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가르는 날, 뿌듯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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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가르는 날, 뿌듯한 날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4.22 2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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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지역에 있는 전통음식박물관, 그곳에서 장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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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는 건져내서 딱딱한 거 없이 잘게 부수세요. 간장은 고운 망사에 걸러 항아리에 담습니다. 된장은 우리가 먹을 때 농도가 아니구요, 햇볕에 계속 노출되니까 간장을 넣으면서 치대주세요.” 장 가르는 날이다. 남동구 애보박물관 안에 있는 전통음식박물관에서는 요즘 날마다 장 가르느라 장독대가 떠들썩하다.

오늘 장 가르기하러 온 팀은 미추홀외고 학부모회. 누구랄 것도 없이 앞치마에 고무장갑을 끼고 장을 가른다. 이 팀은 3월 13일에 장을 담갔다. 그날은 소금물 농도를 맞춰 숯과 고추, 메주를 넣고 장을 담근 것이다. 그러고 한 달여가 지난 오늘 다시 만나 장을 가른다. 그동안 날이 쌀쌀했던 터라, 더 있다가 장을 갈라야 하는데 여러 명이 한꺼번에 오기가 쉽지 않아 오늘 모였다. 이들은 박물관 음식연구가의 설명에 따라 장 담근 항아리에서 숯과 고추를 먼저 꺼낸다. 그 다음에는 메주를 서너 개씩 꺼내 치대기 시작하고, 간장은 다시 깨끗한 항아리에 담는다.

독에는 버선 그림을 그린 종이가 코팅돼 붙어 있다. 버선 모양을 만들어 붙인 까닭이 있다. 우리 조상은 장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 터라 장독대를 신성한 곳이라 여겼다. 그래서 장독대에 귀신이 나타났을 경우 버선발 속에 들어가서 못 나오게 하려는 속셈과, 귀신을 버선발로 밟아서 근처에는 얼씬도 모하게 했다. ‘귀신 쫓는 버선’이랄까. 시골에서는 진짜 신던 버선을 붙여놓기도 한다. 어떤 독에는 아예 버선 모양 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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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장 담그기에 쓰인 메주는 지난해 11월에 만들었다. 콩을 큰 가마솥에서 푹 삶은 다음, 짓찧어 메주를 만든 것이다. 곰팡이가 올라오도록 잘 말렸다가, 3월일에는 소금 넣고 메주를 넣어 장담그기를 했다. 장 담근 날부터 40~60일 정도가 지나 장 가르기를 할 수 있다. 장 가르기를 한 날부터는 모든 게 ‘하늘에 달렸다.’ 햇볕을 잘 쏘여야 맛있는 간장과 된장이 되기 때문이다.

이날, 장 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장을 가르는 일을 처음 한단다. 이들은 호기심과 신기함 때문인지 화사하고 진지했다. “짜지만 끝맛이 다네.” 이날 참여한 한 사람은 “그동안 얻어만 먹어봐서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처음에는 직접 담그는 게 비싼 것 같았는데, 직접 담가보니 절대 비싼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된장은 힘이야. 된장을 치대는 일이 무척 힘들다. 사실, 따지고 보니 그동안 편하게 얻어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장을 갈라놨으니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틀림없이 작년만큼 맛있을 것이다”라며 기대에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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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연구가 지경영씨는 “다들 큰일 하셨다. 힘들긴 하지만, 이렇게 고생하면 1년 먹거리 준비하는 거다. 장 담그는 것보다 장 가르는 일이 힘들다. 이제 하늘이 어떻게 하냐에 따라 장맛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메주 상태로 겨울을 난다. 두 달 정도가 메주 상태로 있게 된다. 장은 메주, 소금, 물과 정성이 있어야 맛있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연이다. 우리 박물관에서 담그는 장은 봉화 청정지역에서 자라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 또 박물관이 있는 이곳은 인천 청정지역이다. 우리나라 토양과 기후가 가장 좋은 곳에서 장이 만들어지니 얼마나 맛있겠느냐”고 강조했다.

언제나 가게에 가면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간장, 고추장, 된장. 할 일이 많은 현대인에게 일부러 시간 내서 장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바쁘더라고 조금 시간을 내서 시골에 있는 부모님을 찾아가거나, 그런 여유가 없다면 자녀들과 함께 먹거리 장은 직접 담가보면 어떨까. 점점 뜨거워질 햇볕과 시원한 바람, 정성으로 빚어진 장은 시월쯤 아주 맛있게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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