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의 정원’인 인천의 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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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의 정원’인 인천의 섬들
  • 이세기
  • 승인 2015.10.1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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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섬이야기③] 이세기 / 시인

▶ 문갑도 하루산에서 바라본 덕적군도 외곽도 전경
 

섬이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그럼에도 섬이 많은 나라에서 섬에 무관심한 것은 아무래도 지나치다. 지금껏 무관심의 영역에 방치되었던 섬이 관심을 끄는 데는 연유가 있을 터. 요즘은 섬에 관심이 부쩍 많아진 탓인지 주말에는 섬에서 아웃도어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여객선이 붐빈다. 섬을 찾는 이유도 많다. 그 중 하나는 인공미에 식상한 현대인들이 생생한 야생을 만끽하고 싶어서 일 것이다. 섬에 별장을 마련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후 정착을 위해 섬으로 귀향한 경우도 많다니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이래저래 섬으로 향하는 발길이 바쁜 요즘이다.

간혹 섬문화를 말할 때 파시(波市) 정도를 떠올린다. 조금 더 나아가면 석기 시대의 유적인 패총 정도다. 돌살(독살), 파시 등이 다 섬문화이니 유구할 수밖에. 그런데 좀 들어가서 당산, 갱국과 음력 주기인 물때에 들어가면 길을 잃는다. 시·공간이 낯설게 느껴진다.

섬사람들은 원래 음력을 기준으로 살아간다. “오늘이 몇 만날이지?”라는 말은 섬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 중 하나이다. 양력과 대비되는 음력은 물때 중심의 생활인데, 도시인과는 다른 시간의 주기를 살고 있다. 나는 음력을 주기로 하는 물때 생활이야말로 동아시아인의 리듬이라고 생각한다. 해양과 농경문화의 시간인 음력이야말로 삶의 지혜가 농축된 오랜 역사를 가진 동아시아인들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얼마 전에 지나간 우란분절(盂蘭盆節)만 해도 그렇다. 억울한 자들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이 불교 행사는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 날에 벌어진다. 24절기의 중심이라 해서 붙여진 절기다. 백종(百種)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일 년 365일 중 중간쯤 된다. 이즈음에는 과일과 채소가 많이 나오는 때라 백가지 씨앗을 마련한다는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백 가지 햇곡식을 조상께 올리는 날이기도 하다. 때마침 힘든 농사일도 거의 끝날 때인데, 바닷가 사람들에게는 일 년 중 가장 바쁜 날이다. 이 날이 백중사리이기 때문이다. 백중 무렵이면 조수 간만의 차이가 가장 심해서 온 섬주민이 섬 둘레인 갯티나 갯바탕에 나가 돌미역, 생소라, 바지락 등 온갖 갯것을 채취한다. 음력 물때가 주는 갯문화이다.

올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목포대에서 전국해양문화학자대회가 열렸다. 섬과 바다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로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이 주최가 되어 벌써 6회 째를 맞고 있다. 이 대회는 한국의 섬과 해양문화에 대한 선구적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역사, 고고학, 문화인류학, 해양문화 등 200여 명의 관련 연구자와 학자들이 모여 영역별로 집합 토론을 벌리는 3일간의 대장정은 섬에 대한 뜨거운 열기를 반영한다. 섬이 이처럼 주목받은 적이 있었던가?
나는 학술대회 기간 내내 착잡했다. 인천 섬들이 눈에 밝혔기 때문이다. 170여개의 섬을 보유하고 있는 인천의 섬에 대한 체계적인 학술적 접근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한국은 섬을 보유한 나라임에도 아직도 섬에 대한 통일된 정의가 없다는 것이다. 관련 연구자에 의하면 한국의 섬은 1만개를 넘는다니 가히 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절실함을 느꼈다. 바위섬인 여는 둘째 치고 염과 섬에 대한 규정조차 통일된 정의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섬 정책이 무관심의 영역으로 방치되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섬은 모든 정책의 오지로 취급되어 왔다. 다행스러운 것은 섬 관련 학술대회답게 섬문화를 살려 정책에 적극 반영하려는 노력은 돋보였다. 섬이 많은 도시에서 사는 나로서는 참으로 부러웠다.

마침 일정 중 흑산도와 홍도 답사도 있었다. 여객선을 타고 다도해를 지나면서 드는 소감은 소취 허련(小癡 許鍊, 1808∼1893) 등 남도의 남종화(南宗畵)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예술가는 자기가 태어난 땅의 풍토에서 영감을 받는다. 아니나 다를까 한 폭의 수묵 빛으로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은 가히 절경! 감탄! 감탄! 함께 객선에 몸을 실은 섬주민은 자기 섬에서 태어난 인물과 특산물 등, 섬 자랑에 목청을 높였다. 1천여 개의 섬을 보유하고 있는 신안군은 이를 ‘천사의 섬’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흑산도의 고래와 홍어, 파시, 그리고 섬의 거주 역사와 유배 문화 등을 적극 알렸다. 섬마다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소개하면서 섬 홍보를 다각화했다. 섬이 생생하게 부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즉석에서 이 길이야말로 과거에는 유배지로 가는 길이었지만,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이 따로 없기에 ‘도원천도(桃源千島)’라 명칭했다. 물론 섬사람들의 고된 일상을 애면글면 피할 재간이 없다. 육지와는 비교불가로 섬에서의 생활이 고역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섬들은 그 자체로 도원향을 풍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도해 예찬의 고답이 아니라, 진경의 멋이 감탄을 주는 것이다.

다도해의 정점인 홍도의 자연경관은 우리를 압도했다. 여기에 미역, 다시마, 톳 등 지방 특산품을 제대로 갖췄다. 요즘은 국립공원에서 제외된 거주지조차 국립공원에 포함해달라는 청원을 하고 있다니, 자연경관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섬 경제에 활력을 준다는 인식이 기뻤다. 섬 일주를 하면서 섬을 섬답게 보존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새삼 절감했다.

나는 다시금 착잡한 심정으로 인천 섬을 생각했다. 인천 앞바다의 선갑도, 백아도, 굴업도, 각흘도, 가도, 선단여 등 덕적군도 외곽도의 섬들만 하더라도 자연경관이 결코 다도해에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덕적군도 탄생설화인 망구할매 전설을 비롯하여 오누이전설, 황금 파시 등 다양한 인문지리의 장소적 특색을 지녔다.

옹기종기 모인 덕적군도 외곽도의 유무인도의 전경은 ‘황해의 정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빼어난 군도(群島)의 백미를 두루 갖췄다. 이를 특색화한다면 인천의 섬들은 가히 자연경관과 인문역사가 어우러진 조화로운 섬문화의 보고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나는 지금이라도 덕적군도를 해양국립공원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천연의 자연경관 및 문화 보고를 지녔음에도 아직도 방치한 채 묵묵부답인 것은 나로서는 이해불가다.

섬은 섬다워야 한다. 섬답지 않다면 누가 가겠는가. 섬에 사람들이 정주해야 섬문화도 꽃을 피운다. 그러나 이 말은 지금 무용하다. 섬을 섬답게 보존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생활의 불편이 크기 때문이다. 교육, 문화, 복지와 여가 생활은 태부족하다. 젊은 사람들의 정주 요건은 최악이다. 뭐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다. 그렇지만 인천의 섬이 보배로운 것은 오랜 역사, 문화, 생태가 조화로운 섬이라는 데 있다. 세상 사람들이 인천의 섬을 ‘황해의 정원’이라고 명명하기를 나는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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