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학교 폭력과 왕따 - 윤성현 감독 영화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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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학교 폭력과 왕따 - 윤성현 감독 영화 [파수꾼]
  • 이한수 선생님
  • 승인 2014.11.2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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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선생님의 교실밖 감성교육] 4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학생들 사이의 위계질서에 관한 청소년의 심리적 아픔을 이보다 더 잘 그려낸 작품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폭력 가해자가 얼마나 비인간화 되는지 아주 설득력 있게 보여준 영화로 [똥파리]가 있는데 이 영화는 학교 이야기가 아니고 스토리가 좀 끔찍한 편이라 청소년이 보기에는 부적절해 보입니다. [파수꾼]은 학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장면으로만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등장인물이 모두 학생이라 청소년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성장기 폭력 이야기의 고전은 아무래도 [우상의 눈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상국의 이 작품은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소설은 시대를 풍자하기 위해 청소년의 폭력을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였을 뿐 성장기 폭력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 [아홉살 인생]이나 영화 [우리 형]도 성장기의 폭력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긴 하지만 폭력의 정신 심리적 문제에 집중한 작품은 아닙니다. 폭력 장면이 많은 느와르(폭력 액션 장르)는 모방 심리를 부추길 수 있어 청소년에게 나쁜 영항을 끼칠 수 있어 작품 선정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데 [파수꾼]은 흥행을 위해 자극적인 장면을 함부로 노출시키는 상업 영화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폭력을 동반하는 성장기 청소년의 심리적 고통을 참 잘 그려냈습니다.
 
영화 [파수꾼]은 학교 폭력을 성장기 청소년의 자아 정체성 문제로 접근하고 있으며 학교에서의 소외 문제를 정확하게 그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수꾼]이 주목한 점은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 학생이 실상은 가장 불안한 심리 상태에 놓여 있으며 피해 학생보다 더 돌봄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폭력은 심리적 상처, 트라우마를 감당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 방식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가해 학생은 불우한 가정에서 비롯된 듯한 소외감을 극복하기 위해 폭력을 동반한 위계질서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똘마니를 거느리면서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똘마니들은 강한 패거리에 소속됨으로써 왕따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으니 가해자와 피해자의 공생관계가 성립됩니다. 저는 이 영화가 청소년들의 폭력과 위계에 의한 소외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을 잘 형상화 했다고 보는 것이지요.
 
학교 폭력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여러 연구들이 있긴 하지만 그 해결책에 대해서는 뾰족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폭력을 양산하는 시스템이라 어떤 방안도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다만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부인하기 힘들긴 하지만 모든 문제를 구조의 문제로 환원시키고 마는 것도 무책임하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 조건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을 모두 찾아 봐야 하지 않을까요. 영화를 이용한 교육이 효과적인 감성교육 방법이라고 두루 공감하는 만큼 청소년의 폭력 문제를 다룬 영화 중에서 주제의식이 진지하면서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는 좋은 작품을 고르는 작업은 아주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수꾼]을 교재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나누기를 기대해 봅니다. 폭력 가해자를 격리시키고 처벌하는 것으로 끝낼 게 아니라 청소년들의 심리적 고통을 들여다보고 우리 모두 약자를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일에 가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소위 왕따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베블렌 효과 (veblen effect)'라는 사회심리학 개념을 쓰는 것이 유효할 것 같습니다. '베블렌 효과'란 남들과의 차별성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심리를 말합니다. 경제학에서는 가격이 낮아질수록 오히려 수요가 줄어드는 특이한 현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유한계급(부자들)은 명품(브랜드 가치가 터무니없이 높은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신분과 지위를 과시하려는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서민들은 구매할 수 없는 엄청난 고가의 명품을 구입함으로써 자신이 귀족임을 확인하고자 하기 때문에 대중이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낮아지면 명품으로서의 효용이 사라지니 더 이상 구매를 하지 않는 것이지요. 이런 행태는 병적인 현상이라고 보기보다 아주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심리에서 비롯한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인간의 행복감은 결국 질투심에 불과하다는 심리과학의 연구 결과는 이런 행태가 대부분의 인간에게서 보이는 아주 일반적인 모습이란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다 같이 골고루 넉넉해지는 것에 대해 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며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만 특별히 넉넉해지는 것이 큰 행복감을 가져다준다는 연구 결과는 행복의 본질이 질투심이란 걸 증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블렌 효과는 특수한 계층의 삐뚤어진 의식이라기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일반적 심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남의 불행을 통해 행복감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를 참 불편하게 만들지만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왕따 현상을 철부지 아이들의 삐뚤어진 일탈로 치부해 버릴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이런 현상에 대해 보다 합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른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서열화 기제는 학력, 지위, 재산, 인맥 등등이 될 것입니다. 나이가 어리고 문화적으로 단순한 아이들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서열화는 대체로 폭력성에 근거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쉽게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행사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 듭니다. [파수꾼]은 바로 이런 차별화 기제로서의 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외되지 않기 위해 습득한 폭력이라는 생존 전략으로는 소외를 극복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근본적인 소외를 더 깊게 만들어 결국 자아를 파괴하고 만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학력과 지위, 재력으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증명 받으려는 삶의 태도는 심각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잘난 척하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려고 하는 사람은 없으니 그런 삶의 태도는 점차 자신을 외톨이로 만들어 버리겠지요. 한동안은 자기기만으로 버텨내겠지만 오래 갈 수는 없습니다. 자기기만이 깊을수록 회복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립니다. [파수꾼]의 가해자 '기태'는 '동윤'을 친구로 생각하지만 '동윤'은 살아남기 위해 똘마니 노릇을 한 것일 뿐 실은 '기태'가 만악(萬惡)의 근원이었다고 털어놓고 '기태'는 친구의 배신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고 맙니다. 자기 삶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고 믿었던 유일한 친구로부터 가장 비열한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입니다. 기태는 더 이상 삶을 끌고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파수꾼]은 폭력을 혐오하는 내가 도덕적 품성의 차별화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자기 기만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합니다. 저 어리석은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만한 자격이나 갖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성여자고등학교 이한수 선생님
블로그 http://blog.daum.net/2ha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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