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날마다 '으스스숲'에서 놀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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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날마다 '으스스숲'에서 놀아요!"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4.24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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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학교 부설 숲유치원 수업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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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학교 부설 숲유치원 6,7세 어린이 20명은 날마다 인천대공원에 모인다. 어린이들은 대부분 등산복을 입고 장화를 신었다. 비온 다음 날이라 숲에서 맘껏 놀려면 장화를 신어야 한다. 숲유치원은 다른 유치원들처럼 셔틀버스가 오는 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직접 데려다 주어야 한다. 4월 24일,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인천대공원에서 숲유치원 원생들이 수업받는 광경을 들여다봤다.
 
 
“숲으로!” 
어린이들이 다 모이자 선생님이 “숲으로!”를 외쳤다. 선생님은 인천대 숲유치원에서 3명, 인천대공원 수목원에서 지원 나온 선생님 1명, 인천대학교 유아교육학과 학생 1명 등 다섯명이다. 선생님 한 명당 어린이 서너 명 손을 잡고 유아숲체험원으로 간다. 줄은 서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이 활짝 핀 길을 걸으면서 궁금한 점이 많다. 어제 집에서 있던 일을 선생님께 귓속말로 속삭이기도 하고, 가다가 나무토막을 줍기도 한다. 어떤 친구는 걸음을 멈추고 벚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한참 바라본다. 선생님은 누구 하나 빨리 가자고 재촉하지 않는다. 김은숙 원장은 “우리는 날마다 소풍입니다. 활짝 꽃이 핀 숲에서 날마다 노니까요”라면서 “우리 어린이들은 줄을 서서 가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관심사가 많아서 여기저기 둘러볼 게 많아요”라고 말했다.

인천대 부설 숲유치원은 2009년 3월 녹색교육 활성화를 위해 북부지방산림청과 인천대학교가 업무협약을 맺고 문을 열었다. 숲유치원은 인천대공원반과 청량산반으로 두 군데다. 숲속이 유치원인 어린이들은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 가는 체험현장학습과는 차원이 다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불어도 숲으로 간다. 숲유치원은 교실이 따로 없다. 숲 전체가 교실이고 수업 재료다. 나무, 풀, 하늘, 새, 다람쥐, 청설모, 벌레, 지렁이, 바람, 냄새….

숲유치원은 1990년대 유럽에서 인기가 높았다. 덴마크, 스웨덴, 독일 등 유럽국가에서는 대안교육으로 자리잡았다. 숲을 배움터로 삼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8년부터 움직임이 활발하다. 인천대 부설 숲유치원도 인기가 많아 추첨으로 어린이를 선발하였다. 부평에서 통학을 시키는 심우정씨는 “스스로 크고, 자유롭게 놀게 해주려고 숲유치원에 보낸다”고 말했다. 또 송도에서 오는 시우 어머니는 “숲유치원이 있어서 좋다. 오늘 같은 날은 벚꽃이 활짝 핀 공원에서 아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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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와 살구나무
“가방 걸어놓고 모이세요.” 선생님이 말하기 전에 나무걸이에 가방을 알아서 거는 어린이가 많다. 통나무에 빙 둘러앉아 수업이 시작되었다. “우리 들어오면서 무슨 꽃 구경했죠?” “벚꽃이요!” “벚꽃이 떨어지고 있었어요.” “할 일을 다하고 떨어지는 거예요.” 선생님이 묻자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큰소리로 말한다.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는다. “그럼, 벚나무 꽃이 떨어지면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있을까요?” “나무에 입술 모양이 있나 보면 돼요!” “맞았어요. 입술 모양 본 사람? 안 본 사람은 보러갈까요? 아니면, 입술 모양을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사람도 보러갈까요?” “한 번 더 보러 갈래요!” 결국 모두 벚나무 나무줄기를 보러 가기로 했다. “출발!”

“입술 여기 있어요!” 자연스럽게 서너 명씩 모여 나무에서 입술을 찾아낸다. 아예 돋보기를 들고 다니는 친구들도 몇 있다. 집중해서 돋보기를 보는 모습이 무척 진지하다. 입술을 찾은 어린이들은 그네를 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말했다. “근데요, 지금 그네 타도 되는 시간이에요?” “다시 자리로 들어가 공부해야 하는 거죠!” 아이들끼리 말을 주고받는다. 아까 수업하던 자리로 오는 도중에 누군가 소리쳤다. “청설모 있어요!” “어, 저기도 있네. 친군가 봐요.”

