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위, 역사의 흔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상태바
모래 위, 역사의 흔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 서진완
  • 승인 2016.07.06 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추억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어디를 가나, 아이들은 힘들다!

기자로 돌아와 Mossad 교수를 다시 만났다. 기자역으로 마중나와 준 그는 이집트의 현 정세가 대단히 불안하다며 자신의 집에서 우리 가족이 당분간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시내 중심가에 머무르면 일련의 폭력 사태로 인해 위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은 그의 제안에 따라 그의 집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아내와 아이들도 그들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해 주었다. Mossad의 아이들은 수영과 쿵푸를 배우러 저녁은 대부분 체육관에서 보내고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큰 아이는 하루 종일 과외에다가 수영까지 배우는 Amr(Mossad교수의 자녀)가 집에 오면 저녁을 거를 때도 많고 너무 바빠서 힘들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여기저기 아이들은 힘들고 바쁘다. 10시가 넘어서 아이들이 모두 돌아오고 나서야 저녁식사가 시작됐다. 이걸 어쩌나! 


그래도 역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모래 위 피라미드가 눈이 부시다. 사진 = 서진완


Mosaad가 불러준 택시를 타고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보러 나섰다. 사막을 지나 기자지역으로 들어가자 피라미드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햇볕은 강하게 내리쬐고 빛에 반사된 피라미드 때문에 눈이 부셨다. Mosaad의 친구인 택시기사는 우리를 매표소에 내려주면서 호객꾼들이 표를 보여 달라고 해도 절대 보여주지 말고, 다양한 호객행위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피라미드지역(Pyramid Area) 입장권과 카푸 피라미드(Khafre Pyramid)의 내부 입장권을 함께 구입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규모가 가장 큰 쿠푸 피라미드(Khufu Pyramid)는 통제된 곳이 많아서 오히려 카푸 피라미드의 내부를 보는 것이 훨씬 볼 것이 많다고 했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들어서는 순간 가장 규모가 큰 쿠푸피라미드가 우리를 압도했다. 사막위에 서있는 신비로운 건축물은 인간이 만들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있다. 

쿠푸 피라미드는 입구까지 올라가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돌 하나가 작은아이 키만 하다는 것을 가까이 가서 확인했다. “정말 크다!” 쿠푸 피라미드를 오른쪽으로 돌아서 카푸 피라미드를 보고, 다시 이어서 멘카우레 피라미드(Menkaure Pyramid)까지 천천히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었다. 피라미드 근처는 바닥이 돌로 되어있어 걷기에 편했지만 피라미드 사이는 모래가 있어서 걸을 때마다 발이 빠져서 힘이 들었다. 멘카우레 피라미드 옆에 나란히 세 개의 여왕 피라미드(Queens Pyramid)가 있는 곳에서 세 개의 피라미드를 감상했다. 동일한 피라미드지만 어떤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여왕 피라미드에서 조금 더 욕심을 부려 사막을 걸어보기로 했다. 큰아이는 사막을 직접보고 한번 걸어봤으면 좋겠다고 했던 터라 여간 반가워하지 않았다. 발이 푹푹 빠지는 듯한 모래를 걸어서 낙타와 말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까지 걸었다. 이곳에서 세 개의 피라미드와 세 개의 여왕 피라미드가 사막위에 동시에 펼쳐진 장관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터무니 없는 금액을 거절하자 분위기가 험악해 졌다. 처음 흥정했던 금액대로 냈지만 기분은 별로! 사진 = 서진완


