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밤, 도서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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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밤, 도서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12.13 2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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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샘어린이도서관, 별밤 그림자극장 연습현장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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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 가야 돼, 조명.”
“내일 연습할 시간 충분할까?”
“오늘 밤에 완성해놔야 할 것 같애. 밤에 해봐야 문제가 나올 거야.”
“불 좀 꺼주세요.”
 
매진이다. 이미 100명이 신청을 끝냈다는 ‘푸른샘 별밤 그림자극장’. 서구 가좌2동 푸른샘어린이도서관에서는 자원활동가 ‘쌤’들이 모여 연습이 한창이다. 그림자극장이 열리는 밤은 별밤이 아니라 눈 내린 밤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낮이 아닌 ‘밤에’ 도서관을 찾게 된다.  관람을 신청한 어린이들은 '강냉이 담을 그릇'만 가져오면 된다. 강냉이를 먹으면서 그림자극을 볼 것이다. 13일(목) 오후 4시, 극장 막을 올리기 하루 전에 그들이 어떻게 연습하는지 현장을 찾아가봤다. ‘쌤’들은 도서관 한편에 있는 유아방에 무대를 설치하고 각자 맡은 역할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다.
 
'별밤 그림자극장'을 열게 된 까닭이 뭘까. 조명을 만지고 있는 이미영 쌤의 말을 들어봤다. “제작과정은 무척 긴데 정작 그림자극을 하는 시간은 15분이에요.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허무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린이들 기억에 남으면 좋겠습니다. 장비는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빌려왔어요. 샘들이 연습하고 녹음하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건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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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극 막을 올리기 전날, 한창 연습하고 있는 푸른샘도서관 '쌤'들.
 
 
아이들은 주로 낮에 도서관을 찾는데, 왜 번거롭게(?) 밤에 개봉할까. “저녁 7시에 공연을 하니까, 밤에 도서관문을 여는 케이스가 되는 거지요. 푸른샘어린이도서관은 밤에 처음 문열어요. ‘그림자극’을 하는 데를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못 보니까,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림자극은 사실은 친근한 것 같으면서 잘 볼 수 없거든요. 3년 전 낮에 한 번 다른 데 가서 봤는데, 그때도 호응이 상당히 좋았거든요. 낮에 그림자극을 하니까 좋긴 좋았지만, 밤에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맞다. 나이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마을극장은 그야말로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저녁밥을 먹고 마을공터에 온 서커스단이나 극단을 찾아 참으로 귀한 문화생활을 했다. 지금은 집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 건 접어두고라도 예전에 아이들은 캄캄해질 때까지 뛰어다니면 놀다가 밥 먹으라고 부르러 오는 엄마손에 이끌려 하나둘씩 집으로 들어갔다. 밤에도 노니까 당연히 별과 달이 떠있는 하늘은 아주 자연스러운 대상이었다. 지금은 도시의 불빛도 많거니와, 아이들은 학원을 전전하며 다니느라 밤하늘을 바라볼 새가 없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밤과 놀이, 자유가 고스란히 남아있나 보다. 이미영 쌤의 말이다. "쌤들이 설문조사를 했어요. 그랬더니 밤에 도서관에서 놀아보고 싶다는 아이들이 있어서 그걸 토대로 생각하게 됐어요. 밤에 그림자극을 해보자, 밤에 애들을 불러모아 재미있게 놀아보자 하구요. 서구 어도연 회장이 여기 쌤 강진옥 선생님이고, 어도연에서 이런 활동을 많이 하니까 장비도 빌려오고 막을 올리게 된 거죠. <돌부처와 비단장수>에서 인물도 각색하고, 내용도 바꾸었어요.”
 
이번 12월 체험프로그램에 신청한 사람은 100명이나 된다. 쌤들은 처음에는 50명이나 오면 많이 오겠다고 생각했는데 신청한 사람이 넘쳐났고, 대기자까지 있어서 놀랐다고 한다. “접수받을 때 줄을 다 서 있는 거예요. 누구는 보고, 누구는 안 보고… 엄마들이 불만이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그림자극은 이번에 해보고 또 할 수도 있다. 가좌동에 사는 사람들이 또 보고 싶다면 쌤들은 더 할 생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예산이 없어서 어려운 점도 있다. “천막 대여료 5만원 들어갔고, 애들한테 강냉이 먹거리 제공하느라고 쌤들이 자체적으로 걷는 회비를 썼다. 자치센터에서 하는 일도 많고 돈을 쓸 데도 많겠지만, 이런 행사 때는 도와주면 좋겠어요. 내부체험으로 잡혀서 예산이 없어요. 내년에는 내부체험, 외부체험으로 구분해서 하려고 합니다. 외부는 버스 타고 외부로 나가고, 내부는 도서관에서 하는 거예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 다른 ‘쌤’들은 그림자가 좀 더 잘 보이게 하는 방법이 뭘까 이야기하고 있었다. 천막에 바짝 붙여야 그림자가 또렷하게 나온다, 알지만 쌤들이 앞에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좀 더 긴 막대를 이용하자… 등등 끊임없이 의견을 내고, 또 의견을 맞춰갔다.
 
