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인현동 쪽방촌, "겨울나기는 정말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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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인현동 쪽방촌, "겨울나기는 정말 힘들어요"
  • 이병기
  • 승인 2010.01.05 0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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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난로와 전기장판이 그나마 작은 방의 냉기를 줄여 준다. 한쪽에 놓인 TV가 박은실 할머니의 유일한 말벗이다.

4평 남짓한 공간, 부엌과 살림살이를 빼면 어른 3~4명이 앉기도 비좁다. 거동이 불편해 답답한 방에서 하루 종일 TV를 벗삼아 지내는 박은실(85) 할머니. 오래간만에 찾아온 손님들이 말벗을 해주니 쌓아뒀던 말보따리가 절로 풀린다.

"얼마 전 병원에 갔는데 위암이래. 내 나이가 많아서 수술을 하려면 치료 중에 죽을 수도 있다고 서명을 하라는거야. 수술하고 싶지만 돈도 없고, 병원에 있으면 24시간 돌봐줄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없잖아. 차라리 치료를 안 받고 정신이라도 맑으면 사람들이 왔을 때 얘기라도 할 수 있지."

오전 내내 누워 있었는지 뻗친 머리엔 백발 가운데 연갈색으로 염색한 흔적이 보인다. 작은 방 덕분에 이불 위에 깔린 전기장판과 전기 난로 한 개가 그나마 냉기를 없애 준다. 기름으로 돌아가는 보일러는 24시간 내내 켜져 있다. 다만, 가장 약하게 한 채로. 겨울은 할머니의 쌈지돈까지 뺏어가는 계절이다.

돌봄 서비스로 찾아오는 봉사자 덕분에 집 밖 공용화잘실까지 불편한 몸을 이끌지 않아도 된다. 부엌에 놓인 간이 변기.

박은실 할머니가 인현동 쪽방촌에서 거주한지는 13년째. 증손주가 돌이었을 때부터 중학교에 다니는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러나 중구 인현동 1번지에 호적을 둔 것은 근 60년 전, 박 할머니가 26세 때 이곳에 처음 왔을 때였다.

"내 나이 36살에 아들을 하나 낳았어. 신랑은 곧 헤어졌지. 근데 아들이 20세 되던 해 볼링장에서 사고로 죽었어. 딸도 하나 있는데, 걔도 심장에 병이 있는 환자야. 지금은 강원도에서 요양하고 있지. TV 위에 사진은 증손자 사진인데 이뻐서 올려놨어. 손자가 하나 있는데 오지는 않아."

얼마 전까지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이 적적하게 하루 종일 TV만 보며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두어 달 전부터는 국가 지원으로 오전 9시~오후 1시까지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다. 덕분에 병든 몸을 이끌고 집 밖 공용 화장실에 가는 대신, 부엌에 놓인 간이변기를 사용하면 봉사자가 아침에 치워준다. 또 밀린 설겆이와 청소, 전기밥솥에 밥을 앉히는 일도 봉사자의 몫이다.

김은실 할머니가 사는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5만원짜리 쪽방촌. 겨울이 오면 골목 사이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든다.

박 할머니는 정부에서 매월 30만원 가량을 지원받는다. 전기난로와 전기장판 때문에 2만원이었던 전기세가 3만원으로 올랐다. 수도세, 전화비, TV 시청료 등 공과금 7만원을 제하면 실 수령액은 20만원이 조금 넘는다. 여기에 다달이 월세 5만원까지 나가니 없는 살림이 더 쪼들린다. 보증금 50만원도 미처 다 내지 못했다고 한다. 겨울나기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들다는 게 할머니의 얘기다.

생활비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교통비다. 몸이 불편해 가까운 거리도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동사무소나 교회, 보건소를 갈 때면 시나브로 빠져나간다. 더불어 겨울을 나려면 난방유 한 드럼은 사야 한다. 다행히 올 겨울에는 지역 복지관의 지원으로 7만원만 난방비로 지출했다. 

"전에는 통장에 박모씨란 사람이 매달 3만원씩 넣어줬어. 근데 IMF 이후에는 안 들어와. 다른 사람들이 조금만 도와줬으면 좋겠어. 한 사람이 만 원만이라도 주면 고맙지."

손님들이 오래간만에 찾아오자 박 할머니의 말보따리가 풀렸다.

박 할머니는 복지관에서 가져다 주는 도시락으로 점심과 저녁을 때운다. 복지관에서 넉넉히 담은 탓도 있지만, 할머니가 먹는 양이 많지 않아 두 끼로 나눠 먹는다. 아침은 전날 봉사자가 해 놓은 밥으로 끼니를 잇는다.

고기를 좋아한다는 박은실 할머니. 겨울이 쌈지돈을 뺏어가 가끔 먹던 고기도 요즘엔 보기 어렵다. 


도움의 손길 문의:
성 미가엘 종합사회복지관(032-766-09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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