밖은 너무 뜨거워졌다. 한낮의 사막날씨가 이런 것이 구나를 실감했다. 바람이 불면 온 천지에 모래가 날리고, 햇살은 살갗을 아프게 했다. 우리는 스핑크스를 보러 큰 길을 따라 내려갔다. 위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언덕아래에 내려가자 저 아래에 점잖게 앉아있는 스핑크스가 보였다. 길을 걷는 내내 낙타꾼들이 계속 보채고, 물건을 파는 아이들은 계속 말을 건넸다. 작은아이가 낙타를 타고 싶다고 해서, 스핑크스까지 가는 것으로 금액을 흥정했는데, 잠시 후 저 멀리 스핑크스가 보이기 시작하자 그 금액으로는 여기까지 밖에 갈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작은아이를 내려달라고 했다. 작은아이는 낙타 위에서 생각보다 무서워했고 앉아있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작은아이가 내리고 원래 흥정했던 금액보다 100배 더 비싼 금액을 요구했다. 터무니없는 금액을 거절하자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옆에 있던 낙타꾼들이 가세해서 막무가내로 금액을 갈취할 자세를 취했다.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원래 흥정했던 금액을 받던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가겠다고 세게 나갔다. 이래서 조심하라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여자들만 있었다면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마침내 처음 흥정했던 금액대로 주고 왔다. 아이에게 낙타를 타볼 기회를 주긴 했지만, 다시 한 번 더 낙타를 타고 싶은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어딜 가나 돈을 요구하고, 심지어 화장실을 막고 돈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끊임없이 따라다니면서 물건을 팔거나 낙타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돈을 요구하고, 피라미드 앞에서는 안전요원이라며 표를 보여 달라고 한다. 물론 모두 돈을 요구하거나 낙타를 타라고 강요하기 위한 것들이다. 옆에는 경찰들이 버젓이 쳐다보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행위에 대해 제재를 가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집트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무조건 이곳은 온다고 봐야할 첫 번째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무질서와 바가지 상술이 판을 치는 곳이 또 있을까 싶다. 


혼란의 한 복판에, 이집트의 민주화는 아직도... 


Mosaad집으로 돌아오자, Mosaad는 자신의 집에서 계속 머무르면 좋겠다고 하면서 뉴스소식을 전해주었다. 포트사이드(Port Said) 폭행사건 재판결과에 대한 불만으로 오늘 시위대가 이집트축구연맹 건물에 불을 질렀고 인근의 경찰서도 습격했다면서, 그 와중에 2명이 목숨을 잃었고, 시내 여러 곳의 교통이 통제되는 등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피라미드가 있는 기자지역은 시내에서 떨어져 있어서 오늘 우리가 갔다 오는 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당분간 시내로 들어가는 일은 자제하고 이곳에 머무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TV에서는 계속 시위와 관련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포트사이드에서는 시위대가 정박 중인 스피드보트 5척을 묶어 수에즈 운하의 통행을 가로막으려 했다고 하고, 이런 가운데 축구장 참사와는 별개로 이집트 내무부는 동북부 시나이반도에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이집트 전체가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듯했다. 

