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광릉수목원 잘 보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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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광릉수목원 잘 보존해야
  • 이창희
  • 승인 2012.10.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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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수풍물] 광릉수목원길 차량 통제해야...

광릉수목원은 1468년 세조가 능림 지정 이후 시험림으로 관리했다고 한다. 소리봉 정상에 오르면 인수봉,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천마산, 축령산이 경기도 진접읍의 아파트 단지와 함께 한눈에 들어왔다. 광릉 숲은 서울에서 불과 39㎞ 떨어져 있다. 그러나 이 숲의 생물다양성은 북한산, 소백산, 주왕산 등 국립공원보다 우수하다. 단위면적당 생물 종을 따지면 국내 최고 수준이다.
 
광릉 숲 2,240㏊에는 식물 865종, 곤충 3,925종, 조류 175종 등 모두 5,710종의 생물이 산다. 여기엔 흰진달래 등 광릉 숲 특산식물과 장수하늘소 등이 포함돼 있다. 단위면적당 식물종 수는 광릉 숲이 ㏊당 38.6종으로 설악산 3.2종, 북한산 8.9종을 크게 웃돈다. 곤충도 광릉이 175.2종으로 설악산 4.2종, 주왕산 12.3종보다 많다.
 
이처럼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데는 무엇보다 인간활동이 집중되는 온대 중부지역에서 이례적으로 장기간 숲이 보전됐기 때문이다. 1468년 조선 7대 왕 세조는 이 지역을 왕릉인 광릉의 부속림으로 지정해 산직을 두어 엄격하게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부터 현재까지 한 해도 멈추지 않고 임업 시험림 구실을 해 왔고, 이에 따라 개발과 훼손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림 보전과 생물다양성만 본다면 광릉 숲의 반쪽만 보는 셈이다. 광릉 숲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임업 관련 기관이 들어서, 한반도에 적합한 나무를 어떻게 심을지를 연구해 온 우리나라 임학의 산실이다. 김석권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장은 “광릉 숲의 가치는 자연림 못지않게 인공림에 있다”며 “90여 년 전부터 나무를 심어 가꿔온 광릉 숲에서 우리나라 숲의 미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광릉 숲에서 핵심구역은 소리봉과 죽엽산(600.6m)을 중심으로 한 천연 활엽수림 755㏊이다. 핵심구역을 둘러싸는 완충지역 1,657㏊는 인공림이다. 김석권 박사의 안내로 임도인 직동로를 따라가며 광릉 숲 인공림의 모습을 살펴봤다. 1914~1917년 심었다는 팻말이 붙어 있는 낙엽송이 앞을 가로막았다. 가슴높이 둘레가 1m가량이고 높이는 20여m로 하늘로 쭉 뻗은 모습이 “쓸모없다”는 세간의 평가를 무색하게 했다.
 
심은 지 80년이 지난 상수리나무도 마을 주변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상처 없이 미끈하게 자라나 있었다. 상수리나무 밑에 잣나무와 전나무가 자라는 복층 숲에서 인공림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1924년 심은 느티나무 숲은 정자나무나 가로수에서 보는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위로 쭉 뻗은 모습이었다.
 
“인공림이라도 수십 년 동안 자연과 잘 어울려 자란 숲은 자연림과 다를 바 없다”며 “조림한 지 약 30년이 지난 우리나라의 인공림을 잘 가꾼다면 광릉 숲처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숲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1928년 조림한 전나무 숲 바닥에는 어린 전나무가 빼곡하게 돋아나고 있었다. 언제든 상층의 관목을 제거하면 전나무 숲이 형성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인공림은 자연림으로 전환된다. 독일의 가문비나무 숲처럼 전나무의 천연 갱신림이 형성될 답이 80여 년 만에 나온 것이다.
 
임업을 ‘3세대 산업’이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심고 아버지가 가꿔 자식이 혜택을 보는 산업이다. 우리의 임업은 이제 2세대인데, 자식 세대가 누릴 혜택을 우리가 보겠다고 나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90~100년을 주기로 순환하는 임업의 유장한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능내로 임도를 따라가면 1964년 식재한 잣나무림이 나온다. 나무를 얼마나 조밀하게 심는 것이 바람직한지 알아보기 위한 시험림이다. 2001년 3천 본을 심는 게 가장 낫다는 중간 결론이 나왔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47년째 지켜보고 있다.
 
