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관광지로 승화된 임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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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관광지로 승화된 임진각
  • 이창희
  • 승인 2012.10.15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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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수풍물]마지막 남은 분단국가를 본다

임진각은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는 6.25전쟁. 그 전쟁의 아픔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곳이 판문점이다. 판문점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최북단의장소가 임진각. 북한땅이 보일리 없지만, 눈앞에 보이는 임진강 너머가 마치 북한땅처럼 처연한 풍경으로 와 닿는다. 자유로를 달리면 내내 따라다니는 강변의 철책이 그러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 탓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임진각은 우리역사의 아픈 현장이자, 안보관광의 최고 장소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강변북로를 타고 상암경기장과 행주산성, 일산을 지나고 자유로에 접어들어 파주출판단지를 오른쪽으로 보면서 화석정을 지나면 오두산전망대를 지나 임진각에 닿는다. 휴전선에서 불과 7km 못 미친 거리다.임진각 이정표를 따라 p턴을 해 들어가면, 가장 먼저 임진강역이 반긴다. 역사앞을 지나면 앞쪽으로 임진각주차장이 넓게 자리잡고 있고, 왼쪽으로 임진각 놀이공원의 바이킹이 키 큰 거인처럼 서 있고, 그 너머로 임진각 본관과 평화의 종 종각이 보인다.
 
차를 세우고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게 되는 곳이 평화의 종. 1999년 21세기의 시작을 기념해 조성된 종으로 종각의 넓이가 21평에 높이는 21미터.종의 무게가 21톤에 타종을 할때도 21번을 한다는 바로 그 종이다. 평화종 아래는 철조망이 쳐져 있고 철조망안에는 직접 농사를 짓는 기름진 논이 펼쳐져 있다. 종각에서 왼쪽으로 나오면 임진각에서 가장 유명한 ‘자유의 다리’다. 나무로 얼기설기 대서 만든 교각위에 철 난간이 있고 나무로 바닥을 깔아놓은 83미터의 허름한 다리지만 1953년 건설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본래는 독개다리라고 불렀던 다리인데, 휴전협정이후 북한에 잡혀있던 1만2천7백여 명의 포로들이 이 다리를 건너오면서 ‘자유의 다리’라 부르게 되었다.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함께 6·25전쟁의 비극을 상징하는 이 다리는 7·4공동성명 이후 남북회담 대표들이 지나다닌 길목이기도 하다. 자유의 다리 끝에는 더 이상 갈 수 없도록 철조망에 쳐져 있는데, 철조망 빼곡히 노랗고 빨간 천 조각들이 걸려 있다. 망향의 한을 달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이들이 북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천 조각들이다.

또한 철조망 너머에는 도라산역까지 연결되어 있는 경의선의 새로 만든 교각이 맞닿아 있다. 자유의 다리아래에는 한반도의 모형을 한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자유의 다리와 경의선너머의 북녘땅이 아스라이 굽어보이는 임진각 한 모퉁이에는 망배단이 있다. 매년 명절 때면 실향민들이 이곳에 와서 고향을 향해 절을 하는 곳이 바로 이 장소다.

망배단 뒤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임진각 본관인데, 북한전시관을 비롯해 영상물 감상관 전망대등이 갖추어져 있다. 지하 1층에는 세계 희귀 패류, 1층에는 북한의 생활필수품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서는 최근의 북한 실상을 담은 비디오를 상영하며, 3층은 전망대이다.

임진각 뒤쪽은 통일공원이다. 임진각지역 전적비와 미군참전 기념비, 트루먼 동상, 아웅산순국외교관 추념비, 판문점 회의장 모형 등이 있다. 또 6·25전쟁 때 사용된 장갑차와 전차·비행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임진각과 통일공원 왼쪽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푯말을 달고 경의선을 달리던 마지막 증기기관차가 녹슨 철로위에 발을 묶고 있다. 증기기관차 아래쪽이 놀이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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