현재 포트사이드에는 경찰이 일선에서 후퇴하고 군이 개입하여 치안을 담당할 만큼 상황이 악화되어 있으며, 조금 전에는 이집트 전국의 경찰관들이 내무장관 사임과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고 파업을 했다고 하니, 이런 혼란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일부 외신은 또다시 군사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염려하고 있기도 하고 일부 지식인들조차 군인들의 개입을 통해 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이집트의 현재 상황은 극히 종잡을 수 없는 어려운 국면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Mosaad는 현재의 상황이 우려할 수준이기는 하지만 이곳은 카이로시내와 떨어져 있는 교외지역이라 안전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사실 이집트가 직면한 정치적인 불안정은 어려운 경제상황과도 연관되어 있다. 경제성장이 악화되고, 외환보유고까지 크게 줄어든 상황에 IMF에서 48억 달러의 긴급자금지원을 요청했지만 이집트로서는 현재 IMF가 요구하는 에너지보조금 삭감 및 소비세 인상 등의 긴축정책 시행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디젤유의 부족으로 주유소에서는 연료를 채우기 위해 줄을 서고, 주민들은 수도 및 가스 공급이 끊긴 것에 항의하며 도로 및 철도를 점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긴축정책을 실시할 경우 빈민층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특히 이집트는 식량의 70%를 해외수입에 의지하고 있고, 외환보유고는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등 서방국가가 지원하지 않을 경우 이집트 경제를 파탄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Mosaad는 이곳 대학(Sadat Academy)의 교수들과 정부 관리들이 특강에 참석할 것이며, 궁금해 하는 질문들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이곳 상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김영삼 정부 말기에 우리가 처했던 외환위기 시절이 생각이 났지만, 그 당시보다 이집트의 현재 상황은 더 심각한 것 같다.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위기가 한꺼번에 닥쳤으니, 국가적으로 지혜가 필요할 듯싶다. 강의가 끝나고, 많은 질문을 받았다. 질문 하나하나가 현재 이집트가 처한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현실에 비추어 나오는 것이라 시사적인 의미가 강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너무나 높고, 현재의 정권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 듯한 발언들이 쏟아졌다. 이집트에 불어오는 새로운 바람이 이 나라 국민들의 마음과 태도에 모두 좋은 변화가 일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나일강을 건넜다. 어둠이 깔리고, 집으로 가려는 차들이 모든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집트가, 정상화되려면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이 많은 사람들이 그 어려움을 견디려면 많은 고통이 따를 것 같아서 안쓰럽게 느껴졌다. 위정자들이 어떻게 국가를 관리하느냐가 이렇게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래서 국민들이 스마트해야 하는 법이기도 하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벽면엔 군데군데 한글도 세겨져 있다. 사진 = 서진완


다음날 새벽 Mossad와 함께 카이로에서 200km 떨어진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향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보이는 해변에 내려 처음으로 지중해를 보았다. 물이 깨끗하진 않았지만, 멀리보이는 짙푸른 바닷물이 두 눈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Mossad의 수업에서 약속대로 한국의 행정개혁 사례에 대한 발표를 듣고 평가해 주는 일을 했다. 아내와 아이들도 학생들이 이집트의 민주화와 대통령에 대한 불신 등과 관련하여 한국의 경험에 대한 질문과 토론을 함께 들었다. 

카이로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오늘로서 내가 세계일주 여행을 시작하고 학생들과 만나거나 특강을 하기로 한 모든 약속을 마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학생들과의 만남과 교수들과의 토론을 통해 이집트의 현재 어려운 상황과 문제, 그리고 대학생들이 갖는 정부에 대한 생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어쩌면 강의를 한 내가 더 많은 것을 얻은 셈이다. 아이들도 민주화의 소중한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는 아내의 지적이 맞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라스 시드르, 우리들만의 해변! 


라스 시드르 해변에서 조개도 줍고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사진 = 서진완

아침 일찍 카이로를 출발하여 수에즈운하를 지나 홍해가 보이는 시나이반도에 있는 휴양도시 라스 시드르(Ras Sudr)로 향했다. 외국인에게 보다는 이집트인에게 많이 알려진 라스 시드르는 카이로 시내에서 150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부유한 카이로사람들이 별장을 두고 있다는 이곳에서 5일 동안 머무르기로 했다. 

아침이지만 도로는 벌써 뜨거운 햇살을 반사해서 눈을 뜨기가 힘들 정도였다. 동 사막(Eastern Desert)를 지나는 동안 군인들이 머무르고 있는 군사기지가 사막 여기저기에 보였으며,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지점에 설치된 검문소에는 군인들이 차량을 검색하고 신분증을 요구했다. 

이집트를 여행할 때 반드시 여권을 지참해야만 한다. 신분증을 요구할 때, 불응하거나 제시하지 못하면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했다. Mosaad는 카이로시내를 지나 사막 초입에 접어들었을 때부터 아내에게 사진을 찍지 말라고 부탁했었다. 평소에도 이 지역은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이기 때문에 사진을 찍지 않아야 하는데다 최근 이집트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 더욱 사진촬영을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아내는 들고 있던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해변 앞에 위치한 빌라는 외벽은 낡았지만, 실내는 그런대로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테라스에 서자 사진으로만 보았던 바로 홍해의 쪽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맑고 깨끗했다. 바람이 몹시 불어 해변을 거닐 수는 없었지만, 맑은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아내와 나는 빌라 입구에 봐둔 조그마한 슈퍼에 들러서 간단한 식료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지내는데 큰 불편은 없을 것 같다. 

