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앞가림하고, 어울려 사는 힘 기르는 게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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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앞가림하고, 어울려 사는 힘 기르는 게 교육”
  • 송은숙
  • 승인 2012.11.10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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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뚱이어린이도서관, 공동체 시민아카데미-윤구병 대표 강연


취재:송은숙 기자

“교육이 스스로 앞가림할 줄 아는 사람, 함께 어울려 사는 사람을 목표로 가르쳐야 한다. 어떻게 길러줄 것인지 계속 연구하고, 이 힘을 길러주는 데 모든 힘을 다해야 한다. 과연 학교에서 그렇게 하고 있느냐?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느냐? 공동체에 대한 꿈을 꾸는 것도 사람은 누구나 혼자서는 못 살고 도와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길은 사람마다 지름길이 다르다. 그런데 현실은, 교육은 정답이 하나인 것처럼 속이고 있다. 좋은 대학 나와야 좋은 직장 가고, 그래야만 행복한 것처럼 속이고 있다. 정말 그런가?”

도시에서 ‘마을’을 만들고, ‘공동체’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는 가운데 윤구병 변산공동체 대표가 연수구 청학동 짱뚱이어린이도서관(관장 문은현)에서 열린 ‘공동체 시민아카데미 2강-가난하지만 행복하게’ 강연에서 던진 질문들이다. 이날 그는 변산공동체 이야기, 그리고 교육에 대한 철학을 풀어 놓았다.

짱뚱이어린이도서관이 연구수청 후원으로 마련한 이 강좌는 9일 오전, 주민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도서관 2층 늘푸른교실에서 열렸다.

먼저 문은현 관장은 “도서관을 통해 지역이 함께하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라며 참가자들에게 짱뚱이어린이도서관을 간단히 알린 다음 윤구병 대표를 소개했다.

‘농부철학자’로 유명한 윤구병 변산공동체학교·보리출판사 대표는 서울대 철학과를 대학원까지 마치고 충북대 교수가 됐다. 하지만 15년 만에 돌연 대학을 그만두고 1995년부터 전북 부안에서 변산공동체학교를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 유기농 식당인 ‘문턱 없는 밥집’, 재단법인 민족의학연구원 등도 보리출판사 수익금으로 그가 벌인 일들이다.

이날 칠순의 농부철학자는 자신의 이름이 ‘구병’인 이유부터 소개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비롯해 변산공동체학교, 그리고 우리 교육과 공동체 이야기를 시종일관 웃음으로 이어갔다.

문은현 관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아홉형제의 막내로 태어나다

위로 ‘일병’부터 ‘팔병’까지 형이 여덟인 9형제의 막내이다. 아홉 ‘구’에 ‘병’자 항렬이라서 ‘구병’이 됐다.

7살 때 서울에 올라오니 ‘서울사투리’를 못 알아들어 1년간 도맡아 빵점이었다. 내가 빵점인 동안 적어도 다른 아이들은 꼴등을 면해 행복했을 거다. 자녀 성적이 나쁘다고 절대 비관하지 마라. 엉뚱한 사투리 쓰는 사람들 사이에 섞이면 말을 못해서 성적이 나쁠 수 있고, 교과서에 바라는 게 없어서 빵점을 맞을 수도 있다.

딱 두 번 빵점 아닌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한번은 35점, 다른 한번은 17점 맞아 형들에게 자랑을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까막눈이라 나에게 한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안 해서 정말 좋았다.

그런데 한국전쟁을 전후한 혼란 속에 통일된 세상을 꿈꾸던 형들 중 여섯이 죽었다. 이때 아버지가 ‘사회주의가 무서운 것이구나. 나머지 자식들도 다 잃겠다’ 싶어 서울에서 전남 함평으로 다시 낙향했다.

초등 4년 학교 못 간 덕분에 ‘자유로운 사람’

아버지 따라 다시 시골에 가서는 4년 동안 초등학교를 못 다녔다. 남은 자식들은 일자무식 농투산이를 만들기를 작정한 아버지랑 모 심고 김을 매고, 어머니랑 쑥 캐고 그렇게 다녔다. 어려서부터 하도 해서 쑥 캐기 달인이다. 당시는 어디나 농약, 제초제 안 하고 친환경농사이던 시대이고, 먹을 게 부족해 캔 쑥을 보리가루와 섞은 버무리로 배를 채우던 시대이다.

6.25 전쟁이 끝나고 1955년, 하도 흉년이 들어 쑥버무리 먹기도 어렵고 왕겨, 소나무 속껍질을 먹었다. 온몸의 지방이 죄다 빠져 엑스레이로 보지 않아도 뼈대가 보이는 모습을 상상해 봐라. 몸은 비쩍 마르고 아랫배만 불룩 나온다.

