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탄잘리>에 심혈을 기울이셨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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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탄잘리>에 심혈을 기울이셨던 시인...
  • 최일화
  • 승인 2015.07.2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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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 시인을 회상하며] 최일화 / 시인

박희진 시인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은 건 지난 7월 초순이었습니다. 늘 사진으로만 뵙던 백발의 긴 수염, 시인은 1968년 내가 시골에서 서울로 처음 올라온 무렵, 서울신문회관에서 개최한 박희진 시미전이라는 이색적인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당시 나는 19살의 나이로 구경을 갔었는데 내용은 모두 잊었지만 시인의 이름만은 그때 내 마음에 각인이 되었습니다.

고향이 연천이라는 것과 고려대 영문과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가톨릭계 학교인 동성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고 있다가 한양대 교수를 하던 중 갖자기 사표를 내고 소일거리로 티브이를 보며 지낸다는 정도가 내가 아는 시인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덧붙인다면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낸다는 것과 타고르의 시집 <기탄잘리>를 우리말로 옮긴 분이라는 정도라고 할까요.  

지난 3월 31일 박희진 시인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나는 시인의 번역시집 <기탄잘리>를 인도 여행길에 가지고 갔었습니다. 인도의 동북부 산티니케탄에 3개월 머물며 나는 그 시집을 읽었습니다.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상당수의 시편을 필사하기도 했습니다. <기탄잘리>는 인도의 시성 타고르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시집입니다. 원래는 벵골어로 쓰인 것을 스스로 영역하여 서양 시인들에게 놀라운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급기야 이듬해 노벨문학상까지 안겨준 시집입니다.

산티니케탄은 타고르가 학교를 세워 교육 사업을 하고 상당량의 작품을 집필한 집필실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다섯 채의 타고르의 옛집이 있습니다. 그가 세운 학교와 박물관, 그가 기도를 드리던 사원, 그가 가꾸던 장미 정원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박희진 시인은 기탄잘리를 번역했습니다. 내가 가지고 갔던 시집은 홍성사에서 1982년 초판을 펴내어 1988년 제 13판으로 발행한 것이었습니다. 시인은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개신판을 냄에 있어 내 딴엔 최선을 다 하였다. 나의 역부족으로 애매했었던 부분과 적지 않은 오역들을 말끔히 고칠 수 있었다. 창작에 못지않은 정혼을 기울였다. <기탄잘리>의 번역으로선 박희진의 것이 결정판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신뢰합니다. 나도 영문학을 공부해서 원본과 번역본을 비교해보고는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셨는지 금세 알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시인은 작고하기 얼마 전 새로 <키탄잘리>를 출판하셨습니다. 이번엔 후기에 뭐라고 하셨을까. 꼭 시집을 구입하여 읽어보리라 마음 먹습니다. 다시 산티니케탄 타고르 시인의 옛집을 찾아가 그 정원에서 이 시집을 읽고 숙소로 돌아와 또 읽고,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를 하고 싶어집니다.

오늘은 시인의 부음을 이제서야 듣게 된 불찰을 통절하게 마음에 새기며 시인 살아생전 주관하시던 시낭독회에 한번 찾아가지 못한 나태와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통감하며 시인이 번역한 ‘기탄잘리 43’을 여기에 옮겨봅니다.

43.

그 무렵 , 내겐 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나의 왕이여, 님은 초대도 받지 않았건만, 일반 대중 속에 섞여, 슬쩍 나의 심중에 들어와선 내 생의 많은 덧없는 순간에 영원이란 옥새를 찍으셨죠.
그런데 오늘 우연히 님의 각인이 생각나서, 보니 내 잊혀진 하찮은 시절의 기쁨과 슬픔의 기억과 뒤섞인 티끌 속에 그것들이 흩어져 있더군요.
님은 티끌 속의 내 철없는 장난을 보시고도 경멸하여 외면하지 않으셨죠. 내가 놀이방에서 들었던 발소리는 별에서 별로 메아리치고 있는 소리와 같습니다.

43.

The day was when I did not keep myself in readiness for thee; and entering my heart unbidden even as one of the common crowd, unknown to me, my king, thou didst press the signet of eternity upon many a fleeting moment of my life.
And today when by chance I light upon them and see thy signature, I find they have lain scattered in the dust mixed with the memory of joys and sorrows of my trivial days forgotten.
Thou didst not turn in contempt from my childish play among dust, and the steps that I heard in my playroom are the same that are echoing from star to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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