해변을 바라볼 수 있는 테라스에서 나는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던 논문을 펼쳤다. 평소에 읽을 만한 책이나 논문들은 아이패드에 보관해 왔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는 논문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쓰고 싶은 글들을 메모해 두기에 정말 조용하고 최적의 장소이다. 그리고 잠시 잠을 자기도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잠시 자고 있던 사이에 해변에 나가서 성을 쌓고 있었다. 정말 조용하다. 파도가 치는 소리 이외에 어떤 소리도 나지 않는다. 이곳에서 일요일은 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주말에 그나마 있던 이집트 사람조차도 오늘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라스 시드르 홍해바다. 이 넓은 바다에 우리 가족 뿐이었다. 사진 = 서진완


이 넓은 곳에 우리 가족뿐이다. 어제보다 바람은 적게 불지만, 햇살은 어제처럼 따뜻했다. 모래에 발을 딛고 서자 발바닥이 따뜻해져왔다. 물도 미지근하다. 그래도 파도가 칠 때마다 다리에 부딪치는 물은 차게 느껴진다. 발과 다리를 감싸는 물결과 발바닥에 닿는 모래의 촉감이 너무 좋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따뜻한 차 한 잔을 탁자위에 놓고 일기도 쓰고 책을 읽고, 그리고 메모도 한다. 편안하다. 가끔 위성TV를 통해 CNN과 BBC 방송을 듣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BBC에서는, 카이로에서 또 데모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소식을 듣는 그 순간에는 내가 이런 위험한 곳에 머무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위험하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이곳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닌 것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좋은 사람들

라스 시드르를 떠나며 우리 가족 모두 아쉬워했다. 발코니 문을 닫으면서 다시 한 번 해변을 바라보았다. 아내는 이렇게 맑은 바닷물과 뜨거운 태양 그리고 부드러운 해변의 모래들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아쉬워했다. 매사가 그렇듯이 아쉬울 때 떠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 역시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Mosaad 부부는 라스 시드르에서 돌아온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사람을 알고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정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피부색과 인종에 관계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아이들을 챙겨주는 Zeinab을 보면 우리네 정다운 형제자매와 다름없다. 만나서 반가운 만큼 헤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Mosaad네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이집트 펜단트를 아내에게는 보석상자, 그리고 나를 위한 명함꽂이를 안겨주었다. 이것들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큰마음으로 다가와서 너무나 고마웠다. 아침에 일찍 학교에 가야하는 Amr와 작별 인사를 했다. 어제 저녁에는 큰아이와 꽤 많은 얘기를 했다고 한다. 큰아이보다 4살이나 어리지만 어떤 점에서는 어른스럽기도 하다. 둘은 인터넷으로 자주 연락하자고 했다고 한다. 작은아이도 언니가 되는 Nardin과 연락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동안 보이지 않게 정이 많이 들었다.

배낭에 모든 짐을 차곡차곡 넣었다. 이제 정리는 끝났다. 공항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Zeinab은 공항에 일찍 도착하면 기다리는 동안 먹으라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케잌를 구워주었다. 그녀는 매번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는데, 우리가 떠나는 순간까지 이렇게 챙겨주었다. 집 앞에서 다 같이 사진을 찍고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아내는 Zeinab과 딸 Nardin을 안아주었다. 아내와 우리 아이들에게 해준 모든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 밖엔 달리 감사함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좋은 사람들 덕분에 이곳에서 기분 좋은 기억만 간직하게 될 것 같다. 


<정리 = 이미루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