‘쌤’들이 열심히 연습하는 광경을 바라보던 권순정 관장은 쌤들이 무척 고맙다. 다들 아이들이 초등학생 유치원생들이라 바쁠 텐데 다들 열심히 한다고 전했다. “우리 선생님들이 다 연습하고, 녹음하고, 열심히 준비하셨어요. 요즘 아이들의 문화가 자기네들끼리 게임하면서 노는 것인데, 이렇게 그림자극을 보여주면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지금 좀 나이든 사람들은 예전에 모여서 영화를 봤잖아요.” 그는 예전에는 마을 한 집에 모여서 많이 봤다면서 지금 생각해도 참 즐거운 일이라며 웃었다. “우리 가좌동에 이런 극장 하나 있으면 좋겠어요. 푸른샘어린이도서관에서 하는 그림자극이 시발점이 돼서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아직 예산은 없지만(웃음) 이런 데 관심 있는 분들이 모여서 하다보면 예산도 생기겠죠. 지금은 시작이라 돈이 많이 들어가지 않지만, 점점 하다 보면 돈이 많이 들어갈 거예요. 선생님들이 모여 함께하는 과정에서 서로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귀한 자료를 다 빌려주셨으니까, 이걸 계기로 우리도 예산을 따서 만들어야겠어요.”
 
“자, 순서 잘 챙기시구요. 들어갑니다.” 드디어 연습이 시작됐다.
 
띵띵띵 띵띵띠잉…, 음악이 나온다.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바보가 엄마랑 둘이 살고 있었대.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바보더러 비단을 팔아오라고 시켰지. 그런데 엄마는 사람들이 어리숙한 바보를 속일까봐 걱정이 되었어. 그래서 몇 번이나 당부했지. 야야, 절대로 말이 많은 사람한테 비단을 팔아서는 안 돼. 비단값을 깎으려고 그러는겨. 말이 없고 점잖은 사람한테 팔아야 한다. 이 어미 말 잘 명심해라.”
“알았어유.”
띵띵띠잉…, 음악소리가 울려퍼진다.
바보는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비단을 팔기 시작했지.
“비단장수, 비단장수! 비단 좀 구경 합시다. 이거 메이드인 코리아 맞제?”
첫 번째 손님은 말이 좀 많았어.
“아줌니, 아줌니는 말이 너무 많아 안 팔아요.”
“뭐, 나도 살 맘 없거든, 에효효효.”
 
“껐다 켜요.”
 
“비키세요. 비키세요. 푸른샘큰기와집 대감님이 나가십니다.”
두 번째 손님들은 좀 더 말이 많았어.
세 번째 손님도 말이 너무 많았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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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극에 나오는 장면들.
 
 
 바보는 드디어 돌부처를 만난다. 커다란 나무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다.
“말 없는 양반, 비단 좀 사슈.”
까까까까. 까마귀가 운다.
바보는 말없는 부처 앞에 비단을 놓고, 꾸벅 절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갔어.
“아, 뭐? 돈도 안 주고 비단을 주고 왔다구? 돈을 받아와.”
“저 기억하시죠? 점잖은 양반이 왜 이러슈? 남의 비단을 공으로 먹어?”
바보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
“이 도적놈아.”
돌부처는 콰당 넘어져 버렸지. 아, 그만 돌부처 발밑에는 금은보화가 가득했지. 도적들이 숨겨놓은 거였어. 그 금은보화가 돌부처가 주는 비단값인 줄 알았어.
“아, 진작 말씀하시지. 어이구, 이거 실례가 많았유. 말 없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구먼유.”
 
바보는 금은보화를 지고 와서 엄마랑 오래오래 잘 살았다는구나.
띵띵띵띵, 띵띵띵~.
 
15분 동안 막을 올리고서 쌤들은 또다시 보완할 점을 이야기한다.
“비단까지 딸려가야 돼.”
“화면이 바뀔 때 한 번 쉬어야 할 것 같아.”
“겨루기만 잘 해도 살 것 같아.”
“둘이 곱긴 곱다 할 때 조금만 움직여야 돼.”
“까마귀 빨리 수정해야 돼, 까마귀.”
“퍼져 보이니까 까마귀를 좀 가까이 대야 해.”
“아니, 사람이 있으니까 자꾸 걸려.”
“여기는 너무 흐려, 가까이 대봐.”
“내일 연습시간이 빠듯하겠다.”
“집을 들고 옮기는 데 정신이 없다.”
 
“오오, 됐다, 됐어.”
“괜찮아. 됐다.”
“돌부처 어딨어? 까마귀는 돌부처 위로 날아가게 해.”
“나무에 숨어 있다가 나가는 걸로 하지, 뭐. 하하하하.”
“아니, 실제로는 밤에 하기 때문에 엄청 잘 보여.”
“잠깐 껐다가 다시 켜는 걸로 할까?”
“이게 장면이 다 길어서 막이 한 번 닫혔다가….”
“기생 끝나고 돌부처 만나러 갈 때….”
 
“내일 네 시까지 다 와야 돼요.”
“내일 연습 늦지 않게 오세요.”
“동영상 찍으면서 어디가 문제가 되는지 체크 좀 해주세요.”
“내일 저녁밥 신청 받을게요. 집에 들어갈 시간이 없어요. 연습하다가 여기서 먹어야지.”
“자, 빨리 합시다.”
 
“자 갑니다, 가요!”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바깥이 캄캄하게 어두워져도 연습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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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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