많이들 잊어버렸는데 위를 우리말로 ‘양’, 창자를 ‘애’라고 한다. 그래서 ‘애가 끊어진다’는 말도 있다. 왕겨, 소나무속껍질 같은 것만 먹으면 섬유질 때문에 어려서 똥 누면 피가 묻어나오던 기억이 난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은 은유가 아니라 직유이다. 이런 문제가 나중에는 아마 수능에 나올지도 모른다.

허천병에 걸려 오래 고생한 적도 있다. 평소에는 하도 못 먹으니 먹을 게 생기면 계속 더 먹고 싶어 게워내면서 먹는 ‘가상허기증’이 돼버렸다.

형편이 이러니 어머니, 아버지가 ‘밥술이나 먹는 동네에 머슴으로 보내면 내가 살지 않을까’ 해서 나를 보냈다. 그런데 어찌나 아끼는 집인지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큰형수 사돈네 꼴머슴으로 나를 보냈다. 남의 집 가면 눈칫밥을 먹어야 하니 그때는 정말 섭섭했다. ‘형들은 안 보내고 왜 나만 보낼까?’ 싶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나를 살리려고 그랬는데,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초등학교 4학년까지 학교를 제대로 못 다녔는데 한번도 후회를 안 했다. 덕분에 스스로 삶의 시간을 통제하며 자유롭게 살아서, 산과 들과 바다를 뛰어다니고 놀아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이 됐다.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게 바로 자율성이다. 무식한 어머니가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아버지가 자식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공부를 안 가르치기로 작정하니 나도 모르게 삶을 통제하는 법을 익혔다.

도시촌놈들이 하도 몰라 ‘강아지풀’이라는 책을 만들기도 했는데, 강아지풀을 봐라. 풀씨가 떨어지면 누가 간섭해서 싹 틔우고, 꽃 피우고, 열매 맺는 것이 아니라 다 저절로 한다. 자기 삶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그렇게 작은 생명체도 자기 삶의 시간 을 통제하는 법을 안다. 이것이 생명력의 근원이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선생님이 계속 잔소리를 하면 이 생명력이 없어져 버린다.

나무를 베어낼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든다

다시 보리출판사 대표를 하고 있는데, 보리출판사가 벌써 25년이 됐다. 그런데 지금까지 낸 책이 300종이 안 된다. 중견 출판사가 한 해 내는 책이 500종이 넘는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적다. 처음부터 책을 낼 때 나무 한 그루 베어낼 가치 있는 것을 내자 생각했다.

나무와 사람은 어떤 관계이냐? 목숨을 주고받는 관계이다. 우리가 내쉬는 숨을 나무가 마시고, 나무가 내쉬는 산소를 받아 우리가 몸을 놀린다.

세밀화가 이태수 선생이 강아지풀 그리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있다. 들판에 가서 스케치를 하면 강아지풀이 흔들리니 세밀하게 그릴 수가 없다. 강아지풀을 떠와서 화분에 심어놓고 그린다. 강아지풀이 며칠 지나면 시들시들해지는데, 다시 들판에 심어주고 물을 준다. 이렇게 강아지풀 하나 그리는데 3주 이상 걸리는 걸 봤다. 노모를 모시면서 그리니 생활비랑 따져보니 3백만원은 들더라. 중견화가들이 그린 대형 그림도 백여만원에 불과할 때 보리가 그런 일을 했다. 4년간 4억 이상 돈을 들여 식물도감이 나왔을 때, 다행히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에게 크게 사랑받는 책이 됐다.

국어사전은 7년 반 동안 20억을 들여 만들었다. 고은 씨는 이걸 보고 세계 어디에도 없는 사전이라고 칭찬했다. 이렇게 더디게 한권씩 만들다 보니 종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보리 수익금으로 변산공동체와 민족의학연구원, 문턱 없는 밥집 운영

문제는 동네서점이 모두 문을 닫으니 공들여 낸 책들을 독자들이 직접 눈으로 책을 확인하고 살 길이 없어졌다. 동네서점, 어린이책 전문서점이 있을 때는 보리의 책들이 다른 책과 다르다는 걸 보고 사갔다. 그리고 그 이익으로 변산공동체에서 초·중·고 무상교육을 하고 민족의학연구원, 문턱 없는 밥집도 운영해 왔다.

