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공원 - 인천의 '센트럴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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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공원 - 인천의 '센트럴파크'
  • 김용하 인천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승인 2012.03.1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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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으로 조성된 전국 최초의 자유공원 역사와 의미



<인천in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협약 기사>

개항기부터 2개의 공원이 있었다

개항 초기 인천에는 각국의 외국인이 이용하기 위해 만든 'Public Garden'과 일본거류민이 만든 '일본공원(Japanese Park)'이 있었다. 현재 'Public Garden'은 자유공원으로 지속되고 있으나, '일본공원'은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가 있는 학교용지로 변경되어 당시 지형을 알 수 있을 정도의 흔적만 남아 있다.

'Public Garden'은 개항기에는 각국공원 혹은 만국공원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서공원으로, 해방 이후에는 다시 만국공원으로 불리다가 지금은 자유공원으로 바뀌었다.

도시계획으로 공원이 지정되었다

자유공원은 오랫동안 인천에서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 일상에 축적된 가장 대표적인 공공장소이다. 자유공원의 역사를 모르는 외부사람들은 공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맥아더 장군 동상과 웅장한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이 있어 한미관계를 상징하는 공원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자유공원은 인천 개항 당시부터 '다국적 공원'으로 만들어졌다. 1883년 중구 응봉산 기슭에 월미산을 바라보면서 일본‧중국을 비롯하여 독일‧프랑스‧러시아‧미국과 같은 서양국가 국민들의 거주를 허용하는 조계지가 설정될 때 공원의 위치도 함께 계획되었다. 1884년 10월 3일 조인된 '인천제물포 각국공동조계장정'에 첨부된 도면을 보면 각국공동조계에 공원(Public Garden)이 지정되어 있는데, 이것이 지금의 자유공원에 해당된다.

각국공동조계장정은 일본 고베(神戶) 각국거류지를 경험한 조선 영국총영사 윌리엄 아스톤(W.G.Aston)이 기초한 것으로, 자연스레 서양문화가 이식되었다. 장정에 의해 각국조계는 인천해관 소속 러시아인 기술자 사바찐(A.I.S. Sabatin)이 도로폭에 따라 가로망을 설정하여 대지의 형상과 규모를 구획하고, 영사관 등 공공청사와 부두, 공동묘지, 하천, 공원 등 공공시설을 배치하였다. 이러한 계획도면은 오늘날 도시설계와 유사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최초의 도시계획이라 할 수 있다.

1888년부터 서구식 공원이 조성되었다

공원부지는 1884년 11월에 지정되었고, 실제 조성은 1888년 7월 각국공동조계를 운영하는 기관이 설치된 이후부터 조경공사, 가로등 설치 및 도로 개설이 이루어졌다. 1894년 각국공동조계 관리기관의 예산에서 집행되었고, 예산항목에 공원비를 책정한 것으로 보아 짐작할 수 있다. 공원조성 초기에 외국인이 들여와 심은 것으로 보이는 수령 100년 정도 되는 양버즘나무와 일본 원산의 잎갈나무, 벚나무류 등 남아있는 고목을 통해 당시 상황이 추측된다.

자유공원 면적은 지정 당시 도면으로 보아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14년 조계제도가 폐지될 때 약 22,568㎡(인천부사, p.636)으로 나타나 있다. 현재 공원면적은 1944년 1월 8일 결정(조선총독부고시 제13호)에 의해 약 68,555㎡로 확장된 것이다.

일본공원은 1889년에 개설한 일본인 진쟈(神社)가 있는 사찰부지내를 활용하는 것으로 근대식 공원이라고 보기 어렵다. 공원 부지면적은 약 27,588㎡로 자유공원보다 약간 큰 규모였다. 일본공원을 1914년 이후 동공원(East Park)이라 고쳐 부르게 되면서 만국공원이 서공원(West Park or Foreign Park)으로 불리게 되었다. 현재는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공원시설은 대표적인 서양 문화이식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개항된 부산(1876)에서는 일본인이 1890년대 용두산에 진쟈(神社)를 설치하고 경내를 공원으로 활용하였다. 또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공원으로 알려져 있는 서울 탑골공원(1897)은 폐허가 된 사찰부지를 활용하여 서양인이 설계한 것이다. 그러나 인천의 '만국공원'은 외국인 조계지를 계획할 때 '공공(Public)' 개념을 도입하여 인위적으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서양식 공원이라 할 수 있다.

서구열강에 의해 개항된 동아시아 3개국 개항도시 - 1843년 중국 상하이(上海), 1859년 일본 요코하마(橫浜), 1883년 한국 인천 - 모두 만국공원(Public Garden)이 공통적으로 설치되어 있고, 공원 분위기도 흡사한 것은 서양인 그들의 문화이식현상이라 볼 수 있다. 중국 상하이 공동조계 내 황푸강(黃浦江)과 오송강(吳淞江)이 합류하는 삼각형 부지에 영국인들이 1886년 황푸공원(黃浦公園)을 만들었으나 중국인들의 이용은 금지했다. 일본 요코하마 공동조계 내 습지를 매립하여 1868년 히가공원(彼我公園, public garden)을 만들어 외국인과 일본인이 쌍방 이용할 수 있도록 했으나 주로 외국인들이 사용하였다. 1871년 조성된 야마데공원(山手公園)은 외국인 전용 공원이었다. 중국 상하이, 일본 요코하마에 설치된 공원의 이용을 미루어볼 때 당시 'Public Garden'은 주로 거주 외국인들의 휴식처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역사-문화유산으로서 자유공원의 가치

밀집된 콘크리트 건물과 자동차 배기가스로 혼탁한 대도시에서 공원은 깨끗한 공기와 푸른 녹지를 제공해 주어 시민의 휴식처로서 뿐만 아니라 재해시 피란장소로 활용되는 도시의 '오픈 스페이스'이다. 공원의 역사를 보면 근대공원은 19세기 영국의 왕족소유 대규모 정원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면서 확산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런던의 하이드 파크(Hyde Park), 파리의 블로뉴 공원(Boulogne Park)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근대 도시계획에 의한 공원은 뉴욕 맨해튼에 조성된 센트럴파크로 20세기 들어와서부터이다.

역사-문화유산으로서 개항기 자유공원은 우리나라에서 도시계획으로 조성된 최초의 공원이자 인천의 '센트럴파크'라고 하겠다.
만국공원의 테니스경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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