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사람들은 대한서림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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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사람들은 대한서림을 사랑했다."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6.19 00:31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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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연 지 60년 된 동인천 '대한서림', '변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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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서림 앞에서 만나자.”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동인천 쪽에서 볼일이 있는 인천 사람들은 대부분 약속장소를 대한서림으로 잡았다. 동인천 주변에서 학교를 다녔거나 아니거나, 약속장소는 무조건 ‘동인천 대한서림’이었다. 서점 안에선 사람들이 책장을 뒤적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렸고, 서점 앞도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야 할 정도로 북적거렸다. 그곳은 약속이 있는 곳, 설레는 곳, 사람이 있는 곳이었다. 동인천(중구 인현동) 대한서림은 1953년에 문을 열었고, 서점 1,2층이 ‘뚜레쥬르’로 바뀐 지도 벌써 일 년이 돼간다. 김순배 대표(70)를 만나 60년 된 대한서림 이야기와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김순배 대표는 인천 초대 시의원을 하던 시절, 인천여고가 연수동으로 이전하는 것을 발의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서점을 하니까 근처에 학교가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다. 하지만 당시에 이곳은 인천여고, 인일여고, 인성여고, 제물포고 등 학교 넷이 따닥따닥 붙어 있어서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래서 90년대 중반에 인천여고를 옮겨야겠더라.” 그에게 아직 정치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갈 길이 아니었다. 10년만 한 우물을 팠는데, 지금 생각하면 안 했으면 차라리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과 숨결이 다 다른데, 나한텐 그 길이 아니더라.”

대한서림은 1953년에 창업했다. 휴전협정이 되기 한 달 전쯤, 아버지 친구분인 홍종선씨가 대한서림을 세웠다. 그분은 나중에 김 대표의 장인어른이 되었다. 김 대표는 ‘경영’과는 거리가 먼 공대 기계공학과 출신이었다. 그는 1978년 해외에 나가 있다가 휴가 한 달을 맞고 잠시 귀국했다. 당시는 인천에서 전국체전이 열릴 때여서 곳곳에 건물을 짓고 개발이 한창이었다. 대한서림 건물이 늦게 지어지는 바람에 그는 휴가가 끝나도 외국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때 지어진 건물은 1,2층으로 지었고, 지금 대한서림이 있는 바로 옆 건물이었다. 지금 대한서림이 있던 자리는 당시 별제과 건물이었고, 인천에서 최초로 6층 건물이었다. 별제과, 별다방, 별음악감상실은 젊은이들이 많이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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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1989년에 별제과 건물을 사들이고 이전했다. 당시 젊은이들에겐 별제과와 대한서림은 ‘만나는 장소’였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대한서림 앞으로 약속장소를 정했다. 1978년부터 대한서림을 경영하기 시작한 그는 “그 시절에는 동인천이 모이는 중심지였다. 고객이 참 많았다. 지금이야 구월동 쪽으로 인천의 중심축이 이동했지만, 그 당시에는 사람이 많이 찾았다”며 “인터넷이 나오면서 타격이 컸다. 독서인구도 줄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추세다. 더욱이 책은 상품 중에서도 인터넷으로 구입하기 아주 쉽다. 제목과 저자만 치면 곧바로 배달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활성화하면서 서점이 줄고, 덩달아 매체도 많아져 저절로 책을 안 보는 사회가 됐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또 당시 젊은이들은 딱히 할 게 없었다고 전했다. “직장인들, 특히 여성들은 소설, 잡지, 신간을 부지런히 챙겨보는 사람이 많았다. 퇴근하면서 서점을 찾았다. 하지만 이젠 인터넷으로 책을 살 뿐만 아니라 볼 수도 있는 세상이 됐다. 독서인구가 줄고, 책도 사보지 않게 됐다.”

