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군주론'의 근대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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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군주론'의 근대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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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6.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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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군주론을 읽기 전에 먼저 이해하여야 할 내용이 있다. 근대 혹은 현대로 불리는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다.

근대라는 개념(모더니티)은 기존 서구에서 갖는 개념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킨 개념이다.

이것을 정리하면 우선 이렇다.

1. 모더니티는 공통된 언어와 전통에 기초를 둔 단일 민족국가의 성립을 탄생시켰다.

2. 모더니티는 인간의 문제에서 이성의 권위를 가장 우위에 두었다.

3. 모더니티는 대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규명하는 데 무엇보다도 자연 과학 권위에 의존하였다.

4. 모더니티는 삶과 자연 현상을 탈신비화시켰다

5. 모더니티는 모든 개인의 천부적 권리, 그 가운데서 특히 자유와 자기 결정의 표현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였다.

6. 모더니티는 자유 시장 경제 제도를 도입하고 그것에 수반되는 임금 노동과 도시화, 그리고 생산 수단의 개인 소유를 적극 장려하였다.

7. 모더니티는 인간의 발전 가능성을 굳게 믿으면서 관용, 동정, 사려분별, 자선 등과 같은 기독교적 휴머니즘에 기초한 다양한 덕성을 높이 평가하였다.

위에서 1은 종교전쟁을 겪은 후 1648년의 베스트팔렌조약을 통해 유럽의 각 나라가 국민국가로 재편성하면서 나온 것이다. 2~5는 데까르트와 칸트 등을 통해 신의 뜻에 따라 구성되고 존재하는 세상을 인간이성으로 보는 것으로 근대를 열어 젖혔다는 것이다. 6의 내용은 로크의 통치론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사유재산의 중요성과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이 기존의 봉건질서를 해체시켜나갔으며 ‘개인’의 문제가 신분과 특권의 구 질서를 대체하여 나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의 개념은 인간사의 모든 문제를 ‘신’으로부터 ‘인간’, 특히 인간 개인의 이성으로 치환시켜 나간 개념이다.

여기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갖는 의미는 인간사의 ‘정치’라는 영역에서 아주 커다란 영향을 준 신개념을 인류에게 제공하고 이후 인간역사에서 정치의 개념을 바꾸어 나간 것이다.

그럼 마키아벨리 이전의 정치개념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대표적인 것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다. 이들의 생각은 정치는 훌륭한 정치인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훌륭한 정치인은 지혜로운 자이어야 하며 이는 인격적으로도 완벽한 사람이어야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아서 일정한 정치공동체에서 가장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이러한 사람이 정치를 통해 나라와 인간을 다스려야 그 공동체가 잘 살게 된다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로 이해되는 정치철학이다. 공자는 인(仁)의 정치를 강조했고 맹자는 왕도(王道), 즉 덕(德)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맹자의 양혜왕편에서 나온 이(利)의 정치가 아니라 덕(德)의 정치의 강조는 바로 통치자가 스스로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왕은 신하들로부터 끊임없이 경연과 학습을 통해 왕 스스로 덕을 쌓고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다.

이를 통해 마키아벨리 이전의 정치는 ‘권위의 정치학’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스리는 자가 인격적으로 완벽한 권위를 갖게 되며 그 권위를 통해 통치받는 자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서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정치 또는 동양적 사고의 정치는 이러한 믿음이 정치라는 것에 깊이 있게 스며들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동양에서 한비자 등 제자백가 사상 중에는 마키아벨리적 사고방식을 주장한 사람도 있었지만 실제 정치현실에서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것은 공맹의 사상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여기에 커다란 메스를 들이대었고 이후 세계역사에서 정치라는 것은 모두 마키아벨리의 개념을 받아들이게 된다.

우선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군주론 15장 페이지 105-106 까치, 이하 페이지만 표시)

즉,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나아가 마키아벨리는 몰랐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와 맹자까지도 주장한, 훌륭한 덕을 가진 정치인보다는 현실에서 존재하는 정치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럼 현실에서 존재하는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마키아벨리는 무엇으로 이야기하였을까. 크게 두 가지를 강조하며 이것을 갖추지 못한 군주는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다고 말한다.