광릉 숲은 ‘숲의 바다’이지만 그 바다엔 길이 나 있다. 광릉 숲은 65개의 임반으로 나뉘고 각 임반은 또 여러 개의 소반으로 나뉜다. 임반은 모두 13개 노선 45㎞의 임도를 통해 접근하도록 돼 있다. 광릉 숲의 관리 지도를 보면 마치 동네 부동산 소개업소의 지번 도를 보는 것 같다. 수백 년 동안 손 대지 않은 천연 활엽수림과, 그것을 둘러싸고 전국 평균의 약 4배인 ㏊당 255㎥의 목재가 축적돼 있는 인공림은 광릉 숲의 두 얼굴이다.
 
세조는 1468년 자신의 능이 들어설 자리를 능림으로 정한 뒤 능 주변과 진입로에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를 심고 능원과 산직을 두어 관리했다. 광릉에 당시의 나무가 살아남은 것은 없다. 현재 가장 오래된 활엽수는 졸참나무로 수령 200년 직경 113㎝이다. 침엽수 가운데는 전나무가 직경 120㎝, 수고 41m로 가장 크다. 광릉 숲을 가로지르는 지방도로 383호선 길가에 있는 전나무도 직경 70~90㎝의 거목이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의 시기는 광릉 숲의 최대 시련기였다. 풀 뿌리까지 캐 땔감으로 쓰던 시절이었고 도벌이 횡행했다. 임업연구원(현 산림과학원)이 2003년 펴낸 [광릉시험림 90년사]를 보면, 1965년 광릉출장소의 주 임무는 도벌꾼으로부터 나무를 지키는 일이었고, 초막을 짓거나 잠복 근무를 하면서 지켰는데도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도벌꾼과 폭력배가 임업시헙장 안에 쳐들어와 난동을 부리는 일도 있었다.
 
1930년대까지 천연림이 90%를 차지하던 광릉 숲은 1960~70년대 솔잎혹파리가 창궐하면서 소나무가 대부분 고사해 그 자리에 리기다소나무, 잣나무, 낙엽송을 심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뒤엔 인근 군부대가 숲 115㏊를 군사시설 터로 내놓으라고 해 빼앗기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휴양지로 숲을 이용하고 개발하려는 욕구가 새로운 위협으로 떠올랐다. 1989년 시험림 일부가 산림욕장으로 개방됐고 수목원, 산림박물관, 야생동물원이 개장됐다. 관람객이 몰리면서 광릉 숲 주변에 식당, 노래방, 놀이동산, 술집 등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마침내 1997년 광릉 숲 보전 종합대책에 따라 산림욕장과 동물원이 폐쇄되고 수목원의 예약제와 관람 인원 제한 조처가 시행됐다. 국립수목원은 1999년 광릉 숲의 절반 면적을 관할하면서 독립했고, 나머지 숲은 현재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산기술연구소가 관리하고 있다.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현황도. 붉은 부분이 소리봉과 죽엽산을 중심으로 한 천연활엽수림 ‘광릉’이란 접두어를 가진 식물과 광릉에서 처음 발견돼 학계에 보고된 식물이 10종에 이른다. ‘광릉’으로 시작하는 식물로는 광릉요강꽃을 비롯해 광릉골무꽃, 광릉물푸레나무, 광릉제비꽃, 광릉개고사리 등이 있다. 광릉에서 처음 발견돼 학계에 보고됐기 때문이다. 이 식물의 고향이 광릉이라고 할 수 있다. 광릉이란 이름이 붙지는 않지만 광릉에서 처음 발견된 식물도 적지 않다. 노랑앉은부채, 개싹눈바꽃, 털음나무, 흰진달래, 털사시나무 등이 그런 예이다. 이들 식물은 나중에 광릉 이외의 장소에서도 자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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