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추억이 된 색색 파라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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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추억이 된 색색 파라솔
  • 유동현
  • 승인 2018.07.16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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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송도유원지 - 유동현 / 전 굿모닝인천 편집장


낡은 고교 앨범은 추억 저장소이다. 까까머리와 단발머리를 한 그대가 있고 분식집 문턱을 함께 넘나들던 그리운 친구들도 있다. 3년간 발자욱을 남긴 모교의 운동장과 교실의 모습도 아련하다. 빛바랜 사진첩에는 ‘인천’도 있다. 교정에 머무르지 않고 과감히 교문을 나서서 사진사 앞에서 졸업앨범 포즈를 취했던 그대들 덕분에 그때의 인천을 ‘추억’할 수 있다.
 
 
지금쯤 그곳은 인천에서 가장 ‘핫’한 장소였다. 한때 여기 정도는 와서 야영하고 수영을 해야 피서 좀 다녀왔다고 했다. 송도유원지는 수도권 최대의 휴양지였다. 강원도 계곡이나 남해안 해변 등 가족을 데리고 멀리 다녀 올 수 없는 아빠는 송도유원지행으로 한해 피서를 ‘퉁’쳤다. 그렇게 웬만한 가족 앨범에는 꼭 끼어있을 송도유원지 사진은 이제 완전히 빛바랜 추억이 되었다.

 
<1979년도 경기수고(현 인천해양고) 앨범 중에서>

 
송도해수욕장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개장했다. 수문을 통해 바닷물을 끌어들였고 무의도에서 트럭 30만 대분의 모래를 실어와 백사장을 만들었다. 늘 탁한 물빛을 보였지만 백사장은 ‘물 반 사람 반’일만큼 붐볐다. 1960~1980년대 잘나갈 때는 여름 성수기 하루 입장객이 3만~4만 명에 달했다. 송도유원지는 2011년 문을 닫았다.

 

1969년도 동인천고 앨범 중에서

<1975년도 박문여고 앨범 중에서>

<1987년도 인천수고(현 인천해양고) 앨범 중에서>

 
1963년 송도유원지는 해수욕장, 보트장, 호텔, 풀장 등을 갖춘 사계절 종합휴양지로 조성되며 1970년 전국 최초의 유원지 시설로 지정됐다. 나중에는 간단한 놀이기구와 작은 동물원도 들어섰다. 다양한 시설이 늘어남에 따라 그에 걸맞게 정문의 모습도 몇 차례 바뀐다. 지금은 흔하게 사용되는 ‘리조트(resort)’라는 영문 간판을 함께 달아 눈길을 끌었다.
현대적 감각의 조형물 형태에서 전통미를 강조한 기와지붕을 얹은 정문으로 변신했다. 파란색 긴 기와지붕 정문은 폐장할 때 까지 그 형태를 계속 유지했다.
 
 

<1982년도 대건고 앨범 중에서>

<1972년도 인천여상 앨범 중에서>
 

송도유원지는 단골 소풍지였다. 인천에서 중고교를 다녔다면 누구나 이곳으로 한두 번 소풍을 다녀왔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행군’ 형태의 소풍길이었다. 용현동 인하대 부근에서 집합해 유원지 정문까지 행군을 했다. 남학생들은 교련복이 소풍 복장이었다.
유원지에 들어가면 오전엔 인공백사장과 호수 주변을 왔다 갔다 하다가 점심때가 되면 삼삼오오 도시락을 까먹는다. 그 때 선생님의 시야에서 멀어지는 아이들은 수상했다. 한참 뒤 그들의 입에서는 약간의 술 냄새가 풍기곤 했다. 이후 야외음악당에 모여 반별 장기 자랑을 하는 게 소풍의 레퍼토리었다. 장기 자랑 때 예상 못한 ‘스타’가 꼭 탄생하곤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교통지옥이었다. 유원지에서 소풍 일정을 파하게 되는데 유원지 정문 앞 로터리 정류장에 승객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만원버스를 몇 차례 보내야 했다. 아예 용현동 까지 걸어가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몇몇 아이들은 트럭을 히치하이킹해 시내로 향하기도 했다.
 


<1975년도 동산고 앨범 중에서>

<1966년도 박문여고 앨범 중에서>

 
해수욕장 옆으로 커다란 인공호수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보트를 타고 사시사철 뱃놀이를 할 수 있었다. 일엽편주 같은 작은 배에 구명조끼도 없이 정원을 초과했지만 두려움은 없고 그저 신나기만 했다.
호숫가에는 물 위에 떠 있는 음식점, 수정각(水晶閣)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생선회와 매운탕을 곁들여 술을 팔았으며 음식값이 비싸서 일부 어른들만 이용했다. ‘이 다음에 커서 꼭 오고야 말거야’ 학생들은 그저 그 앞에서 포즈만 취할 수 있을 뿐이었다.

 
<1975년도 인일여고 앨범 중에서>
 

마땅히 물놀이 할 곳 없었던 시절, 아이들에게 송도유원지에서의 해수욕 경험은 개학 후의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어른들에게도 한나절 바닷바람을 쐬며 일상의 찌든 때를 날려 보내기도 했다. 색색파라솔, 오색튜브, 아이들의 물장구놀이, 안전요원의 호루라기 소리… 옛날 송도유원지의 여름은 그렇게 왁자지껄한 ‘즐거움’으로 언제나 뜨겁게 달궈졌다. 이제는 피서객 대신 중고 자동차가 백사장을 답답하게 뒤덮고 있다.
 
유동현 / 전 굿모닝인천 편집장 dhyou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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