세월 따라 대한서림도 바뀌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나, 예전에 대한서림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대한서림이 빵집으로 바뀌다니.’ 아니, 1년 전에 1,2층이 뚜레쥬르로 바뀐 다음에는 세월이 지나갔음을 탓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만, 사람은 스스로도 세월 속에 몸을 맡기고 살았으면서 가슴을 쓸어내린다. 세상 어디 한두 곳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받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한 곳 중 하나가 ‘대한서림’일 것이다. 모처럼 동인천 쪽에 갔다가 대한서림이 바뀐 모습을 보고 ‘주체할 수 없는’ 허전함, 상실감(?)을 느끼는 이도 있다. 40대 중반인 한수정씨는 “대한서림 1,2층이 빵집으로 바뀐 걸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더라. 갑자기 내 학창시절이 빵집으로 퇴색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욕심이다 싶더라. 다 변하는데, 대한서림도 변해야 살아남지 않겠냐.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며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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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 대표에게 물었다. “지난해 8월에 미국에 있는 큰 서점을 다녀왔다. ‘차 마시고 서점과 같이 쓰는 공간’이었는데 참 짜임새있더라. 우리나라도 커피숍이 많다. 사람들이 만나서 먹고 마시고 책도 사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 이런 공간으로 바꾸자’고 고심하다가 1,2층을 쉬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원래는 스타벅스가 들어올 수도 있었지만, 계약조건이 잘 맞지 않았다. 서점과 분리시켜 달라든가, 출입문을 따로 내달라든가… 하지만 난 책과 카페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뚜레쥬르가 들어오게 되었다. 대체로 잘 했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무조건 섭섭하다고만 하면 내부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서점들은 운영하기 다 어렵다. 더욱이 인터넷서점이 생기면서 책을 미끼상품으로 덤핑하는 곳도 많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라며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오프라인으로 서점을 꾸리려면 ‘공간도 좋아야 하고, 직원도 많이 써야 하고… 한마디로 비용이 많이 든다. 인터넷서점은 목록만 받아서 발송하니까 재고 쌓일 일도 없다. 오프라인에서는 책을 다 구비하고 손님이 되도록 많이 보게 해야 한다. 공간과 목이 좋아야 하는 대신 경비가 많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이젠 빵집으로 바뀐 것에 대해선 평이 좋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아이를 '수재'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 부모가 애들 앞에서 텔레비전이 아니라 책을 봐야 한다. 독서가 밥 먹고 자는 것처럼 일상이 돼야 한다. 세상 없는 과외공부보다 낫다. 학원이나 과외를 능사로 생각하는 부모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 ‘책을 가까이’ 하면 된다. 지금은 꼬마들이 참 좋아한다. 전보다 아이들을 데려오는 가족 단위 손님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책 읽는 습관을 잘 들여야 할 꼬마들이 좋아하니 다행스럽다. 꼬마들은 빵과 아이스크림, 주스 등 먹을 게 있어서 좋아한다. 책도 보고 먹을 것도 있고. 뚜레쥬르 본사에서도 우리를 신경 많이 쓴다. 다른 지역에서도 모델점으로 삼고 찾아온다. 지난 1월에 미국 뉴욕 맨하튼에 가봤더니 뚜레주르 카페로 바꾸더라.”
 
“구색이라는 건 공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공간이 따라갈 수 없다. 하루에도 신간이 수백 종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다 받을 수가 없다. 공간이 구색 맞추는 걸 다 따라갈 수 없잖은가. 1~5층까지 서점이던 것을 3~5층으로 바꾸었다. 반 정도 줄어든 셈이다. 우리는 우리나라 최초로 전산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예전에는 판매하는 사람의 '감'으로 주문했다. 감각으로 일한 것이다. 78년도엔 컴퓨터가 없는 때라 오래 일한 베테랑 직원이 무엇이 잘 팔릴지 주문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르바이트생도 통계를 보고 주문할 수 있는 체계가 됐다. 공간이 줄어드는 걸 프로그램의 다양화로 커버했다. 하루에 팔릴 수 있는 책을 한정된 공간에서 ‘회전’을 잘 하면 된다. 하루에 신간만 해도 200, 300종인데 다 갖고 있을 수 없다. 한 달에 늘어나는 양이 많아 공간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통계로 잘 나가는 추세인지, 줄어드는 추세인지 따져본다. 최소의 재고량으로 최고의 구색을 갖추는 것이다. 1년에 한 권도 안 나가는 책은 주문 받아서 찾아주면 된다. 책만큼 새롭게 돌아가는 것도 없다. 1,2층이 뚜레쥬르로 바뀌었어도 별 차이 없다. 3,4,5층에도 워낙 책이 많다.” 1,2층이 빵집으로 바뀐 다음에 아동서적 판매가 늘었다. 8월초에 뚜레쥬르 들어온 지 1년인데, 그때는 대한서림과 뚜레쥬르가 공동으로 이벤트를 벌일 것을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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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전쟁이 채 끝나기 바로 직전에 문을 연 대한서림. (휴전협정일은 1953년 7월 27일이다.) 인천 사람들은 대한서림을 아꼈다. 어떤 사람은 서울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보다가 살 때는 정작 대한서림에 와서 사기도 했다. 그만큼 인천 사람들은 인천을 사랑하는 마음을 대한서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표현했다. 김 대표는 늘 감사하다고 말했다. “인천시민은 대한서림을 사랑했다. 우리는 그 덕을 많이 봤다. 정치하면서 ‘여론조사’를 할 때도 혜택을 많이 봤다. 인천 시민은 대한서림을 사랑하고 믿었다. 그런 걸 아니까, 우리도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

김 대표는 돈이 없을 때 서점에 가면, ‘보고 싶은 데를 다 갈 수 있다’고 했다. 책장을 열면 놀라운 세계가 펼쳐진다. 책을 읽으면 신바람도 생기고 의욕도 난다. 70년대만 해도 사람들은 책을 많이 봤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서점에 갔다. 직원들한테 서점에서 일하는 걸 좋은 기회로 여기라고 말한다. 책을 빌려볼 수도 있으니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로 잡으라고 한다. 내 손자는 한 살이 채 안 됐지만 늘 책과 함께 했으면 한다. 그래서 아들 며느리한테도 신신당부한다. ‘서점에 데려가서 무조건 책을 보여줘라.’”