하얀 꽃이 활짝 핀 나무 아래로 돌아와 다시 수업이 시작됐다. 선생님이 벚나무와 벚꽃을 설명하고 머리 위쪽에 있는 꽃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꽃은 뭘까요?” “하얀 게 이건지 몰랐어요.” “높이 있으니까 잘 몰랐죠? 수피에 입술 모양이 있나 살펴볼까요?” 선생님 말이 떨어지자 서너 명씩 나와서 수피를 살핀다. “입술이 없어요. 다른 나무 같은데요. 벚나무 아닌가봐요.” “선생님이 오늘의 궁금증을 풀어줄게요. 이 나무 꽃잎이랑 벚꽃잎이랑 손바닥에 놓고 살펴볼까요?” “아, 알겠다. 색깔이 비슷해요. 꽃잎 크기가 달라요.” “꽃받침도 달라요.” 수업 받는 내내 새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 머리 위에 핀 꽃은 살구나무꽃이에요. 벚꽃과는 다르죠. 살구나무에서는 살구가 열려요. 벚나무에서는 어떤 열매가 열릴까요?” 아이들이 엉뚱한 대답을 하자 선생님 한 분이 ‘버’로 시작된다고 힌트를 주었다. “작년에 우리가 먹었어요. 피 흘린 것처럼 입에 막 묻었는데. 또 손톱에도 발랐잖아요.” “버들!” “버나나!” “포도!” “아, 안타깝습니다. 버찌!” “아하, 버찌지.” 선생님과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그때 헬리콥터가 지나가자 아이들이 흥에 겨운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 시간이 끝나자 선생님이 외쳤다. “이렇게 기분 좋은 상태로 ‘으스스숲’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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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스스숲’에서
키가 무척 큰 메타세쿼이아가 많아서인지 아이들이 ‘으스스숲’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비 올 때는 나무와 나무를 연결해서 비가림막을 하고 그 아래서 수업을 한다. 아이들은 빗소리와 함께 선생님이 읽어주는 동화책을 듣는다. 비온 다음 날이라 공기가 더 맑다. 한쪽에서 들리는 소리. “선생님, 지렁이 있어요!” “우리가 지렁이 집에 놀러 온 거지.”

아이들은 엄마가 싸준 간식을 먹기 시작한다. 간식을 먹는 친구한테 재미있냐고 물었다. “저는 올해 새로 왔어요. 여기는 다 재밌어요. 사실은요, 저는 뱀을 키우고 싶어요. 언젠가 뱀을 봤는데 정말 귀여웠어요.” 뜻하지 않게 뱀을 키우겠다고 한다. 그 옆에서 간식을 먹던 친구가 거들었다. “저는요, 독사를 키우고 싶어요. 집에는 달팽이를 키워요. 걔네들이 죽기 직전에 베란다에 놔줬는데 지금은 배가 뚱뚱해요.” “그럼 뚱뚱이구나.” “아니야, 달팽이야.” “달순이, 달돌이, 돌돌이라고 할까?” 두 친구는 서로 주고받는 말이 재미있는지 한참동안 까르르 웃었다.

간식을 먹은 다음에는 한동안 맘껏 놀 수 있다. 아이들은 아주 익숙하게 자기가 놀고 싶은 데로 간다. 그러고 보니, 으스스숲에는 놀 데가 많다. 흙이 채 마르기 전이라 넘어지면 진흙이 옷에 잔뜩 묻는데도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네와 해먹을 타기도 하고, 선생님과 소꿉놀이를 하기도 한다. 또 몇 명은 언덕을 오르며 미끄럼을 탄다. 동화책을 들춰보는 친구도 있고, 그림 그리는 친구도 있다. 또 몇 명은 연못가에서 논다.
 
숲유치원에는 잔소리가 없다. “하지 마!” “빨리 해!” “옷 버린다!” 등등 아이들을 재촉하거나 말리는 말은 찾을 수 없다. 아이들은 그저 놀기만 한다. 자유롭게 놀면서 창의적인 어린이가 되고, 남을 배려하고, 참고 이겨내는 끈기가 생길 것이다. 숲에서 만난 아이들 표정은 봄햇살처럼 마냥 해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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