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집의 'VIP' 110명 초청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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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국수집의 'VIP' 110명 초청 음악회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12.19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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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위해 문 연 '카페 모차르트', 훈훈한 송년무대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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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6시, 부평역 앞 ‘카페 모차르트’에서 ‘민들레국수집 VIP단골손님을 위한 송년음악회’가 열렸다. 이 음악회는 자리가 한정돼 있으므로, 민들레국수집을 단골로 찾는 110명이 초대받았다. 또 민들레진료소팀(인하대병원 의사 간호사팀) 등 민들레국수집과 함께하는 이들이 참석해, 약 200여명이 즐겁고 훈훈한 시간을 보냈다.
 
이번 음악회는 탤런트 정선일의 사회로, 성우 우문희, 소프라노 이승현 박지영 송영옥 윤상준, 피아니스트 양기훈, 중앙대학교 남성중창단, 한양대학교 국악 앙상블이 참석했다. 또한 노숙인들에게 문화생활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오후 6시 20분쯤 부평역 앞에 있는 ‘카페 모차르트’. 벌써 저녁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빈 도시락을 정리하고 있고, 한쪽에서는 한창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좀 늦게 도착한 듯한 오늘의 VIP손님인 민들레국수집 단골손님들은 도시락을 받아들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식사 많이 하셨어요?”라는 말이 들렸다. 평소에는 커피를 내렸을 주방에서는 절편과 음료수, 과자 등 간식을 접시에 담아내느라 바빴다. 민들레국수집 서영남 대표 딸인 모니카는 간식 접시를 손님들에게 아주 재게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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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5분 후에 시작합니다!” 누군가 이 말을 하자마자, 온누리재단 이사이면서 ‘카페 모차르트’ 대표인 이승현 성악가의 어머니 임주선씨는 히터가 잘 들어오는지부터 점검한다.

2주 전, 기자는 친구를 만나느라 ‘카페 모차르트’를 와본 적이 있었다. 커피맛이 좋고, 커피잔이 큰 데다, 옆 좌석과 간격이 멀어서 커피숍 인상이 좋았다. 그후 민들레국수집 취재를 하면서 ‘노숙인을 위한 송년음악회’가 이곳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민들레국수집 VIP손님들을 위한 송년음악회’가 열리는 이곳은 평소의 커피숍에서 ‘변신(?)’해 훌륭한 공연장이 되어 있었다.

탤런트 정선일씨가 사회자로 나섰다. 서영남 대표 부인인 베로니카씨가 이곳 카페 주인인 이승현 성악가의 남편이라고 귀띔해 준다. 드디어 사회자가 송년음악회의 시작을 알렸다.

“안녕하세요? 메리크리스마스. 반갑습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우리 수사님, 베로니카 자매님,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께서 아낌없이 주셨듯이 귀한 여러분을 모시고 민들레국수집 VIP 손님을 위한 따뜻한 크리스마스 음악회 제2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 식사 많이 하셨어요? 이제 성탄음악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첫 순서는 한양대 국악과 출신 국악 앙상블 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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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국악 앙상블 팀이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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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가 '진도아리랑'을 흥겹게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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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에 참석해 진지하게 음악을 듣는 VIP손님들.
 
 
거문고, 가야금, 아쟁, 대금, 장고 소리가 차례대로 울려 퍼진다. 모두 숨을 죽이고 진지하게 듣는다. 처음에는 낯선 분위기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거리는 이들이 눈에 띈다. 구슬프게 이어졌다 끊어지는 음이 마음을 쥐었다 놓았다 흔들어 놓는 듯했다.

박수 소리가 요란하다. 이어서 소리를 하는 여학생이 나왔다. 시작부터 박수 소리가 들리면서 음을 맞춘다. 구수한 <진도아리랑>이 이어진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환호와 함께 앙코르가 나왔다.

사회자가 다음 순서를 말한다. “이제 국악부터 출발해서 세계적인 것으로 가겠습니다. 소프라노 송영옥씨가 나오겠습니다.  반주는 피아니스트 양기훈씨가 해주십니다.”