민족의학연구원은 ‘약 안 쓰고 병 고치기’, ‘ 손 주물러 병 고치기’, ‘ 발 주물러 병 고치기’ 등 5권의 책을 냈다. 재단법인으로 출발하는 데는 우여곡절이 아주 많았다. ‘문턱 없는 밥집’을 하는 것은 도시에서 노동자와 빈민이 가장 힘든 삶을 사니 가장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

강의를 하는 이 공간도 그런 의미에서 생겨난 곳으로 알고 있다. 지향하는 것도 변산공동체나 보리가 지향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여겨 즐거운 마음으로 왔다.

그런데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라는 주제인데, 지금 나는 안 가난하다. 나이가 칠십이니 여기서 이야기하다 죽어도 ‘자연사’로 보는 나이이다. 죽을 날이 오늘, 내일인데도 봉급도 받고 있고, 통장에 몇 천만원도 있다. 그 제목으로 책을 냈기 때문에 아마 그런 것 같은데, ‘왜 우리는 함께 어우러져서 살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작은도서관인 짱뚱이어린이도서관의 모습.

스스로 앞가림하고, 함께 어울려 사는 사람 기르는 게 교육

자녀가 어린 분들은, 오늘 교육전문가가 강의를 했다면 여기에 더 많은 이들이 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더 자녀들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더 많이 말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교육을 해왔는데 궁극적인 목표는 두 가지이다. 스스로 앞가림할 줄 아는 사람, 함께 어울려 사는 사람을 목표로 가르쳐야 한다.

한 개체로서는 영원할 수가 없고, 세대가 이어지도록 하려면 스스로 제 앞가림할 힘을 길러줘야 한다. 우선은 살아남는 데 필요한 먹고 입고 잠자리 마련하는 것을 제 힘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제도교육이 그 몫을 하고 있느냐?

또한 저마다 주고받아야 살 수 있게 태어났으니, 서로 도우면서 살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게 두 번째 목표이다. 이 두 가지 외의 나머지는 다 곁가지이다.

그럼 어떻게 길러줄 것이냐에 대해 계속 연구하고, 이 힘을 길러주는 데 모든 힘을 다해야 한다. 과연 학교에서 그렇게 하고 있느냐?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느냐? 우리가 공동체에 대한 꿈을 꾸는 것도 사람은 혼자서서는 못 살고 도와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공부도, 인생도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지금은 내가 말을 쉽게 하지만 15년 동안 대학에서 철학교수 하며 어려운 말로 밥 먹고 살던 사람이다. 얼굴 생김이나 하는 말로 봐서는 안 믿길지 모르지만 내가 유식한 사람이다. 서울대 석·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존재론을 강의했다. ‘존재’는 ‘있다’는 것이고, ‘무’는 ‘없다’이다. 하지만 대부분 존재, 무라는 말을 1주일에 한 번도 안 쓰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있다/ 없다’와 ‘이다/아니다’라는 말을 빼고는 단 5분이라도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1년간 서울대 석·박사에서 ‘있다/ 없다’와 ‘이다/아니다’로 강의해도 알아듣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요즘 아이들 머릿속에는 어려운 생각들이 참 많다. 또 어렵게 이야기를 해야 철학선생으로 본다.

내가 선생으로서 성공하는 길은 아이들 머릿속에 잔뜩 가진 어려운 말과 생각을 지워버리는 ‘지우개’를 하나 마련하고, 그 다음에 뭉게뭉게 의심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정답이 뭐예요?”그것만 묻는다. 이 정답, 즉 정답이 하나뿐이라는 것은 제도교육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산이 하나 있으면 정상까지 올라가는 지름길을 찾는다고 하자. 정상까지 자로 그어보면 그게 지름길이 아니고 올라가봐야 지름길을 알 수 있다. 개울이 있으면 낮은 곳으로 돌아가거나 다리를 찾아 가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꼭대기로 올라가는 길은 사람마다 지름길이 다르다. 현실은 그런데 정답이 하나인 것처럼 속이고 있다. 좋은 대학 나와야 좋은 직장 가고, 그래야만 행복한 것처럼 속이고 있다. 정말 그런가?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순간순간 누리는 것이다. 어려서 엄마가 목이 터져라 “밥 먹어라” 하고 부르는데도 못 듣고 놀았던 경험이 있느냐? 그럼 아이들에게 그런 행복한 시간을 주고 있느냐?

'없을 것'이 있는지 보고, '있을 것'은 길러가야

우리는 아이들이 참되기를 바란다. 거짓말을 자꾸 하게 되면, 나중에는 맘에 있는 말을 하아무도 못 하게 된다. 그럼 아이들이 거짓말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좋은 방법이 뭘까? 바로 혼내지 않고, 두려움에 떨지 않게 하는 그것이다.

