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할 섬문화 유산, 당산과 당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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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할 섬문화 유산, 당산과 당산목
  • 이세기
  • 승인 2015.10.2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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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섬이야기④] 이세기 / 시인
섬이야기_지켜야할 섬문화 유산, 당산과 당산목


▲ 문갑도 당산


 ▲ 굴업도 당산에 있는 당집 기와 파편


▲ 교동도 물푸레나무


▲ 장봉도 당나무인 소사나무 한 쌍
 
 
섬에 있는 오래된 당산(堂山)이나 당산목을 보면 영성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도 늦은 저녁 어스름이 내려 앉아있을 때에야 한다. 어둠 속에서 배어나오는 신령스러운 자태에 공경의 마음이 절로 든다. 한번은 노거수인 당나무를 넋 놓고 바라보는 나에게 섬 촌부가 넌지시 말을 던졌다.

“그깟 나무가 뭐 길래, 신줏단지 보듯 하는 겨.”

노인의 이 말은 괜한 헛말이 아니다. 본딧말은 그게 아니다. 모시는 나무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뜻이다. 당산목은 마을과 마을 주민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신성화된 나무다. 당산목이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기까지는 섬마을 사람들의 각별한 보살핌이 절대적이다.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하지 않는가.

섬에서 당산은 신성한 장소이자 참례의 공간이다. 당산은 입도조(入島祖)가 정한다. 당산을 정할 때는 술을 담아 정해진 곳에 놓았다가 술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면 명당이라 여겼다. 술독에 술이 끓어오지 않으면 모시지 않는다. 당산이 정해지면 고사를 지내고 조상신을 모신 후에 섬의 안녕과 풍요를 염원하는 대동제를 지냈다. 섬에 정주하기 위해 조상께 직접 아뢰어 고유(告由)하는 것이 바로 당산을 모시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당산은 섬 정주 기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상신을 모신 유서 깊은 당산이 있는 섬으로는 굴업도, 문갑도, 울도, 연평도를 꼽을 수 있다. 이들 섬은 파시와 관련이 깊다. 주로 안강망 어업과 파시가 성했던 섬일수록 당문화가 활발했다.

당산과 맞짝이 당산목이다. 섬 당산목은 팽나무, 소사나무 등이 주종이다. 수형이 좋고 장수목에 속한 탓도 있다. 백아도에는 팽나무 당산목이 있다. 교동도 당산목 물푸레나무는 오랜 수령을 자랑하는 노거수로 잘 알려져 있다. 교동도와 볼음도에 각각 있는 은행나무는 부부의 연을 맺은 당산목이라하니 그 인연이 예사롭지 않다. 당산목은 섬마다 있지만 더러는 고사된 나무도 많다. 고사한 시기를 섬 고로(古老)들은 대개 1.4후퇴 때로 증언하고 있다. 전쟁 통에 섬마다 피난민이 넘쳤을 때 땔나무조차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섬마을에서 신성시 했던 당산나무 뿌리를 잘라 밥을 해먹다보니 자연 고사목이 됐다는 것이다.

장봉도에는 당산목으로 소사나무 한 쌍이 있다. 수령이 꽤 된 위엄을 갖춘 소사나무의 자태에 나는 그만 혀를 내둘렀다. 꿋꿋한 자태는 영성이 느껴졌다. 내 생각에 소사나무를 당산목으로 삼은 것은 인천 섬문화의 특색인 듯하다. 강화도 마니산 단군 제사 터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사나무 한 그루가 자란다. 제사 터에 자리한 소사나무는 그 자체로 위엄을 갖췄다. 제(祭)와 관련된 나무라서인지 소사나무는 오랫동안 섬사람들에게 신성하게 모셔진 나무다. 문갑도, 울도, 무의도 당산에도 소사나무 군락이 있다. 당산의 나무들은 신성시 여기는보호수라 입산 금지는 물론이고 땔나무로 쓸 수 없다. 마을제사인 당제를 지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당제를 지내려면 부정해서는 안 된다. 행동거지는 물론이고 언행과 부정한 음식조차 삼가야 한다.

