찍지 못했다. 나중에 어머니가 마을 건너 교회에 가서 목사님한테 부탁을 하고, 목사님이 사진기를 가져와 직접 찍어줬다. 어머니는 사진을 먹을 거랑 택배로 보내주었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 섬으로 고춧가루를 팔러 다녔다. 여름에 떠난 어머니는 가을에 돌아왔다. 어린 나는 우물가에서 어머니를 기다렸다. 한 번은 저녁 무렵 동구로 어머니인 줄 알고 달려들었는데 어머니가 아니더라. 우리 어머니도 동백꽃처럼 활짝 피고 싶지 않았을까. 어머니가 섬에서 돌아오면 누나들과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아주 잘 불렀다. 해당화는 지고나서도 ‘빨간 멍’이 남는다. 어머니의 삶과 같다. 어머니는 ‘소닷가루’를 아홉 말을 먹었다!는 말을 많이 했다. 자기 삶을 희생하면서도 멍 자국을 남겼듯, 내게도 ‘기다림’을 남겨준 것 같다. 나는 ‘이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식의 실천적 삶을 시에 표현하지 않았다. 감정을 알아달라고 호소하고도 싶지 않다. 삽화나 사진처럼 남기고 싶을 뿐이다. 세상에 대한 기다림이 있다. 살면서 잘됐으면 좋겠다는 기다림일 수도 있다.”

<가슴의 환한 고동 외에는>
“봄저녁에 누구나 달려보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이다. 우리 안에서 생겨나는 감각, 어쩌면 ‘꽃들(사물들)’ 속에도 두근대는 박동소리가 있지 않을까?”

<빗소리>
“‘창에 어리는 빗소리’를 ‘반짝거린다’고 시각화했다. 이런, 내 시를 얘기하려니까 힘들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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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집>
“최근 시다. 인도에 갔다와서 쓴 시다. 내 시에는 여행시가 거의 없다. 어딜 가면 뭐가 아름다운지 모르겠더라. ‘늦게 온다.’ ‘환호성’보다는 ‘잘 모르겠다. 왜 아름답다는 거지?’하는 생각이 든다. 한참 지나야 장소나 풍경이 아름답다. 시간이 지나 풍경이 뒤섞이면서 상상적 풍경이 생기고, 그게 숙성해서 시가 된다. <불탄 집>은 시체에 불이 붙어 수평선에 매장하는, 어떤 곡소리도 없는 풍경을 상상해서 썼다. 저녁, 수평선, 화장 이미지가 있다. 누군가 끊임없이 장작을 갖다 때지 않았을까. 인간은 모두 그런 ‘불탄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해는 다시 ‘불탄 집’에서 떠오르지 않나? 불새(피닉스)는 오백년마다 자기가 죽은 재 속에서 태어난다. 부활할 때마다 더 아름다워진다는데, 그걸 꿈꿔본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더듬고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자기의 시간을 ‘짓고’ ‘허물고’ ‘다시 짓지’ 않나? 봄꽃이야말로 잿더미 속에서 피어나는(부활하는) ‘불새’다. 겨울에는 재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나이가 들면 ‘같은’ 봄꽃이라도 더 아름다워 보인다.”

“철길을 걸으며 ‘껌종이’ 냄새를 맡으면서 ‘충실했듯이’, 많이 느끼면 현실에서는 부질없을 수도 있지만 ‘부질없는 것만큼은 충실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단번에 시를 쓰는 스타일은 아니다. 끊임없이 내 마음으로 갖고 와 풍경이 내 맘에 ‘살림을 차리게’ 한다. 삶에서 누릴 수 있어 다행이다. 시를 안 썼다면 가슴에 ‘우울’이 너무 쌓여 ‘미쳤을지도’ 모른다. 시는 부질없을 때 충실하게 살게 해줬다. 또 어머니의 삶이 숭고하구나, 느낀다.”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아들들은 참 좋구나 싶었다. ‘소녀’들은 빨래를 개거나 불을 때야 하지, 철로를 따라 읍내로 갈 수 없었다. ‘소년’이었던 아들들은 다르구나 싶다.(웃음)”
“가난하지만 ‘귀하게’ 자랐다. 큰누나 아이와 난 동갑이다. 어머니는 할머니격이었다. ‘보호막’이고 ‘성스러운 존재’였다. 나는 시골에서 공부를 잘해 초등학교 5학년 때 인천으로 전학왔다. 서울역에서 내려 인천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애달파한 기억’이 있다. 송내역을 지날 때 완전히 ‘시골’이더라. 송현동 달동네를 보고는 ‘경악’했다.(웃음) 수문통 둑에 여치가 있고 바다에 폐선이 있는 걸 보고 ‘암울했다.’ 인생을 어디서 시작하냐가 중요한데 수문통에서 시작하다니!(웃음)”

“시를 어떻게 해야 잘 쓰나?”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사물도 말하고 싶은 게 많을 것이다. 역지사지라는 말을 늘 떠올려야 한다. 상대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나도 아름다워질 것이다. 김소월이 쓴 <진달래꽃>처럼 대상을 깊이 인식하고 ‘한’으로 승화시키면 ‘이해’가 아닌 ‘공감’과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대상의 입장에서 보면 내 삶의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읽어도 모르는 시가 많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래도 한 구절은 이해될 때가 있더라.”
“시인은 독자의 눈에 맞춰서 시를 쓸 필요는 없다. 독자의 입맛에 맞게 쓰기는 어렵다. ‘시쓰기’도 삶의 행위인데, 자기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를 크게 낼 필요는 없다. 진실되게, 관심을 갖고 쓰면 된다. ‘한 구절’을 이해했다면, ‘한 구절’의 진심이 통한 것이다. ‘인생’을 어떻게 다 이해하겠나. 기차 타고 가면서 수많은 역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시도 같다. ‘한 구절’을 이해하고, ‘행복한 순간’을 느끼면 된다.”

조정 시인이 시낭송회를 마무리했다. “내 고향 장성에서는 양동이 들고 기차에서 떨어진 갈탄을 주워담아 학교에 가서 땔감으로 썼다. 세월이 지나서 갈탄이 껌종이로 바뀌었나보다. 박형준 시인이 말한 ‘풍경에 대한 우둔함’은 공감한다. 장성이나 정읍은 워낙 경치가 좋다. 어려서부터 좋은 데를 보고 자라서인지 웬만한 데를 보고는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음 달 30일 오전 11시에는 <코끼리주파수> 시집을 낸 김태형 시인이 시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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