아이들은 쓸데없는 말은 절대 안 한다. 떼쓰고 울 때도 잘 들어보면 다 자기에게 필요한 말만 한다. 녹음해서 한번 들어봐라. 하지만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말은 열에 아홉은 쓸데없는 말이다. 아이들이 하려는 말을 가로막고 자기 말만 하면 아이들이 거짓말쟁이가 될 수밖에 없다.

참말을 해야 믿음이 쌓여 이야기를 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 어떨 때 참말이고 거짓말이라고 하나? 있는 것을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게 참말이다. 그래서 ‘있다/없다’와 ‘~이다/아니다’가 중요하다.

‘선’과 ‘악’은 무엇일까? 질문 자체가 틀렸다. 우리말로는 선은 ‘좋다’, 악은 ‘나쁘다’이니 ‘좋다/나쁘다’를 알아야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 좋은 세상에는 전쟁, 공포, 억압, 착취, 탐욕, 이기심 이런 것들이 없겠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에는 있다. 이것을 없애고, 아이들이 없앨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좋은 세상이 온다. 자유와 평화, 평등, 사랑, 관용, 우애 이런 것은 좋은 세상에 있을 것이다. 없는 것은 있게 해야 한다.

없을 것이 있으면 교육이, 그것을 보는 비판적인 시각을 길러줘야 한다. 있을 것이 없으면 그것을 기르거나 만들어주는 창의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제도교육에서는 정답이 하나라고 가르치니, 이것이 어렵다.

‘동기’ 있을 때 공부도, 일도 잘 된다

도시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려는 이들의 열망이 늘고 있다. 도시에서 주체적으로, 자율적으로 살고 있고 대단히 만족한다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이들은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도시에 살게 되고, 모든 것들이 다른 이들이 마련한 스케줄에 의해서 계속 통제받고 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식조차 없다면 맹탕이다.

자율적으로 자기 삶의 시간을 통제할 때 집중력이 생기고, 행복감이 찾아온다. 어른들은 일할 마음, 아이들은 공부할 마음이 생긴다. 이이들에게 아무리 공부하라고 말해도 소용없다. 스스로 느껴야 공부를 한다.

초등학교 4년 못 다녔다는 이야기는 했는데, 중3 때도 학년 말 시험 앞두고 가출했다. 고등학교 때는 가출을 밥 먹듯이 했다. 내가 12살 때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다행히 좋은 아버지를 만났다. 가출해서 집에 돌아올 때마다 아버지는 평소 학교 다녀올 때처럼 “잘 다녀왔냐?”며 똑같이 인사를 받았다. 궁금하고, 혼내고 싶을 텐데도 아무런 말도 묻지 않으셨다.

고등학교 때는 머리 깎으려고 예산 수덕사에 갔다가 ‘졸업이나 하고 오라’고 혼이 났다. 동해안을 돌아다니다 학교에 가니 교장선생님이 “다른 애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니 집에 가면 나중에 졸업장은 보내겠다”고 하셨다.

학교에서 잘려 집에서 어슬렁대자, 아버지가 사진이나 한 장 찍자 하셨다. 나는 형이 제대할 때 입었던 군복을 입고, 아버지는 허름한 옷 입고 찍었는데 사진에 한자를 쓰셨다. 나중에 옥편을 찾아보니 ‘마지막 남은 실오라기’라는 뜻이었다. 그때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정답이 하나뿐이니, 우리나라 교과서로 공부하기가 제일 쉽지 않은가. 아이들도 뭔가 ‘동기’만 생기면 집중하는 힘이 커진다.

공부뿐 아니라 손발, 몸 놀리는 시간 늘려야

변산공동체학교 아이들 이야기를 해보자. 1995년에 시작했으니 벌써 15년이 됐다. 변산공동체에 처녀, 총각으로 들어온 이들이 눈이 맞고 배가 맞아 생긴 ‘바다’라는 아이가 있다. 중2 과정에 다니는데, 언젠가 보니 도서관에서 두꺼운 ‘백제사’ 책을 있는 것을 봤다. 이해 못 하는 것이 많지만 재미있다고 해서 놀랐다.

변산에서는 학과수업은 오전에만 하루 3시간미만으로 가르치고, 오후에는 몸을 놀린다. 산살림, 들살림, 갯살림을 익힌다. 가스가마와 장작불가마 2개를 마련해 아이들이 빚은 도자기를 굽는다. 선생님에게 목공을 열심히 배우고 천연염색을 배워 옷감에 물도 들이는 등 손발을 놀리고, 몸을 놀리는 시간이 많다. 도서관에는 좋은 책을 많이 두고 시설도 좋다.