피아노 선율이 흐른다. 눈 감은 사람, 사람들이 낯선 듯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있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화려한 의상을 입은 소프라노가 노래를 부르니 마치 고급 음악회에 온 듯하다. 아니, 고급 음악회다.

소프라노 박지영씨, 이승현씨가 차례로 노래를 부른다. 이승현씨는 앞서 말했듯이 오늘 행사할 수 있는 공간을 무료로 흔쾌히 빌려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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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 999'에서 철이 역을 맡았던 성우 우문희씨가 구연동화를 들려주고 있다.
 
 
 
사회자는 오늘의 특별손님을 소개했다. “특별손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은하철도 999> 철이가 우주를 달리면서 메텔 누나와 우주 여행을 하는 철이 역을 하기도 하고, 깡통로봇을 한 성우 우문희 선생을 모시겠습니다. 오늘은 어른들에게 들려주는 동화를 들려주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철이 목소리에 모두 웃으면서 큰 박수를 보낸다. “제목은 ‘산버들나무 밑 가재집’입니다. 지난 여름이었어요. 장마가 쏟아지는 동안 가재들은 구멍 속에 꼼짝없이 갇혀 있었어요. …” 모두 열심히 듣는다. 그러고 자주 웃는다. VIP손님이나, 민들레국수집과 인연이 돼 진료소를 하고 있는 이들을 포함해 음악회에 초대돼 온 사람들 모두 구연동화에 푹 빠진 듯하다.

옛날이야기를 언제 들었던가. 성우가 들려주는 동화가, 모든 사람을 느닷없이 어린 시절로 데려간 듯하다. 지금 어른이 된 이들도 언젠가는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무릎 위에서 동화를 들었을 것이다. 동화라는 장르가 비단 어린이에게만 감동을 줄까. 참석자들은 숨죽여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고보니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이야기는 참 구수했다. 가끔 욕도 들어있고, 뻥도 들어 있던 그 옛날이야기. 오늘 참석한 VIP 손님인 노숙 손님들도 다 그런 어린 시절이 있었고,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던 어린이였다. 지금은 잠시 힘들고 쓸쓸한 시절을 보내고 있을 뿐이리라.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의 제각각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동화를 들으면서, 문득 옛날을 떠오르진 않았을까.
 
그리고 웃는다는 것, 웃을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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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남성 중창단이 힘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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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듀엣'을 부르고 있는 소프라노 박지영, 이승현(오른쪽)씨.
 
 
‘카페 모차르트’ 창 밖으로는 사람들이 바삐 오간다. 그들은 가게 안에서 사람들이 모여 무얼 하나 궁금한 듯 힐끗 쳐다보며 지나간다. ‘모차르트’ 안에는 오늘 민들레국수집 VIP 손님들이 가득하다. 평소에는 ‘문 밖에’ 머물며 춥고 외로울 때가 많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다. 따뜻한 밥을 먹고, 따뜻한 음악을 듣고, 따뜻한 동화를 듣고 있다. 무엇보다 따뜻하게 사람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문 밖이 아니라 크리스마스트리가 예쁘게 꾸며진 ‘카페 안에서’ 쫓기지 않고, 춥지 않고, 지나는 사람들의 눈총을 받지 않고 음악회를 즐기고 있다.

<은하철도 999>에서 철이를 담당했던 성우가 희망이 담긴 메시지를 남겼다.
“여러분, 절망의 끝이 희망의 시작입니다. 기쁨으로 행복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중앙대 성악과 남성3중창이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자 손님들이 열심히 손뼉을 친다. 어쩌면 이만한 아들이 있는 이도 있지 않을까. 집에 두고 온 아이들 생각이 나지 않을까. 지금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집을 나와 있지만, 당장 들어갈 수 없는 형편일지 모르지만, 이들은 한동안 못 본 아이들을 생각하진 않을까. 잠시 나온 ‘외출’이 그저 길어졌을 뿐이지, 언젠가는 돌아갈 날을 꿈꾸진 않을까. 망가진 몸을 추스르면 언젠가는 만날 식구 생각이 더하진 않을까. 이 음악회가 그동안 잊고 있던 가족을 잠시나마 떠올리게 하고, 날이 갈수록 희미하기도 하고 더 또렷하기도 한 옛날을 도닥여주는 기회가 되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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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부르는 송영옥, 이승현, 박지영, 윤상준 성악가.(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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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전원이 vip손님들과 '징글벨'을 부르고 있다.
 