그는 또 사람은 나이를 먹어서도 일하는 건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하던 친구들이 일을 놓으면 ‘폭삭’ 늙는다. 건강을 유지하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운동’은 육체에 스트레스를 가하는 일이라고 한다. 뼈든 근육이든 건강하려면 운동 하고, 좀 쉬고, 쉬었다 다시 운동하고… 몸과 정신에 적당한 스트레스를 주면 건강해진다. 어느 과학자가 한 실험에서처럼, 적당히 흘리고, 쉬고, 흘리고… 스트레스도 받고 휴식도 취한 쥐가 가장 건강했단다. 생명이 있는 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줬다 풀었다 해야 한다. 노인들이 잠 안 오는 거, 그거 ‘운동 부족’이다. 일한 만큼 쉬도록 돼있고, 힘들면 쉬게 된다. 계속 움직이는 사람이 건강하다”고 밝혔다. 그는 날마다 일이 있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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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몇 장 읽어보면 다 안다. 그만큼 책은 ‘노출’돼 있다. 식품을 보고 농약, 비료, 불량식품 등등을 걱정하며 꺼림칙해한다. 상품이란 게 본의아니게 유통 생산과정에서 유해할 수 있다. 하지만 책 내용은 우리를 일깨우고, 사람답게 만들고, 인성을 만든다. 정가로 정직한 장사를 한다. 지금 국회에 ‘책정가제’가 ‘계류 중’이다. 책이 특정업체들의 미끼상품으로 쓰이면 안 된다. 서점이 안 되면 결국 출판사가 문 닫는다. 전국에 한때 4000개였던 서점이 1000개 정도로 줄었다. 서점이 줄어들수록 출판사는 안 될 것이다. 독자한테 가게 되고, 다양하게 취사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정가제가 돼야 한다고 힘있게 말했다.

주말마다 멀리 놀러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 김 대표는 주말에 놀러가지 않으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너도나도 멀리 가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했다. 꽉 막힌 길에서 차 안에 있는 게 얼마나 힘드냐고. 멀리는 가끔 가고, 시간이 날 때 가족이 책방으로 나들이를 하면 이모저모 좋은 점이 많다고 이른다. 그러면서 책방에 나오면 스스로 든든해지고 의욕이 생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책을 사지 않더라도 자주 들러야 한다. 엘리베이터 앞에 ‘신간정보’를 비치했다. 서점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공간’,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해야 한다. 인재는 실제적으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건 사람 됨됨이라고 본다.공부 잘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사회적 분위기나 가정교육도 중요하지만, ‘성장과정에서 지성을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

그는 또 “우리 서점은 ‘우리 집 주말은 서점 가는 날’이라는 현수막을 달기도 했다. 지금은 리모델링하느라 잠깐 거둬둔 상태지만 다시 달 것이다. 부모가 아무리 잔소리해도 소용없다. 부모가 어떠한 인생을 살라고 자식에게 시시콜콜 안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을 보다 보면 스스로 무얼 할 건지 찾게 되고, 책을 가까이 하게 된다. 서점 들르는 걸 생활화했으면 좋겠다”면서 “일주일에 한 번 부모와 자식이 손 잡고 서점에 들르면 알게모르게 소통이 되고 대화가 열린다. 길에서 시간을 다 보내지도 않을 것이다. 하루 세끼 밥 먹고 잠 자듯, 운동하듯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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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근 2014-04-28 07:43:19
인고 출신 ㅋㅋㅋㅋ 인터뷰 중에 약간 틀린것두 있네 ㅋㅋ 성공못한 정치인 ㅋㅋ별제과뿐만 아니라 별음악감상실도 부활하면 졸듯? 희망사항 ?

인천사람 2013-06-24 09:14:32
"시링헸다"라는 헤드라인이 딱! 인거 같은데,
가슴한켯이 먹먹하군요. ^^;; 정말 사랑했었었죠.

인일출신 2013-06-20 18:00:38
ㅋㅋㅋㅋ 고등학교 졸업한지도 오래됐는데 요즘도 동인천에서 볼일있으면 대한서림앞에서 만남.... 대한서림은 참 좋습니당

인성출신 2013-06-19 13:38:30
옛날의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 울컥했어요. 옛날뿐만 아니라 지금도 참 좋은 대한서림이랍니다.

축현초딩 2013-06-19 08:58:56
뚜레쥬르 보다 예전 별제과를 다시 복원했다면 기술을 일반 제과 기술자를 고용해서 리뉴얼 했다면 더 잘됐을것 같은데..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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