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인가 하는 데가 참 좋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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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인가 하는 데가 참 좋드라"
  • 김인자
  • 승인 2018.07.09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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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고마운 엄니

"엄니, 식사하셔요~"
"벌써 밥 먹을 때가 됐냐?"
"예, 여덟시 오분 전이어요."


우리 심계옥 엄니는 똑딱 시계다. 정시에 일어나시고 정시에 주무시고 정시에 샤워를 하시고 정시에 식사를 하신다. 저녁 8시에 잠자리에 드셔서 새벽 4시 50분에 정확하게 일어나신다. 누워서 10분 쯤 발운동을 하시고 5시에 샤워를 하신다. 한 달 전 까지만 해도 샤워하시는 시간이 새벽 4시 30분이었는데 요즘은 5시로 전보다 30분 늦춰졌다. 엄니 말씀으로는 "피곤해서 늦잠을 자게 된다." 라고 하시지만 잠을 못자는 나를 생각해서 5시에 샤워를 하시는거 같다.
거의 5년이 넘게 4시 30분에 샤워를 하셨던 울 심계옥엄니. 시간 관념이 정확하신 울 엄니가 30분이나 시간을 늦춰서 샤워를 하신다는건 매일 잠이 부족한 딸자식 생각하셔서 조금이라도 더 재우려 하신다는걸 나 또한 모를리 없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닮아 매일 샤워를 하시는 심계옥엄니가 "이제는 닦는 것도 귀찮으니 매일 샤워하지말고 일요일에 한번만 목욕하고 말자." 하시는걸 내가 말렸다.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고 난 후 재활할 때부터 매일 주무시기 전과 일어나셨을 때 하루에 두 번씩 샤워를 해 드렸었다. 요즘도 평일에는 샤워를 해드리고 일요일에는 목욕을 해드린다. 혈액순환 잘 되시라고, 다시는 뇌경색 같은 몹쓸병에 붙잡히지 마시라고. 지방강연을 가야하는 날엔 나도 새벽에 집에서 나와야해서 4시 30분에 심계옥 엄니 샤워시켜드리고 아침 챙겨 놓고 아이들 챙겨놓고 나오려면 늘 바쁘다. 부득불 밤을 샐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내가 울엄니는 맘에 걸리셨던 게다.


"이거 가지고 병원에 가라."
침대이불 밑에서 엄니가 돈을 꺼내주신다.
"나, 돈 있어."
"암말 하지말고 이거 가지고 가서 엠알인가 그거 한 번 찍어봐라. 왜 그렇게 소화가 안되는지 왜 먹는 것두 읍는데 노상 설사를 하는지. 병원가서 소상히 살피봐라."
"그거야 잠 못자고 신경써서 그런 것이지."
"그러니까 내 하는 말이다. 내가 어지께 밤에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접때 테레비에서 보니까 요양원인가 하는 데가 참 좋드라. 선생님들도 잘해주고 환경도 깨끗하고 내가 거길 갈까 생각했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이 나 땜에 저리 아픈거 아닌가 해서. 내가 널 생각하믄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난다.
키울 때도 넘의 새끼들처럼 뭐 사달라는 걸 사줘보길 했나,지 좋아하는 책 한 권도 못 사줘봤다 내가. 에고, 배불리 멕여 키우길 했나, 옷을 번듯하게 입혀보길 했나, 너는 으트게 키웠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인자엄마는 애를 거저 키운다 했다. 에미가 지대로 해준 것도 없는데 늙어서까지 내가 너한테 이리 짐이 되고 있으니 내가 빨리 죽어야되는데 그 복도 못타고 난거 같고. 이노므 다리까지 다쳐가지고 니가 내 시중드니라 허리병까지 도지고..."
구순이 되어가는 늙은 엄마가 고개를 숙이고 한탄을 한다. 눈물이 줄줄 흐른다. 눈물을 훔치고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어릴 때처럼.