 
 
카페 밖은 먹자골목이어서인지 끊임없이 차가 지나다닌다. 브레이크 밟은 붉은 등을 켠 차들이 쉴새없이 지나가고, 우회전 좌회전 깜빡이등이 바삐 오간다. 골목길이라 차가 맞닥뜨렸는지 차 한 대가 후진하며 길을 비켜주고 있다. 음악회가 한창인 밖은 ‘바깥 세상’이다. 세상은 여전히 분주하게 굴러가지만, 이 안에서의 시간은 멈춘 듯하다.
 
곧이어 여성 성악가들의 노래가 이어졌다. 듀엣, 트리오로 이어질 때마다 손님들은 손뼉을 열심히 쳤다. 송년음악회 분위기가 한껏 달구어졌다. 이어 <메기의 추억>은 윤상준 성악가가 불렀다. “옛날의 금잔디 동산의 메기, 나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환호와 함께 박수 소리가 우렁차다.

“이번에는 박지영, 이승현 교수가 나와서 재미있는 이중창 <고양이 듀엣>을 부르겠습니다. 악보에 있는 가사는 ‘야옹’뿐이랍니다.”

“야옹” 소리가 나올 때마다 웃음소리가 크게 이어진다. “야옹 야옹 야옹, 야옹!” “야옹!” 경쾌한 피아노 소리. “야야야옹, 야야야옹.” “야야야야야옹.” “야옹!” “야아오옹!” 웃음소리와 함께 박수소리가 끝없이 터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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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듀엣>이 끝나자 환호로 답하는 손님들.
 

윤상준 교수가 참석자 대표로 인사말을 남겼다. “그 어떤 무대보다도 이 자리가 값집니다. 이 자리에 나오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사회자한테 놓쳤습니다. ‘아름다운 밤입니다’를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잊고 지내는 것들이 있습니다. 항상 고마운데 그 고마움을 모르는 거죠. 뭘까요? 그건 햇빛입니다. 하나 없는 걸 채워드리겠습니다. 아름다운 태양, <오 솔레미오>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마침내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음악회가 마무리될 시간이 되었다. 사회자가 인사말을 했다.
“여러분 모두 춥고 어려운 겨울이지만 잘 이겨내십시오. 내년에는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징글벨>을 끝으로 송년음악회가 막을 내렸다. 여기저기 인사말이 오간다. 메리크리스마스!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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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국수집 식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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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재능기부를 한 출연자들과 한 달에 두 번 여는 민들레진료소 팀.
 


오늘의 VIP손님들이 줄을 서서 찜질방 티켓과 차비를 받아간다. 이들은 오늘만큼은 따뜻한 찜질방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을 것이다. ‘야옹 야옹’이 가장 재미있었다는 손님은 활짝 웃으며 찜질방으로 간다고 했다.

이영탁 원장 사위이기도 한 정선일 씨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사회를 봤습니다. 이웃들에게 드릴 때는 의식주 위주로 드리잖아요. 그런데 오늘처럼 고급문화를 향유하고 같이 즐길 수 있는 자리가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작년보다 집중도가 아주 강해졌어요. 이런 공연 기회가 많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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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국수집' 서영남 대표.
 
 
이영탁 원장은 마무리 인사를 하면서 “‘카페 모차르트’는 커피점도 되지만 공연장으로 문화행사를 하기도 합니다. 실내 100평정도 되는데, 인천 지역에서 문화를 봉사하는 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어요. 올해로 8년째인데 모두 좋아하십니다.”

서영남 대표와 민들레국수집 식구들은 오늘의 손님들을 일일이 배웅한다. 찜질방 티켓을 받아가느라 길게 늘어섰지만 그 누구도 새치기를 하지 않는다. 천천히 차례를 기다리고, 자리에 떨어진 휴지를 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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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음악회를 마치고 찜질방이나 '길'로 돌아가는 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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