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의 생존과 파국, 헌법에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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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의 생존과 파국, 헌법에 묻다
  • 박병상
  • 승인 2024.04.25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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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박병상 /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청소년기후소송, 시민기후소송, 아기기후소송, 탄소중립기본계획소송 관계자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첫 공개변론 공동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 부실을 규탄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청소년기후소송, 시민기후소송, 아기기후소송, 탄소중립기본계획소송 관계자들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첫 공개변론 공동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 부실을 규탄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55회 ‘지구의 날’에서 하루 지난 4월 23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는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제42조 제1항 제1호의 위헌 확인”을 위한 공개 변론을 시작했다. 저녁 무렵 비 예보가 있었지만, 오전부터 봄날 같지 않게 따가운 날이었다.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가운데, 변론이 시작되기 두 시간 전부터 시민, 아기와 어린이의 손을 잡은 엄마, 그리고 시민단체와 변호사들이 헌법재판소 정문에 모였고, 그 앞에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우르르 반원을 그리며 둘러쌌다. 아시아 최초라 그랬을까? 언론은 기자회견부터 주목했고 헌법재판소는 성의 있는 검토를 약속했다.

우리 헌법은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제35조 제1항에 규정한다. 그렇다면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옛 녹색성장법)과 시행령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 정부는 법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정했는데, 약속을 철석같이 지켜도 미래세대의 생존은 위협받을 게 틀림없지 않은가. 미래세대이거나 그 부모인 청구인은 우리나라의 관련 법이 시민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기후소송은 4년 전부터 4차례 이어졌어도 반응이 없었다. 해외에서 비슷한 소송이 잇따르면서 우리도 관심을 가졌는지 모른다. 4년 동안 청구인은 청소년과 5살 이하 영유아를 비롯해 255명으로 늘었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2주 지나 변론을 시작한 헌법재판소는 뒤늦게 4개 단체의 소송을 병합했고, 청구인들은 변론 1시간 30분 전,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한 초등학생은 변론 기다리는 동안 9cm 성장했다고 말하며, 세계 평균기온은 더욱 상승했다고 덧붙였다.

140석이 거의 들어찬 재판정은 휴정 20분을 포함해 5시간 넘는 변론을 팽팽하게 진행했다. 청구인과 정부가 파견한 변호인의 발표와 주장, 양측에서 초청한 참고인의 발표가 있었고 9명 재판관의 성의 있는 질의와 진지한 응답이 이어졌다. 전문 자료와 숫자가 난무하는 가운데 추궁하는 청구인 측과 방어하려는 정부 측의 공방은 청중을 긴장하게 하거나 헛한 웃음 짓게 했다. 청구인이 헌법에 소원한 이유는 절박함이다. 미래세대의 생존 여부가 달린 일이 아닌가. 지금처럼 대응하면 파국을 피할 수 없다고 수많은 기후학자가 근거를 들어 누차 경고하는데, 유엔도 마음이 급한데, 왜 우리 정부는 느긋하기만 할까?

정부 측 논리를 변호하는 어려움을 이해하려 해도 어처구니 없었다. 기후와 환경운동에 몸을 담은 활동가들은 정부 측의 안일함에 혀를 내둘렀다. 2018년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량은 사상 최대였다. 2020년부터 구체적 자료를 제시하며 감축에 나서야 했고, 그리 약속했건만, 지키지 않았다. 정부 측은 2020년 개발도상국 지위였기에 의무 사항은 아니었다고 변명했다. 선진국 반열에 올랐으니 이제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주장했는데, 손 놓다 6년 허송세월로 보내더니 고작 6년 남았는데 시작하겠다고? 가능할까? 기후학자인 정부 측 참고인은 현실상 어렵다는 걸 인정하면서, 남은 시간이 부족해 파국의 한계선을 넘을 수밖에 없다고 실토했다. 파국으로 가는 수준으로 감축할 수밖에 없다며 자괴감을 드러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23년, 수만 편의 연구를 종합한 6차례 보고서를 펴내면서, 제발 파국을 피하자고 각국 정부에 당부했다. 세계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시절보다 섭씨 1.5도 상승하면 돌이킬 수 없으므로 절박하게 호소했다. 하지만 안타깝다. 변론에서 확인한 정부의 자세는 우리의 배출 기준을 2.5도 상승으로 맞출 요량인 모양이다. 물론 우리나라만 배출 약속을 지킨다고 파국을 면하는 건 아니다. 미국과 유럽, 최근 중국과 인도에서 배출하는 탄소도 막대하다. 그들의 노력과 별도로, 우리는 우리 미래세대의 생명을 염두에 두고 법을 제정해야 하는데, 전혀 아니다. 이건 정부의 자세가 아니다. 미래세대의 파국을 당연시하지 않나.

상세한 내용까지 이해할 필요 없는 시민에게 변론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려니 아쉽다. 밑도 끝도 없이, 경제와 기업 경쟁력 운운하는 현 정부는 미래세대가 아니라 기업의 눈먼 이익을 배려하려는 태도를 연출했다. 화석연료 대안으로 현재 해외에서 집중하면서 효과가 입증된 태양과 바람을 한사코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비용이 적으며 부작용이 거의 없는 재생 가능한 자원이 아닌가. 그에 반해, 비용 부담이 크면서 불확실하고 실패했을 때 어떤 재난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핵과 탄소 포집 같은 산업을 고집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미래세대 생명은 기업 이익보다 중요하지 않은가? 느긋한 태도에 답답함을 넘어 분노가 인다.

문제는 에너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올 초 세계 평균기온은 벌써 1.5도를 넘어섰다. 30년 동안 계속 이어지면 파국은 필연이다. 파국을 막으려면 황급히 탄소중립를 완수해야만 한다. 2050년까지 사용하는 탄소와 자연에 고정하는 탄소가 일치되도록 정부는 시민의 호응을 받으며 고통스럽게 노력해야 한다. 시민 동의를 거쳐 에너지를 과하게 요구하는 수도권 집중, 초고층 아파트, 식량 해외 의존을 비롯해 에너지가 들어가는 삶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축소해야 하는데, 준비하는가?

‘쇠귀에 경 읽기’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태어나는 아이와 그 부모를 생각해 보자. 정부만이 아니다. 인천은 눈에 띄는 노력도 없이 2045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는데, 가능할까?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인천대공원에 1.5도 기후위기 시계를 설치한 인천시는 아이를 낳으면 최대 1억 원까지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시계는 파국이 5년 앞이라고 경고하는데 인천시민은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 걸까? 곧 22대 국회가 개원한다. 그 전에 헌법재판소가 나서길 기대하는데,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졌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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