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여자들은 집에서 썩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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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여자들은 집에서 썩으라고?
  • 이혜정
  • 승인 2010.10.29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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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여성'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

 
인천지역의 한 고용지원센터에서 40대 중반 여성이
취업을 위해 상담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취재 : 이혜정 기자

"얼마 전 교통사고로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게 돼서 다시 일자리를 찾으려고 나왔는데…. 쉽지가 않네요. 아직까지 몸이 아프지만 내가 벌지 않으면 생계를 꾸릴 수가 없으니 꼭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김모(59‧연수구 옥련동)씨.

지난 19일 직업을 찾아 인천지역의 한 고용지원센터를 방문한 50대 후반의 김씨를 만났다. 그이는 지난 3월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석달 전부터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생산직과 용역업체 등에 이력서를 제출해 봤지만 업체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아직 몸이 낫지는 않았지만 생계가 어렵다 보니 일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일자리를 어떻게 구해볼까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쉽지 않은 일이고…. 고용지원센터에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찾아왔지만, 구인란에는 나이제한을 두지 않아도 결국 연락 오는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김씨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20년 전 남편과 이혼한 뒤, 자식과 연락도 두절된 채 혼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교통사고가 나기 전 그는 청소용역업체에서 일을 하면서 한 달에 80만~100만원의 수입으로 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었다. 월세 30만원을 내고 나머지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나면 노후대책 마련은 쉽지 않았다. 

"나이가 많아서인지 서류를 접수해도 연락이 없어요. 내년이면 예순살인데…. 아직 노후준비를 해놓은 게 없어서 걱정이네요. 무슨 일이든 상관없이 돈 좀 벌었으면 좋겠습니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여성들 모습.

고용센터를 찾은 또 다른 재취업 여성을 만났다.

"우리세대에는 자녀양육이 최고의 가치였어요.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자녀양육을 대단하게 여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엄마가 되면 누구나 아이들을 최고로 키우겠다는 욕심이 생겨요. 저 역시 결혼 후 양육을 위해 일을 그만두고, 20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하니,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네요."
 
한모(45‧남동구 간석동)씨의 말이다

한씨는 결혼할 당시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을 돌보는 데 불만이 없었다. 나 하나 희생해 남편과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은 일이라고 여겼다. 대부분의 40~50대 여성들이 결혼 후 양육에 전념하기 위해 자발적인 '경력단절'을 선택한다.

"그 동안 내 자신을 희생하는 게 가정을 위한 일이라 여기고 지냈는데, 아이들이 크고 나니까 이제 제 자신의 삶을 찾고 싶어요. 더구나 요즘 애들 사교육비가 만만치 않아서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한씨는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다. 한 달에 자녀 학원비 20만~30만원, 중요한 과목(국어, 영어, 수학)은 과목당 40만~50만원의 비용을 대려고 일자리가 더욱 필요하다고 한다. 

"막상 직업을 선택하려고 해도 월급수준과 근무조건이 영 맘에 들지 않네요. 주로 생산직인데…. 생산직은 근무시간도 많고, 잔업도 많고, 더군다나 주말에도 못 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임금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고…. 일자리 구하기 정말 힘드네요."

인천발전연구원 '2009 인천시 여성취업지원정책 현황과 발전방안' 연구 자료에 따른 성별‧연령별 취업자 현황을 살펴보면 여성의 경우 40~49세가 29.2%로 가장 많았고, 30~39세 26.2%, 20~29세 18.5%, 50~59세 17.8%, 60세 이상 7.4%, 15~19세 0.9% 순이었다.

인천시 성별‧종사상 지위별 취업자(2008년 기준)를 보면 여성 임금 근로자 중 임시직이 52.8%로 가장 많았고, 상용직 32.8%, 일용직 14.6%, 자영업주 14.4%, 무급가족 종사자 8.9% 순이었다. 

이런 현상은 30대 여성들이 결혼, 출산, 양육으로 노동시장에서 이탈했다가 자녀가 어느 정도 자란 40대에 다시 노동시장으로 나오는 '경력단절'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그림 1. 성별,연령별 취업자 구성비>

 
※자료출처 : 인천발전연구원.

준비 없이 막연한 노동시장 진입이 '난관'…육아문제부터 해결해야...


 김지연 인천여성취업센터 팀장.

 "대부분의 경력단절여성들이 육아와 가사로 경제활동이 멈춘 상황에서 노동시장에 나오다 보니, 재취업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특히 재취업을 하려고 나온 경력단절여성들은 거의 40대여서 더욱 취업하기 어렵지요."

김지연 인천여성취업센터 팀장의 설명이다.

육아와 가사로 10년 이상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경우 재취업에 대한 욕구는 매우 높다. 하지만 현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업무능력과 정보 부족, 나이 등으로 인해 노동시장 재진입이 쉽지 않다고 한다.

김 팀장은 "이들 여성은 대개 취업을 위한 준비가 전혀 없이 막연하게 시장에 뛰어들기 일쑤여서 기업이 원하는 근로자 조건과 '매칭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경력단절여성들은 130만원 정도 임금에 근무시간이 짧고, 근무환경이 좋은 단순 사무직을 선호한다.

반면 기업은 주로 장시간 근무를 요구하고 임금수준도 100만원 이하 최저임금수준을 제시한다. 특히 사무직은 30대 초중반에 외국어능력, 컴퓨터능력 등을 가진 경력단절여성을 원한다. 가장 많은 구인을 요구하는 제조업의 경우 40대 초반까지 여성을 선호한다.

김 팀장은 경력단절여성들의 재취업을 위해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경력단절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에서는 나이가 어린 자녀를 가진 경력단절여성들이 육아로 인해 회사업무에 지장이 있을 거라고 여겨 애초에 원서조차 넣는 것도 꺼린다.

김 팀장은 "근본적으로 경력단절여성들이 노동시장으로 재진입을 하기 위해서는 육아문제를 해결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면서 "지역 내 모든 구성원들이 아이들을 함께 키워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재취업을 위한 직업훈련과 교육들이 단기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경력단절여성들이 전문성을 띠는 직종에 종사하기 힘들다"면서 "단기적인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남성들의 고유 일자리로 굳어진 다양한 영역에서 여성들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동공단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물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업무 때문에 남성들의 영역이라고 굳어진 업종이 많지요. 하지만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줘야 합니다."

김 팀장이 강조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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