아이들이 딱딱한 의자에 10시간이고 12시간 앉아 있으면 좀비가 되고, 강시가 된다. 이런 교육은 머리만 굴려서 살라는 것이다. 물론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은 옛날에도 있었고 지금도 10명에 한두 명은 필요하다.

손발 놀리고, 몸 놀리는 사람들이 있어야 우리 밥상에 밥이 올라온다.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는 5년도 안 돼 식량난이 온다. 내가 죽고 나면 부득이하게 우리 아이들 가운데 농촌으로 가서 농사지어야 한다.

세상이 이상해져 시골은 나 같은 노인만 있고, 나도 시골에서는 청년에 속해 감히 경로당에도 못 간다. 현재가 늘 충만하고 행복해야 하는데 여러분들은 불안하다. 자녀인 미래세대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깜깜하다. 변화 폭이 이렇게 큰 세상인데,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지식으로는 앞으로 헤쳐 나갈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우리는 정답이 하나뿐이라는 그릇된 신화를 사실로 알고 받아들였다. 나도 그 신화를 퍼뜨리는 데 15년 동안 일조한 사람이다.

변산공동체 15년 실험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변산공동체에서 하루 3시간만 공부한다니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라도 들어가겠느냐’는 말들이 많았다. 이 말이 듣기 싫어서 중학교 1년을 보낸 아이들이 2학년 올라가기 전 겨울방학에 검정고시 준비를 하도록 했다. 우리나라 제일 좋은 시험이 검정고시다. 다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인데, 이것은 붙이기 위한 시험이다

그런데 한 아이가 검정고시를 진짜 보고 싶다고 해서 우르르 5명 아이가 다음해 4월, 시험을 봤다. 그랬더니 모두 합격하고, 불행하게도 한 명은 전북에서 성적이 가장 좋았다.

이렇게 되니 부모들이 생태교육을 하고, 자기 앞가림하는 데 덧붙여 영재교육이 되는구나 싶어 욕심을 냈다. 오전수업을 1시간 더 늘리자고 요구해, 12시에 먹던 점심시간을 오후 1시로 늦추고 수업을 했다.

이때부터 재난이 시작됐다. 3시간 공부하면 한창 쇠라도 녹일 나이인 아이들이 12시에 점심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늦어지니 뱃속이 요동을 치고, 아이들의 집중력이 다 달아났다.

엄마들도 하루 3시간만 책상 앞에서 공부를 해보면 안다. 머리가 멍하고 아무것도 집중이 안 된다. 아이 집중력을 키우려면 하루 3시간 이상 앉히지 말고, 학교에도 이걸 요구해라. 차라리 도서관에 좋은 책 많이 두고 원하는 공부를 하게 해달라고 해라.

대안학교에서 새로운 교육을 시도하고 제도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 제도권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으니, 학교가 좋아져야 아이들의 미래가 좋아진다. 제도권 학교교육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힘을 가진 게 바로 학부모이다. 학교 텃밭도 만들자고 하고 학교에 빈 교실들이 많으니 운영위원회 등에 참여해서 연극, 풍물, 탈춤 등 서로 도우면서 성과를 내는 것들을 아이들이 배울 수 있게 해라.

학교별, 동네별, 아파트별로 엄마들이 연대하면 된다. 처음에는 아주 작게 시작된다. 여러 가족이 모여 주먹밥 싸들고 엄마, 아빠들이 교대로 데리고 산으로, 들로 데리고 나가는 것이다. 다른 생명체와 만나는 순간순간이 교육이다.

더 궁금한 것은 변산공동체학교에 놀러오면 직접 빚은 막걸리를 마시면서 이야기하자. 3박4일 머무르면서 공동체 생활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3~11월에 진행된다.

청학동 마을기업 '언니네'에서 마련한 비빔밥 완성~
점심시간에 윤구병 대표가 책에 사인을 하고 있다.

2시간 반 가까이 진행됐다. 이후에는 윤구병 대표가 책에 사인을 하는 시간이 이어졌고, 청학동 마을기업인 ‘언니네 반찬’에서 만든 비빔밥이 점심으로 나왔다.

이날 강의는 짱뚱이어린이서관에서 ‘연수구 행복마을만들기 지원사업’에 선정돼 진행하는 마을만들기 사업의 하나이다. 지난 10월 12일에는 박재동 만화가가 '도시에서 마을을 상상하는 10가지 방법' 이라는 주제로 첫 강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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