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요기서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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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요기서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나?"
  • 김인자
  • 승인 2016.08.0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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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낯선 할머니와 친해지기

오늘은 새 벤치에서 새로운 할머니들께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언제나 처음은 낯설다. 얼마의 시간이 들더라도 할머니들과 친해질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내가 아무리 할무니들을 좋아하고 책을 읽어드리고 싶다고해도 처음부터  무턱대고 할머니들께 책을 들이밀고 읽어드릴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에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책을 읽어주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부지들께 책을 읽어드릴 때는 책을 읽어드리는 일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마음열기가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다.

할머니들께 " 할머니 안녕하세요~" 하며 반갑게 인사를 하고 슬그머니 궁디를 들이밀며 할머니들 말씀 속으로 슬쩍 낑겨 들어간다. 우리 동네에 잘 나가던 한의원 한 군데가 문을 닫고 새로 오픈한 한의원이 할머니들을 꼬시기 위해  웃음이 천사같은 이뿐 간호사 한 명이 새로 왔다는 얘기, 이 새로 문을 연 한의원에서는 할머니들이 이천 백 원을 내면 12가지 치료를 하게 해준다는 얘기.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재미가 있다.

"내가 한 달째 취직을 잘했어."
"취직하셨어요, 할머니?"
"응, 아주 만만한데 취직을 했지."
"거기가 어딘데요, 할머니?"
"응,한의원. 아침 8시 40분에 가서 12시 넘어 집에 와."
아침 잡숫고 한의원에 가셔서 점심 잡수러 집에 오신단다. 그걸 할머니께서는 취직했다고 말씀 하시는거다.

"아침에 비오면 서울쥐 뜬다고해."
"서울쥐가 떠요?우와 할머니 그게 무슨 말이예요? 할머니?"
"아침에 비가오면 오후에는 그쳐서 서울간다고."
꽃지팽이 할머니 말씀에 쩍벌려할무니가 말씀을 이어 받으신다.
"근데 요즘은 안 그래.
아침에 비가 오면 하루죙일 와. 것도 다 옛말이여."

"다리 아파도 걸어야혀. 안그람 더 아파."
"늙으면 갈때가 한 군데 밖에 없어."
"갑자기 오는 병은 아들며느리한테도 얘기를 안했어."
"왜요, 할머니?"
"왜긴 ~맨날 아프다고 걱정하니까 안하는 것이지."
"놀래가지고 내가 한 달째 눈이 침침해."

쩍벌려할머니가 한의원 얘기를 하시는 동안 꽃지팽이 할머니가 지팽이로 콕콕 개미뒤를 쫒는다.
"저 할머니는 개미를 못봐. 가만두질 못해."
"도망갔다~"
"할머니, 개미 놀래요~~"
"놔둬. 심심해서 그래."




열심히 할머니들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파랑할머니가 벤치에 놓아둔  책을 들어 펼치신다.
<돌부처와 비단장수>
"비단장수가 오면 네발다발 정신없었지.
우리집이 칠공주에 아들 하나. 나는 셋째딸. 내 밑으로 머스마 동생를 봤다고 나는 비싼 색동저고리를 사줬어. 우리 언니는 남색치마에 노랑저고리를 사주고.
나는 분홍치마에 색동저고리를 얻어입었어. 사내동생 봤다고.
비단은 바느질도 잘 되어 있고 명절날 사팍사팍(잠깐잠깐) 입는거라 밥먹을 때도 벗어놓고 먹어. 뭐 묻을까봐서.그리고 며칠 입고는 세탁소에 갔다줘."
"우와 할머니때도 세탁소가 있었어요?"
"그럼, 있었지. 내가 올해 팔십 둘인데 열일곱 열여덟 먹어서 세탁소에 비단옷 맡기면 동정까지 다 달아다 배달을 해줬어. 그걸 받아다 화류장에 넣었지. 화류장은 미닫이여. 유리가 위에 달리고. 비단옷에 백지 덮어서 놓고 다시 그위에 신문지를 덮어두지. 좀 먹지말라고. 그리고 일 년에 두 번 여름장마때 한 번 ,가을 장마때 한 번. 그렇게 두 번 방바닥에 펴놔. 스며들라고."

"우와 할머니 이야기 너무 재밌어요. 할머니는 이야기대장이예요. 어쩌면 이렇게 이야기를 잘 하세요?"
"잘허지? 내가 책에 미친 사람이여.길거리에 책이 떨어짐 다 주서와. 나 군산여상출신이여."
"우와 할무니 대단하시다. 울 심계옥엄닌 국민핵교도 못나왔는데."
"내가 공부땜에 미친여잔데. 인공땜(16)에 한 번 꺾였다. 책을 다 뺏어갔거든. "
"인공이 뭐예여 ,할무니?"
"6 25사변. 이북사람을 인공사람이라 불렀어. 그놈들이  내려와 돼지잡아 처먹었지. 소 잡아처먹었지. 우리집이 잘 살았어. 머슴이 셋이였어. 그놈들이 다 인공놈들 앞잡이 노릇을 했지."

"할무니 책 재밌어요?
"재밌네. 내가 책을 보면 새벽도 몰라요.
핵교 대닐때도 꼭 일,이등했는데.
인공놈들한테 책을 뺏기니 미치지.
그란데 선생님 책을 참 잘 읽네. 우리들을 들었다놨다 해~
내가 요즘은 눈이 침침하고 몸땡이가 아파서 좋아하는 책도 못읽는데. 선상님이 읽어주니까 참 좋으네.
내일도 요기서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나?"
"그럼요, 할머니 내일도 제가 책 읽어드리께요."
"그래? 심심헌데 나와봐야 쓰것네. 요즘은 혼자 누워있으믄 곧장 골루 갈까봐 잠자는 것도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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