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우물에 고요히 흩어져 있는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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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우물에 고요히 흩어져 있는 기록들'
  • 강영희 시민기자
  • 승인 2013.07.05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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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공간 배다리, 유광식 사진전 7월5~17일
 
 
 대우자동차 영상패 활동을 하던 글쓴이의 영상작업에 스승인 이춘상 선생의 집이 십정동에 있어서 종종 갔었다.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 작은 집에 유난히 컷던 선생의 두 아들 하늘이와 바다. 그리고 늦둥이 막내 한별이가 엄마손을 잡고 튀어나오던 그곳을 아직도 기억한다.
 
 요즘은 '희망을 찾는 마을사람들' '가좌마을지오그래픽' 사진 수업을 가면서 지나간다. 버스로 두어 정거장에 속하는 그리 넓지 않는 곳이다. 개발이 되네, 안되네 하는 말이 오랜동안 들렸다. 배다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고, 송림동과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곳에 흩어진 기록들이라니.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유광수작가의 초대의 글>
 
인천에는 열우물(부평구 십정1동 일대)이라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습니다. 특이사항이 그닥 있는 건 아니지만 과거 주안염전의 노동자, 옛 인천대 부지에서 밀려난 철거민, 부랑아, 피난민 등이 한데 섞여 살던 동네입니다.
 
못 먹던 시절엔 다 그랬듯 그늘지고 패인 공동묘지 옆에 판자로 지은 집의 윤곽이 오늘날의 작은 마을이 되었습니다. 요즘 같은 여름날씨에도 지붕이 녹아내릴듯 위태롭게 많은 어르신들이 지내고 있지요.  마을을 안 지 5년이 되었고 사진을 찍어 담아 두었던 것들을 이번에 다소 꺼내 봅니다.
 
전시는 그 안의 발걸음을 위로하고 숨을 고르는 자리입니다. 마을의 풍경 및 인터뷰 자료로 구성해 보았고 시원한 음료 한 잔 준비할 작정입니다. 굳이 시간을 쪼개어 전시장에 나타나 주신다면 큰 고마움입니다. 
 
 
유광식 열우물.jpg
 
 
 
<작가노트 중에서>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다. 깊은 밤, 살구 나무를 지나 대나무 숲 안으로 푹 패인 커다란 웅덩이 정중앙에 서 있던 꿈을 꾼 적이 있다. 꼼짝도 할 수 없었던 상황에 그때 나이로 두려움이 컸다.
 
그렇게 간혹 30년 전 성장의 정서를 되새겨 보게 되는데, 조금은 다르지만 언덕 너머로 펼쳐진 열우물 마을(인천 부평구 십정동 216번지 일대)이 처음 그랬다. 길을 잘 못 들었단 생각은 금방 사라지면서 허름한 작은 집들이 숨 쉴 공간도 없이 빼곡하게 위태로움이 컸으나 움푹 패인 공간에서 내뿜는 따뜻한 온도가 좋았다.
 
인천을 산책하다 만난 이 마을 또한 겉으로의 따뜻한 모습 뒤로 차가운 현실이 산적해 있었지만 내게는 마주하는 모든게 찬란하다. 인천은 과도한 변태의 과정 속에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숨겨져야 할 곳들이 지정되고, 주민의 의사가 분명 중요하지만 그럴 시간도 없이 표면적인 변모가 매우 안타까운 소식으로 전해진다.
 
처음 열우물은 조용한 동네로 보였으나 이후 속살은 시끄럽고 불안했다. 그럼에도 평온하고 싸한 느낌이 좋았던지 5년 전부터 자주 거닐게 되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모퉁이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긴장, 따뜻한 볕은 유년 시절 내가 노닐던 장소 조건과 중첩 되었고, 그러면서 어쩌면 소소함, 하찮음 자체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강제적 소멸로 치닫고 있는게 아닌지에 우려도 컸다.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위태로움은 사방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위태로움이 내게는 기록이 되었지만 말이다. 밥상 하나에 둘러 앉은 그 시간만큼이라도 지켜주고 싶은 심정으로 도시공간의 차분한 몽타주 작업은 그렇게 이어진다.
 
 
유광식 열우물1-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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