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球都) 인천’ - 한국 야구의 발상지(發祥地) -> 인천야구사 등 보고 보완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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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球都) 인천’ - 한국 야구의 발상지(發祥地) -> 인천야구사 등 보고 보완요청
  • 배영수 기자
  • 승인 2014.11.09 2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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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의 원조’ 인천의 야구 인프라를 위한 전국 팬들의 의견 1.

올해 SK와이번스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 후 모습. ⓒSK와이번스

길고 길었던 올해 프로야구. 인천 팬들은 아쉽게도 연고팀인 SK와이번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응원전을 일찍 마감했다(현재는 삼성과 넥센의 한국시리즈가 소위 세트 스코어 2:2로 백중세). 이후 감독은 이만수씨에서 김용희씨로 바뀌었고, 지금도 인천 야구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김성근 전 SK 감독은 한화 감독으로 부임해 이제 내년부터는 ‘적장’의 위치에서 만나야 한다. 구단 입장에서는 최정과 김강민 등 FA도 잡아야 하고 해외진출을 선언한 김광현의 공백도 메워야 하는 험난한 과제들을 안고 있다. 더 이상 SK 와이번스가 강팀으로 불릴 수는 없을 거라는 게 야구 전문가와 팬들의 공통된 생각이기도 했다.

인천은 야구가 꽤 인기 있는 도시 중 하나다. 워낙 다양한 시/도에서 온 사람들이 지금의 인천을 구성하고 있기에 다른 도시에 비해 연고 팀이 지역민들의 전폭적인 응원을 받진 못하는 듯 보이지만, 어느 팀을 응원하든 문학구장은 어느 순간부터 주말이 꽤 혼잡한 야구장이 됐다. 여기서 인천과 부산의 야구 팬 대부분이 사전에도 없는 ‘구도(球都)’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를 영어로 하면 ‘The City of Baseball’ 정도 될 것 같은데, 혹자에 따라서는 야구의 원조 도시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런 부분 때문에 간혹 인천과 부산의 야구팬들 사이에 묘한 갈등이 현실화되는 모습도 있었다. 응원으로 과격한 롯데 자이언츠의 팬들이 인천에서 SK와이번스와 포스트시즌을 치를 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패배하자 귀가하는 SK의 팬들에게 시비를 걸고 주먹다짐이 일어난 적도 있었는데 이 역시 야구와 관련해 “저 도시에만큼은...”이라는 일종의 ‘자존심’을 빼앗기지 않고 싶은 마음이었을 터. 기자는 SK와이번스의 팬들을 인천 야구팬으로, 롯데자이언츠의 팬들을 부산 야구팬으로 나누고, 삼성라이온스와 한화이글스, LG트윈스 등의 팬들을 중립으로 전제하고 이들의 의견을 받아 총 두 편으로 기사를 구성해 봤다.
 

YMCA 야구단의 경기 사진 모습 (출처=짠물야구)

① 인천은 야구 역사의 출발, 그러나 타 팀 팬들 잘 모른다

한국어 위키피디아는 한국 야구 역사에 대해 1905년 선교사로 온 미국인 질레트(P. L. Gillett)가 황성기독교청년회(현 YMCA)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친 것을 시작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사실과 다른 설명으로서 이곳 인천서 3대 이상을 보낸 집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1899년에 이미 야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이미 인천영어야학회(현 영화초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야구 경기를 즐기고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당시 이 학교를 다니던 일본인 학생 후지야마 후지사와의 경기 기록은 ‘한국야구사’에 이미 소개된 내용으로서, 위키피디아의 설명은 ‘기사’로 치면 ‘명백한 오보’인 것이다(“베이스볼이라는 서양 공치기를 했다”는 빼도 박도 못하게 남아있는 기록은 이를 보기 좋게 증명한다.).

한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야구의 원조는 영화로도 나온 YMCA(황성기독청년회-질레트 선교사가 야구를 가르친 곳)가 원조로 알고 있어서 인천 역시 야구의 원조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는데 실제 부산 팬들 대부분은 영어야학회에서 아이들이 즐긴 야구 경기의 기록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질레트 선교사의 것을 원조로 알고 있고, 그래서 인천을 야구의 원조 도시로 보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이에 대해 SK와이번스 팬 강모씨(35)는 “위키피디아 및 기타 인터넷 자료에 대해 인천시가 정정 요청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1950년대 인천고등학교 야구부 (출처=짠물야구)

* 어떤 야구팬이라도 ‘야구도시 인천’의 위대함 알아야

야구가 태동된 도시를 ‘인천’으로 명확히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들은 더 있다. 단어의 정확한 탄생 근원은 정확하지 않으나 일부 인천 팬들이 써온 “우리 고장이 진정한 야구 도시”라며 사용한 ‘구도’라는 단어를 어느새 부산이 가져감으로서 일부 부산 야구팬들은 자신의 도시가 야구가 태동된 도시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온라인을 통해 롯데자이언츠가 인기 구단으로 부상하면서 롯데 팬들은 일부 인천 팬들이 사용하던 ‘구도’라는 말을 하며 이 과정에서 팬들 일부가 야구의 원조도시를 부산으로 오인하고 그리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인천의 지역 야구팬들과 야구 관계자들이 19세기 말엽 인천에서의 야구 기록을 증명하자 롯데자이언츠 팬들 일부는 “‘구도’라는 단어는 현재 야구에 가장 열성적인 고장에게 명명되는 것이 맞다”며 “언제라도 새로운 ‘구도’의 탄생은 가능하다”며 슬쩍 말을 바꾸는 자세로 전환하는 모습도 보였다.

다만 부산 야구팬들 중에서도 기록이 있는 사실은 사실로서 봐야 한다며 인정을 하는 분위기도 있다. 롯데자이언츠 팬 박영수(38)씨는 “지금처럼 비닐 쓰고 ‘아주라(파울 구역에 공이 날아왔을 경우 어른이 갖지 말고 아이들 주라는 뜻을 사투리로 표현하는 롯데의 응원문화)’ 같은 구호를 외치는 역사는 의외로 오래된 것이 아니다”라며 “최근의 분위기 때문에 부산을 야구 원조로 생각한다면 지나친 야구 사랑이 낳은 극성밖에는 안 되며, 엄연한 기록들이 남아있는 만큼 인천이 야구가 태동된 최초의 도시임은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음악평론가이자 SK와이번스 팬인 김성환씨는 “YMCA야구단으로 보든, 영어야학회로 보든 그 출발점에 서울과 가까운 위치에 있던 인천이 출발점임은 명백한 사실이며 기록”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 씨는 “1947년 처음 열린 4대도시 대항 전국 야구대회에서 인천 대표 야구팀 인천군(仁川軍) 팀이 압도적 우승을 차지했으며 1950년대엔 인천고와 동산고가 서울에서 열리는 결승전에서 서로 맞붙을 만큼 명문 고교 야구팀의 면모를 보였다는 것은 당시 인천의 야구 인프라가 얼마나 탄탄했던가를 증명하는 것”이라며 진정한 구도는 인천임을 명백히 했다, 그는 이어 “이에 비해 부산이 구도로서의 역사적 기록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만큼 부산 시민들이 만약 현재의 열성으로만 과거의 역사를 재단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심각한 오류”라고 밝혔다.
 

1950년대 동산고등학교의 우승 장면으로 알려져 있는 사진 (출처=짠물야구)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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