"햐~~이거 이거 내가 글쟁이로 사는게 순전히 울 엄니 덕분이네. 고맙습니다, 엄니."
"고마와? 내가 지겨운게 아니고 고마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요양원 가시겠다고 말씀하시던 심계옥엄니가 내 고맙단 말에 금새 얼굴이 밝아지신다.
"고맙지, 그럼. 내가 늘 생각하는 거지만 울 엄니는 참 말씀을 잘하셔. 국민핵교도 안 나오셨는데 어쩌면 이르케 말씀을 잘하신댜?" 하고 말씀드리니
"니 외할아부지가 달변가셨니라. 인물도 좋으셨고.경우도 바르고 효자셨지."
"효자? 아 그래서 엄니도 돌아가신 외할무니한테 그렇게 잘하셨구만요."
"잘하긴. 해드린 것두 읍따..."
"엄만 외할머니한테 참 잘하셨어. 매일 새벽 두 시간을 걸어서 할머니집 가서 똥기저귀 빠시고 목욕시키시고 식사 시중 들어드리는게 쉬워?
엄마도 젊은 나이가 아니었는데."
"자식이니까 하는 거지."
"엄마만 자식이 아닌데."
"다들 바쁘니까 헐일 없는 내가 헌 것이지."
"헐일 없긴 나도 키우고 작지만 구멍가게도 해야하고 엄마가 왜 할일이 없어?"
"그야 너는 내가 신경 쓸 일 하나 없이 지 알아서 잘 하고. 가게야 여나 안여나 벨 상관읍꼬."
"이모나 외숙모, 삼촌도 있는데 엄마가 할머니 병구완 다 하셨잖아."
"그거야 니 할무니가 워낙 깔끔하셔서 다른 사람 손은 마땅치 않아 하시고 나만 찾으셔서 그런 것이지."
"그치 엄니 말씀 잘하셨네. 외할무니도 자식 여럿이 있어도 엄마만 찾으셨담서."
"그랬지."
"엄니가 찾을 자식이 나 말고 또 누가 있어?
어디 숨카둔 자식이 있음 모를까?"
"숨카둔 자식? 이 무슨 숭헌 소리를 허냐?
내가 자식이라고 해야 너 밖에 더 있냐?"
"거봐여 자식이 달랑 나 하나 밖에 없음서 가긴 어딜 가신다해?"
"넘들은 자식이 많아도 다들 요양원에 간다드만 거기도 좋댜?"
"좋대? 엄니도 좋대니까 거기 가고 싶어?
엄니가 좋으시대믄 내 거기 보내드리고."


자꾸 요양원가시겠다 말씀하시는 엄니가 서운했다. 내가 뭐 서운하게 해드려서 저러시나? 정말 가고 싶으셔서 그러시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누가 좋대서 간대냐? 니가 나땜에 너무 힘드니까 내가 갈라구 하는 거지."
"나 힘들어. 근데 엄마가 내 앞에 없으믄 그게 더 힘들어.
민정이가 밤에 몇 번 씩 엄마방에 들어가는거 엄마 아셔?"
"민정이가?"
"응, 한밤중에 공부하다가도 몇 번 씩 엄마방에 들어갔다 나와."
"왜 피곤할텐데 잠을 안자구 내방엘 들어온대냐 민정이가?"
"엄마가 잘 주무시나? 아프신거 아닌가? 숨쉬나? 안 쉬나? 가슴에 귀대보고 나온대."
"에구 그랬대냐? 내새끼가 그러는지도 모르고 난 잠만 잤구나."
"그러니 엄마가 나한테 부담이 된단 생각 같은 거 하지마.
민정이는 나보다 할머니가 더 좋대."
"에구 으짜문 너랑 똑 같냐?
너도 자랄때 나보다 느이 할무니를 더 좋아했니라."
"그랬지. 나는 할머니가 좋았어. 까다롭다고 다들 뭐라셨지만 난 할머니의 그 까탈스러움까지도 좋았어.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지금도 기억해. 가슴이 이러다 터지지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이 따끔따끔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어. 엄마 난 지금도 할머니가 그립고 또 그리워. 엄마 민정이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어.
할머니가 아파서, 못견디게 아파서 우리집에서 어떻게 해드릴수 없을때 그때 병원으로 모셔. 영원히 할머니가 우리 곁에 계시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까 사시는 동안 우리집에서 내가 매일 매일 볼 수 있게 해줘, 할머니가 건강하게 사시다가 꼭 가셔야 될 시간이 오면 내가 할머니 보내드릴 수 있게 해줘, 엄마."
"그랬더냐?내가 내 새끼들 땜에라도 아프지 않고 니들 짐이 되지말아야하는데..."


"엄니, 닦지 않으시고 뭐해?"
사랑터에서 돌아오신 심계옥 엄니가 민정이 방에서 나오신다.
"허긴 내가 뭘 해."
엄니가 아이 방에서 나오시고 슬쩍 들여다 본 책상 위에 울 심계옥엄니가 제일 큰 돈으로 생각하는 2000원이 놓여 있었다. 엄니가 만든 종이인형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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