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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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만나다
  • 김대환
  • 승인 2015.10.2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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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의 새 이야기] ③탐조와 탐조장비
새를 보는 것을 탐조라고 한다. 그러나 탐조라는 취미는 단순히 새를 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는 새를 보기만 하지만 누구는 새를 찍기도 하고 그리기도하고 심지어 요즘은 조각이나 모형을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새를 본다는 것에는 많은 함축적 의미가 들어 있다.

[조우] 내가 처음 새를 만난 것은 2002년 1월이었다. 학생들과 함께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강릉에 갔었는데 대학 시절부터 아는 같은 과 선배가 경포호에서 새를 관찰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최고가 장비인 필드스코프를 가지고 새를 관찰하는 모습을 보고 인사나 할 겸 차를 세우고 다가갔다. 오랜만에 만난 상황이라 반갑게 인사를 하고 뭐하시느냐고 물어보자 새를 본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필드스코프로 새를 관찰한 경험이 전혀 없던 상황이어서 과연 저렇게 날아다니는 새가 잘 보일까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나도 좀 보자"고 말하는 그 순간이 새라는 주제로 지금까지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 계기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시작] 이렇게 새를 시작하게 된 나는 일단 필드스코프를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특히 선배가 쓰던 그 필드스코프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가격을 알아보고는 이내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비싼 장비를 무슨 돈으로 사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교사인 내가 학생들과 함께 새를 보고 배우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과 학교 과학과 예산으로 장비를 구입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과학 부장님을 찾아갔다. 필드스코프를 사고 싶다. 그런데 가격이 좀 쎄다. 더구나 우리나라 제품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장비가 있으면 학생들과 아주 좋은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등등 구구절절 설득을 하게 되었고 과학 부장님의 허락으로 장비를 구입하게 되었다. 이렇게 장비를 구입하게 된 나는 자잘한 장비는 직접 구입하면서 드디어 새들의 세계에 한발 다가서게 되었다.
 
[공부] 전공이 새와는 전혀 상관없는 해조류생리학을 했던 나로서는 새에 대한 공부가 전혀 다른 학문으로 느껴졌다. 공부를 위해 도감도 샀지만 국내도감이 아닌 일본 도감이었다. 당시 국내 도감은 나와 있는 것은 도감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었고 겨우 볼 수 있는 것이 일본 도감이 전부였지만 이건 도감이라기보다는 그림책에 가까운 실정이었다. 참고할 만한 책이 있을까 서점을 뒤지기도 했지만 마땅한 책을 찾을 수 없었다. 당시의 상황이 국내에서 새를 보는 취미가 이제 겨우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LG 상록재단에서 일본 도감을 번역한 도감이 나왔고 이 도감은 지금까지도 새를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바이블과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DSC_0017.jpg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200pixel, 세로 800pixel사진 찍은 날짜: 2015년 09월 15일 오후 10:16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특기적성교육01_2.JPG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50pixel, 세로 540pixel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필드스코프만 둘러메고 야외로 나가 새를 보기시작한 지 수 계월이 지나게 되었고 새를 보는 곳에서 다른 새를 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의 상황은 국내에서도 새를 보는 사람이 극소수였던 상황이라 자주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동변상련이라고 상대방도 새 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생소하고 반갑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조금씩 사람을 알게 되면서 서로 대화도 하고 모르는 것은 물어도 보면서 새를 알아가게 되었고 당시 내가 가지고 다니던 도감은 사람들에게서 주워들은 각종 자료로 누더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궁금증] 사람들과 만나 새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답답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얼마 전에 본 새를 그 사람에게 설명을 하자니 대책이 없었다. 등판은 무슨 색이고 머리는 어떻고 하면서 한참 설명을 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그런 것 다 필요 없고 다리 색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는 것이었다. 다리색이라... 그건 못 봤는데... 다리색이 중요한가? 그럼 그런 종류의 새들은 다리색이 중요하더군요. 다음에 볼 때는 꼭 다리색을 보세요. 그 당시 심정으로는 그 새를 죽을 때까지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는 새에 대한 질문도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새를 찍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야 찍어놓은 새를 보여주면서 설명도 하고 물어도 볼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의 생각은 논리적으로 매우 타당하며 지극히 당연하면서 핵심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내가 얼마나 황당한 생각을 한 것인지 알게 되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가격. 뭘 어떻게 해도 해결할 수 없는 가격 앞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디지스코핑] 성격상 포기가 빠른 편인 나는 사진을 접어두고 그냥 새를 보기만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도무지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눈덩이처럼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고 그렇게 커진 눈덩이는 나를 조롱하듯 내려다보고 있었으며 그 결과 그렇게 좋아하던 새보는 것조차 차츰 시들어가게 되었다. 사실 새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카메라를 들고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꽃이나 곤충, 버섯을 찍고 있었고 그때 사용하던 장비가 니콘에서 나온 쿨픽스 995라는 똑딱이 디지털 카메라였다. 이 녀석은 몸체의 반이 돌아가는 구조로 꽃이나 버섯을 찍을 때 나처럼 배가 많이 나온 사람이 몸을 많이 구부리지 않고도 쉽게 찍을 수 있는 멋진 녀석이었다. 새를 보러 다니기 전에 그렇게 구입한 장비로 꽃을 찍으러 다니던 나는 2001년 여름방학 때 우연히 학생들과 물속에 사는 생물을 채집하는 활동을 하게 되었다. 채집한 물을 현미경으로 관찰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이런 저런 것을 보여주다가 우연히 현미경의 접안렌즈의 크기와 쿨픽스 995의 렌즈 크기가 비슷하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별 생각 없이 카메라를 현미경 접안렌즈에 대고 사진이 나오는지 이리저리 돌려보던 중 작은 모니터에 현미경의 모습이 나오는 것을 관찰하였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아래의 사진이었다.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zaz_03(2).jpg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00pixel, 세로 375pixel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스티게오클로니움의 스포아.JPG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900pixel, 세로 501pixel

 
그리고 이 방법을 필드스코프에도 적용시켜 보았다. 하지만 필드스코프의 접안렌즈는 현미경의 접안 렌즈보다 작아서 잘 맞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인터넷에 있는 ‘파랑새’라는 탐조 사이트에서 나와 비슷한 방법으로 새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파랑새’는 당시 우리나라의 유일한 탐조 사이트였고 이 사이트에 들어간 나는 신세계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필드스코프에 디지털 카메라를 대고 사진을 찍는 방법을 일명 ‘디지스코핑’이라고 부르고 말레이시아에 사는 로렌스 포(Laurence Poh)라는 탐조인이 1999년 2월경 나처럼 우연히 발견한 방법이라고 했다.
 
결국 디지스코핑은 국내의 새 보는 사람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고, 좀 더 쉽게 사진을 찍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디지스코핑은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움직이는 새는 도저히 찍기가 불가능했다. 또 찍는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돈이 들어가더라도 카메라 렌즈를 사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지만 렌즈를 사기위해 들어가는 수 백만원을 어떻게 모으는가가 관건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도둑질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렌즈를 사는 방법 밖에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15840a28.bmp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50pixel, 세로 333pixel
 
어떻게 돈을 모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겠다. 새도 좋지만 가정의 평화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돈을 장만하고 렌즈를 어렵게 구입하고 드디어 600mm 렌즈로 새를 찍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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