그 두 가지는 첫째 무력이고 둘째는 설득력이다.

다시 말하면 첫째의 무력을 마키아벨리는 군대, 특히 자국민으로 구성된 군대를 강조하였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경찰, 군대, 법률, 제도 등이고 둘째의 설득력은 오늘날 용어로 말하자면 이데올로기이다.

위 두 가지, 즉 무력과 설득력이 합쳐져서 헤게모니라는 개념이 나오게 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키아벨리가 사용한 개념인 비루투(virutus)이다. 이것은 함께 사용한 포루투나(fortuna)의 개념과 함께 사용하였지만 제일 중요한 개념이다. 예전에는 이 말을 ‘미덕’으로 표현하였지만 이제는 ‘역량’으로 표현하여야 가장 근접한 단어가 된다.

기존 정치철학에서는 ‘훌륭한 덕’이 가장 중요한 정치가의 자질이었다면 마키아벨리는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훌륭한 덕’과 ‘역량’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도덕’에 대한 태도이다.

마키아벨리에게 도덕은 정치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도덕적이지 않더라도 군주가 권력을 유지하고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만 있다면 도덕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한다.

다시 한번 마키아벨리의 말을 보자.

“악덕 없이는 권력을 보존하기가 어려운 때에는 그 악덕으로 인해서 악명을 떨치는 것도 개의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일견 미덕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반면, 일견 악덕으로 보이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페이지 107)

아마도 이 구절 때문에 마키아벨리가 악을 강조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정치와 도덕을 분리하는 마키아벨리 사고에는 정치체제가 외세에 의해 침략을 당하거나 체제 내부가 불안하게 흔들려서 체제 내 사람들의 삶이 곤궁하고 피폐해지는 일을 우려하였던 것이다.

도덕의 강조보다는 어떻게 체제를 안정시키며 그 안의 사람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느냐를 강조하게 되면 정치는 정치 그 나름 논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도덕과 정치의 분리를 마치 부도덕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도덕과 정치의 분리는 정치를 부도덕적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도덕은 분리되어 있으며 부도덕과도 분리되어 있는 별개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마키아벨리를 혹자가 독재자를 옹호하는 논리라고 비판하는 측면도 받을 수 있겠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철저하게 군주가 위와 같은 정치를 통하여 공동체의 안녕과 공동체구성원의 안정적 삶을 추구하였지 독재자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었다.

군주는 미움을 받더라도 경멸을 받으면 안 되며 “미움을 받은 일은 타인에게 떠넘기고 인기를 얻는 일은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페이지 128)를 보면 억압과 폭력을 통한 통치보다는 국민들이 믿고 따르는 설득력을 더욱 강조한 것이 독재정치와는 분명히 다른 면을 보여준다. 이 설득력이 바로 역량이며 비루투이다.

물론 이러한 면면들이 현대에 와서 재해석하다 보니 현대의 정치가들의 모습에서 실망되는 모습의 원조가 마키아벨리라고 오인할 수 있는 내용이 책의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책이 16세기 초에 나온 점을 생각해 보면 그 당시의 정치에서 나타나는 도덕을 빙자한 부도덕과 정치를 빙자한 폭력의 난무함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는 세상으로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한 마키아벨리의 고민이 엿보인다.

역설적으로 마키아벨리를 비판하면서 마키라벨리를 따르고 있는 현대 정치, 다시 말하면 현대정치는 마키아벨리의 영향력하에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

결론적으로 마키아벨리는 “권위의 정치학”의 시대, 즉 고전적 덕의 세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덕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면서 현실세계에서의 냉혹한 ‘권력의 정치학’의 토대를 깔아놓았던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역량으로 무력과 설득력을 겸비한 자가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 헤게모니를 장악하여 정치공동체의 안녕과 국민들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치라는 것을 우리 인류사에 처음으로 제시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과학의 발전, 종교개혁, 국민국가의 탄생, 자본주의 발전 등과 더불어 정치에서 근대를 열어젖힌 마키아벨리 <군주론>이 갖는 근대적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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