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여, 연설로 끝나는 떴다방은 됐고! 행동으로 정책분양 좀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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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여, 연설로 끝나는 떴다방은 됐고! 행동으로 정책분양 좀 해줘!
  • 정대민 인천미디어시민위원회 기획정책위원장
  • 승인 2015.04.13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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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마이의 미디어로 세상헤집기> 15.

 
정확히 몇 학년 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초등학교 4,5학년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다지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대신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해서 수업 중 몰래 노트며 교과서며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림들을 잔뜩 그려댔다. 어쩌다 담임선생님께 걸리면 출석부 모서리로 머리를 맞곤 했는데 정말 아팠다. 여러 번 맞다보니 나중엔 화가 치밀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 앞에서는 찍소리 못하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수업시간에 몰래 그리는 만화는 아슬아슬하면서도 왜 그리 달콤했던지 몇 달 정도를 감내하다 한계에 이르게 되었다. 복수의 칼을 갈았고 때를 기다렸으며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반·전·체·학·급·회·의!

나는 비장한 각오로 중대발표가 있다며 손을 번쩍 들었고, 대범하게 교단으로 나아가 잠을 설쳐가며 썼던 연설문을 꺼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후 차분하게 읽어 내려갔다. “저의 장래희망은 만화가입니다...”로 시작해 훌륭한 만화가가 될 것이기에 관심이 필요하며 꼭 이루겠다는 표현도 잊지 않고 구구절절 읽어 내려가다가 마지막 포인트에서 홱 담임선생님을 돌아보며 당차게 외쳤다. “그러니, 제발 선생님! 제 머리 좀 때리지 마세요! 머리 세포가 다 죽는단 말예요!” 일순간 우리 반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선생님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선생님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셨다가 내 강렬한 눈빛에 적이 놀라는 모습이었다. 한참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허허허, 웃으시는 거였다. 흠칫, 난 당혹감에 뻣뻣이 서있으면서도 머리를 굴렸다. 혹..., 내 연설에 선생님이 감동을...?! 그럼 이제 출석부 모서리로부터 해방을...!!

흡족하게 교단을 내려와 미소 띤 얼굴로 선생님께 가볍게 목례한 후 내 자리로 돌아가는데 머리통이 번쩍 했다. 출석부 모서리가 그대로 내 뒤통수를 가격한 것이다. 그리고 터진 선생님의 일갈, “연~설하고 있네! 수업시간에 만화 그리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단박에 반 전체가 웃음바다로 변했고 난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 사건이후로 출석부 찍기신공을 펼치지 않으셨다. 결과적으로 나의 명연설이 승리한 셈이었다. 아쉽게도 훌륭한 만화가는 되지 못했지만...^^;;;

연설(演說). 사전적 의미로 대중 앞에서 자신의 사상이나 주장을 그 어떤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조리 있게 말하는 것. 한 때 국가주의적 분위기가 강하고, 남성권위가 세며 직업이 다양하지 않아 장래 꿈이 대통령 아니면 장군이라고 말하는 남자아이가 많았을 당시 웅변학원이 성행했었다. 웅변대회도 많았다. 말이 앞서는 시대였다. 물론 주변의 사람을 설득하려면 일단 말을 잘 해야 한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려면 글, 즉 문장이 먼저 바탕이 돼야하지 않을까? 그 문장에 그 사람의 철학과 사유의 과정, 주장이 진지하게 담겨져 있어야만 청중으로 하여금 공감이든 반감이든 끌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사학(修辭學)을 근간으로 하는 웅변술 즉, 말의 기술들이 발달돼 온지 모른다.

사전에 의하면 웅변술은 기원전 5세기에 남이탈리아 출신의 웅변가 코라크스, 고르기아스 등에 의해서 아테네시(市)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고 전해진다. 안티폰, 데모스테네스 등으로 불리는 아티카의 10대 웅변가가 배출되기도 했으나, 이를 완성한 사람은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한다.

그렇게 말의 기술이 개인의 자질과 합체되어 어떤 연설은 시대상을 보여주는 역사의 한 페이지이며 역사적 이슈메이커가 되기도 한다. 주로 정치지도자들의 연설이 세간의 관심을 끌어왔다. 가까운 나라의 예로 272단어와 2분 연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로 정리되는 유명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이 있고, 2011년 1월13일 미국 애리조나주 총기난사사건을 애도하며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했던 이른바 '51초의 침묵'이라는 연설도 당시의 아픔을 반영한다. 또 정말 가까운 나라의 예로 일본 일부 정치인들의 정신위안부 관련한 망언도 염장 지르고 은근슬쩍 죄를 무마하려는 속셈의 연설임을 세 살 먹은 애도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지도자들의 연설이 있지만 내 게으른 정보 범위 안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우리나라가 원하던 완전독립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은 큰 불행입니다. 허나, 기껏 일제에게 해방된 민족이 또다시 분열한다는 것은 더 큰 불행일 것입니다.”라는 연설이 아직까지 민족의 불행으로 아려오고 있고, 또 김대중 前대통령의 야당시절 의사진행방해(?)를 위한 합법적인 필리버스터(Filibuster) 연설은 무려 8시간동안 대본 없이 진행된 즉석연설로 세계최고기록에 올라있다.

거두절미하고, 여당 원내대표의 국회대표연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전문을 꼼꼼히 읽어보니 정말 마음에 쏙 들어오게 현안을 정리했다. 세월호 인양문제, 복지문제, 서민경제문제, 재벌문제 등 야당에서나 나올 연설이 번지수를 잘못 찾았나? 할 정도로 여당 원내대표로서 파격적이다. 문제는 이런 문제들을 호소력 있게 했음에도 그저 말에서 끝날까 걱정이 앞선다. 그만큼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어제오늘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벌써 여당 내에서부터 반발이 일고 시비가 붙고 있다.

의회정치를 하는 모든 나라가 그러하듯 국회는 헌법이 보장하고 권위 있는 연설과 국민에 대한 책임정치의 열띤 장이다. 그러므로 국회가 연설로만 끝나는 무슨 떴다방처럼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국민적 공감이 형성된 사안은 행동으로 나서서 정책분양을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땀 흘려가며 일해 세비 듬뿍 주시는 국민에게 부끄럽지 않게 말이다. 하여, 당쟁·정파를 떠나 여당 원내대표의 연설이 진정 실현될 수 있도록 야당이 제발, 제~발 능력을 발휘하여 힘을 보태길 기대해본다. 이상!

“말로만 떠들고 실천이 없는 것은 부끄러움이다.” -예기(禮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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