신성한 당산의 터주목이 된 소사나무는 중부 이남 해안과 섬 지방에서 주로 자란다. 덕적군도 일대의 섬을 대표하는 수종이다. 소사나무는 직립하기보다는 여러 갈래로 줄기와 가지가 비틀어지는 모양새인데 그 풍모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수형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분재로도 각광받는 수목이다. 선갑도는 암벽이 많아 분재용 소사나무로 유명하다. 자태가 아름다워 분재용으로 고가에 팔리는 바람에 남벌되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소금기에 강하고 줄기가 잘려도 새싹이 잘 나오는 등 척박한 조건에 잘 적응하는 나무이다. 섬사람들은 소사나무하면 모른다. 물거리나무라고 해야 안다. 회초리나무라고도 한다. 줄기는 야들야들하여 회초리로 쓰기 안성맞춤이라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초봄에 여린 연둣빛 이파리가 솟아나면 섬은 온통 생기가 넘친다. 봄을 알리는 수종이다. 삭정이는 불쏘시개로 썼다. 식생이 왕성하여 잘 자랐다.

소사나무는 방풍림으로도 심었다. 영흥도 십리포 해변에 있는 소사나무 군락이 대표적이다. 인천 섬들의 방풍림으로 쓰였던 나무로는 소사나무 이외에도 소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있었다. 문갑도는 상수리나무, 덕적도는 소나무로 방풍림을 삼았다.

당산과 함께 당산목도 수난을 겪었다. 당산목이 조상신을 모신다는 이유로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개신교의 영향이 컸다. 숭배의 대상이 못된다하여 뿌리에 해코지를 해서 고사시켰다. 당산목을 모시던 섬 고유의 문화유산도 사라졌다. 미신을 숭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자연 섬마을 공동체를 지켜온 당산의 대동굿도 사라지게 됐다. 지켜야만 되는 섬 고유의 문화유산이라는 인식이 없었다.

섬에 불어 닥친 새마을운동도 한몫했다. “잘살아보세”라는 구호가 득세하던 시절이었다. 미풍조차 구질서라며 맹렬하게 갈아엎었다. 구습은 낡은 관습의 온상으로 청산의 대상이 됐다. 새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시멘트로 포장하고 시냇가는 직선화되고 돌담은 허물었다. 지붕은 함석이나 슬레이트로 교체됐다. 이는 악명 높았던 70년대의 반공독재와 함께 섬문화의 전통을 파괴한 악풍이었다. 유신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진 섬문화가 무참히 파괴된 것이다.

그야말로 새마을운동은 “다 뜯어 고치세”였다. 섬문화와는 아랑곳없이 오직 위압적인 훈시령에 의한 섬문화를 파괴했다. 오래된 것, 전통적인 것이 남아 있지 않은 탓에는 저 망령스러운 유신이 한몫했던 것이다.

섬 특유의 돌담과 움집과 띠집이 사라진 아쉬움이 크다. 섬의 풍토상 띠가 많아 띠로 엮은 지붕이 많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섬 풍취가 사라진 것이다. 최근에는 섬 정취를 살리려고 돌담을 새롭게 단장하지만 옛것만 못하다. 섬 고유의 문화 원형을 찾고자 하지만 겨우 모양을 흉내낼 뿐이다.

습속과 악습은 구분해야 한다.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패악이라고 해서 없애버리는 것에 아연 질색할 따름이다. 그러한 정신세계의 이면에는 오로지 낡은 것은 모조리 없애버리려는 강박이 있다. 획일성만이 유일하게 자란다. 그래서 다양성을 죽이는 시대는 위험하다.

섬문화의 죽음은 획일화로 치닫는 도시 공간이 확장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삶의 채취가 묻어 있는 장소를 일거에 공간으로 확장하여 파괴한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시간인 것이다.

오래된 나무를 보면 영성이 느껴지듯, 어두운 밤 당산을 바라보면 신성하다. 물욕만 좇은 탓인가? 오늘날 사람들은 어느덧 영성이 깃든 것을 외면해 버렸다. 근래에 들어서 우리 안의 영성이 메말라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상이 그만큼 얇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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