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은 자기 자리는 치우시잖아. 아부지들은 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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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은 자기 자리는 치우시잖아. 아부지들은 좀 다르다"
  • 김인자
  • 승인 2018.07.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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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속초 친구


"어디야?"
"너희 학교 정문."
"그래? 그럼 길 따라서 쭉 올라와. 조금만 위로 더 올라오면 왼쪽에 건물이 하나 보일거야.그 앞에 내가 서 있을께."

길따라 쭉 들어가니 양 옆에 서 있는 나무들이 장관이다.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사열을 받는 기분이다.
저 멀리 정면에서는 설악산이 "속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어서 오세요." 하며 반갑게 반겨주는 것 같다.
햐~울 옥이네 학교 풍광이 정말 좋구나. 학교가 설악산을 병풍처럼 뒤에 품고 있다. 몇 시간을 힘들게 달려온 보람이 있는 곳. 내 벗이 있는 곳 강원도 속초.
정문에서 조금 들어가니 왼쪽에 빨간 벽돌 건물이 보인다.그런데 그 건물앞에 나와 있는다던 현옥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 건물이 아닌가? 조금 더 들어가보자. 조금 더 운전해서 올라갔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보고싶은 내 친구 현옥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현옥아,너 어딨어?" 전화를 걸었다.
오랜 왕길치의 경험상 고민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바로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을 것.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길을 물어볼 사람이 없다.
전화를 걸어 왼쪽 건물도 너도 안보인다하니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갈께." 한다.
금방 온다던 내 친구 대신 다시 전화가 왔다.
"인자야, 혹시 너 속초에 있는 경동대학에 가 있어?"
"응. 여기 아냐?"
속초 아니 다른 곳에도 경동대학이 있을거란 생각은 안해봤다. 그러나 내가 간 곳은 속초에 있는 경동대학. 내친구 현옥이가 교수로 있는 곳은 고성에 있는 글로벌 캠퍼스.속초에 있는 캠퍼스가 지은지 오래되어 새로 지어 고성으로 옮겼다한다.
사람도 건물도 나이를 먹으면 자의든 타의든 함께 했던 것들이 떠나가기 마련이다.
최신식 건물은 아니나 오래된 나무들 속에서 그 멋이 특별한 경동대학교 속초 캠퍼스.품안에 자식들을 다 떠나보내고 늙고 병든 몸으로 장승처럼 그 자리를 지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안타까웠다. 바다를 끼고 있는 것도 아니니 물만 보이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카페로 만들 수도 없고 저 큰 덩치의 학교를 무엇으로 이용하면 좋을까하는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속초에 사는 현옥이, 안산에 사는 은정이 우리 셋은 대학 1학년때 만나 4년을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서로들 사는게 바빠 자주는 보지 못하지만 그래도 몇 년에 한 번씩 만나도 어제 본 듯 그 동안 못 만난 시간이 무색해질 만큼 금방 하하 호호하는 그런 특별한 친구사이다. 함께 있으면 그저 좋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우리는 진짜배기 친구, 우린 대학교때 만났지만 남자들이 말하는 소위 불알친구다.
속초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인천으로 왔다가 졸업 후에는 다시 고향인 속초로 내려가 속초 남자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면서도 병석에 계신 친정엄마를 십 년 넘게 지극정성으로 모셨던 내친구 현옥이. 지금은 경동대학에서 한국어학교수를 하며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산다. 입이 짧으신 아버지 식사 챙기느라 내친구 현옥이도 여행 한 번 마음 놓고 제대로 가본 적이 없다.
본인은 몸이 건강하지 않아서 여기저기 다니지 않는 거라 말하지만 나는 안다. 현옥이가 여행을 좋아한다는걸.아부지 식사 챙기느라 학교만 왔다갔다한다는걸. 언니들이 사는 서울에 왔다가도 친구인 우리도 못보고 볼일만 보고 후다닥 내려가야한다는걸. 현옥이도 몸이 건강한 편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 몸이 아무리 아파도 끼니때가 되면 아버지밥은 새로 해서 따뜻한 밥을 드리고 자기는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없어 사다놓은 죽을 먹는다는 내 친구말을 백퍼센트 공감한다. 나 또한 몸이 아파도 울 심계옥엄니 밥은 바로 해서 따뜻한 밥을 드려야한다. 울 엄니는 바로 금방한 따뜻한 밥이 아니면 꼭 탈이 난다. 찬밥을 드리면 목에 걸려서 식사도 중단하시고 한참을 고생하시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들은 당신이 있는 자리는 치우시잖아. 그런데 아부지들은 좀 다르다. 우리 아부지도 엄마 살아계실 때 엄마가 다 해드려 버릇해서 아부지는 당신은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걸로 아신다. 학교 갔다오면 내가 다 치워야하니까 참 힘들었어. 설겆이하면서 물 틀어 놓고 많이 울었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 너무 힘들어서. 그래도 우리 아부진 아직 치매는 아니셔서 그건 참 다행인데 내가 널 보면 나 힘든건 아무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위로 언니도 둘이나 있고 오빠도 있고 아래로 남동생도 있는데 돌아가신 엄마도 지금 모시고 있는 아버지도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내 친구.그래도 참 다행인 것은 시부모복도 있고 남편복도 있다.
"나는 우리 남편이 아주 못된 짓을 해도 다 용서를 할 수 있을거 같아." 현옥이가 해말게 웃는다.
"아주 못된 짓을 해도 용서를 한다고?"
"응, 훈이 아빠가 병석에 계신 우리 엄마한테 너무 잘했거든. 자식인 나도 그렇게는 못 하는데 할 정도로 아픈 우리 엄마한테 너무 잘했어."

