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사 기쁨조' 투서 - 교육청 대응 '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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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사 기쁨조' 투서 - 교육청 대응 '부실'
  • 송은숙
  • 승인 2012.09.03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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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현경 의원, "설문조사 다시 해야" - 이목 집중

취재:송은숙 기자

인천시교육청이 지난 달 29일 인천지역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갑작스런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승진을 앞둔 여교사들이 관리자인 교장과 교감에게 술시중, 동행출장, 성추행 등을 당하고 있다는 이른바 '여교사 기쁨조' 투서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형식적인 '면피용'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승진을 앞둔 여교사들의 고충을 호소한 투서.

'청렴한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설문조사'라는 제목으로 430개 학교에서 1만8천여명의 남녀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된 이 설문조사 서두에는 비밀이 보장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날 설문조사는 학교도서관 등지에서 칸막이도 없이 진행됐다.

노현경 시의회 교육위 의원은 "더욱이 관리자인 이웃 학교 교감선생님이 와서 설문지를 나눠주고 쓰라는데, 과연 어느 교사가 속마음을 쓸 수 있겠냐. 여교사들에게 이날 오후 연락이 와서야 이런 사실을 알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런 환경에서 설문조사를 한 것도 문제이고, 설문조사 내용과 대상 또한 모두 반쪽짜리 조사이다"면서 " 문제 해결 의지가 있다면 제대로 다시 해서 투서에 담긴 내용을 사실확인하고, 처리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설문항목은 근무평정점수(이하 근평), 승진제도 개선에 대한 질문은 아예 배제된 채 7월 중순 '청렴한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노력 및 관리 철저'라는 공문과 '교육감 공직기강 확립 서신' 내용을 아느냐, 이후 학교문화가 바뀐 점이 있느냐 등 9개 항목으로 이루어졌다.

설문조사 대상 또한 논란을 빚고 있는 부분이다. 이번 조사는 정교사만을 대상으로 해 재계약 등을 앞두고 비슷한 어려움을 겪거나 또는 더 심한 고충을 겪을 수 있는 기간제 교사 등 계약직 여교사 1,500명은 설문조사에서 제외됐다.

이와 관련해 노현경 의원은 "교육청에서 설문조사를 하기 전 설문항목을 보기로 했는데, 아무런 연락 없이 갑자기 설문조사가 진행됐다"면서 "또한 21개 항목으로 된 설문지를 준비해 교육청에 보냈지만 이 내용은 설문조사에 반영되지 않았고, 이 설문지를 학교에 보내고 우편으로 답변을 받아 실태를 파악하고자 했지만 협조가 되지 않아 학교에 전달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여교사들의 고충을 호소한 '여교사 기쁨조 투서'는 지난 7월 9일 시교육청 부교육감 앞으로 처음 전달됐다. 이어 7월 31일 교육현장에서는 여전히 나아진 점이 없다며 2차 투서가 부교육감에게 다시 전달됐다.

승진을 앞둔 여교사들이 교장과 교감 등 학교관리자들에게 술시중과 동행출장 등은 물론 성희롱 발언, 성추행 등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 투서의 구체적 내용은 인천은 물론 전국 교육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다른 곳도 아닌 '교육현장에서조차'라는 당황스러움과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승진을 앞둔 여교사들에게 관리자들이 보직과 근평을 준다는 명분으로 술자리를 원하고 신체 접촉(노래방서 껴안기, 얼굴비비기, 하체 접촉하기, 음식점서 손잡기, 무릎에 손 올리기 등)을 요구하는 일…거부하면 이래서 근평을 못 받았지? 이래서 어떻게 승진을 해 등…" -1차 투서-

"이번 교육감님 서한을 그대로 전달한 학교와 일부만 전달한 학교를 파악해 전달이 미흡한 학교를 시정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교육감님의 중대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25일 배웅을 나간 학교를 조사하여 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학기말 반성회를 빙자하여 1박, 2박을 하면서 음주가무를 한 학교를 조사하여 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 부교육감님, 여교사들을 가정으로 돌아가게 도와 주세요. 이번 김○○ 교감이 자살한 이유도 알고 계시지요? 교원들의 잘못된 밤문화에서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2차 투서-

이처럼 2차 투서에서는 구체적인 학교나 인물의 사례까지 언급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러나 시교육청은 두 차례 투서에도 불구하고 '익명'이라 신뢰하기 어렵다며 별다른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1차 투서를 받은 지 며칠 후인 7월 13일에 공문과 4대 비리 이상으로 엄정 처벌하겠다는 교육감 서신으로 기강 확립을 당부한 게 전부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이런 지시사항조차 전달하지 않거나 한두 가지 사항만 축소 안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3차 투서가 8월 16일 노현경 의원 앞으로 전달되기에 이르렀다.

"근평을 받아야 한다는 초조함과 근평이 교장의 펜에 달려 있다는 생각에 따까리(개인 일까지 챙기고), 기쁨조(술자리에 새벽까지 모셔야 하고), 심복(교장이 가는 곳은 언제나 따라야 하고, 개인적인 일에도 따라야 하고), 장거리 출장에도 비서처럼 따라야 하고(1박을 하는 경우 왜 여교사가 운전을 하여 모시고 저녁에 술대접을 하고 수발을 들어야 하는지요) …. 새벽까지 교장을 모시느라 몸과 맘을 허비하고 학교에 와서 무슨 수업을 하겠습니까? … 학교에 승진 경쟁자가 있을 경우 모 선생님이 되었다면 '뭐야, 돈이야 몸이야' 이런 말이 교육현장에서 오간다는 것이 치욕스럽습니다." -3차 투서-

김명숙 전교조인천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이번에 알려진 것과 비슷한 내용의 제보가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여성단체나 교육청 감사팀 등이 설문조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노현경 의원 역시 "설문조사를 다시 해서 여교사들의 고충을 확인한 후 이에 따른 처벌이 필요하다"면서 "물론 교장·교감에게 70%의 평가권을 주는 근평과 승진제도 개선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현재 교장에게 40%, 교감에게 30%의 권한을 주는 근무평정점수와 동료들이 하는 다면평가 30%가 승진에 반영된다.

하지만 시교육청 관계자는 "설문조사를 다시 할 계획은 없다"라고 말했다. 29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해 구체적인 사례가 발견되면 감사담당관실에서 사실파악 등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논란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착잡하기만 하다. 한 시민은 "이런 일이 일부일 것으로 믿는다. 문제가 있는 학교는 이번에 잘 조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교장, 교감선생님들은 교육계 전체가 그렇게 비치는 데 대한 불편함도 크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현재 인천지역 여교사는 계약직 여교사 1,500명을 포함 1만5천여명이다. 사실 교육현장에서조차 이런 일들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져 왔지만, 이번 투서를 통해 곪아 터진 '관행'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정으로 돌아가면 엄마이자 아내, 며느리인 여교사들의 고충을 시교육청이 어떻게 풀어갈지 이목이 집중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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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대 2012-09-03 09:59:44
인천시교육청이 과연 곪아 터진 관행을 바로잡는 자격을 가진 곳인지 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교육청도 거기서 기기인 것 같아요.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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