연애를 한들 이 시간이 이리 소중할까?
헤어지기 싫고 좀 더 같이 있고 싶고 시간이 가는게 너무 아쉽고 아쉬운 내 친구와의 해후.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이 시간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빨리 오라고 어디냐고 계속 전화를 하시는 심계옥엄니 때문에 마음은 부담되고 편치 않았지만 강연 핑계삼아 오랜만에 만난 내친구 현옥이.늙으신 아부지를 모시고 사는 그 마음이 어떤건지 알기에 안스럽지만 고맙고 감사했다.나 또한 엄니를 모시고 사는 그 마음이 다르지않기에 친구이면서 든든한 동반자.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늦어지겠지만 현옥이 신랑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현옥이야 친아부지니까 모시고 사는게 힘들어도 자기 몫이지만 장인 어른을 모시고 사는게 여간한 마음이 아니면 어려운 것임을 알기에 친구로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현옥아,집에 올라가기 전에 훈이아빠한테 인사하고 갈께."
"지금 운동할 시간인데 괜찮겠어?9시나 되야 끝날텐데."
"내가 또 언제 너를 보러 올지 모르고 골골하는 너랑 살아줘서 고오맙다고 인사를 하고 가야 내맘이 편하긋다." 하며 농담처럼 말했지만 현옥이 신랑에게 고맙단 인사를 꼭 하고 싶었다.
운동을 하러간 현옥이 신랑은 운동도 마치지않고 중간에 왔다.끝날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왜 중도에 나오셨냐하니 올라가는 시간이 늦어질테니 미리 나왔다 하는 현옥이 신랑.어쩌면 두 부부의 마음씀씀이가 이렇게 고울까.
농담처럼 우리 현옥이랑 살아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드렸다. 그랬더니 현옥이 신랑이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내가 고맙죠.내 친구들은 내가 집사람이랑 결혼해서 제가 사람됐다고 하는걸요." 하고 말하는 현옥이 신랑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서로에게 고맙다며 공을 돌리는 두 사람의 고운 마음을 배우고 집으로 올라오는길. 한동안 나는 또 힘내서 씩씩하게 잘 살수 있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랑 함께 사는 내친구. 동해바다처럼 크고 넉넉한 마음을 가진 내친구.그 곁에서 태산처럼 든든하게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내친구 남편을 보니 너무 좋다.보고싶은 친구도 보고 좋아하는 바다도 보고 나는 오늘 님도 보고 뽕도 땄다.
좋아하는 바다를 보며 맛있는 감자전을 먹으며 "햐, 좋다. 너무 좋다." 하는 내게 "니가 좋아하니 나도 참 좋다."하는 고마운 내친구.현옥이의 따뜻한 미소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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