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적군도의 유별난 섬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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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적군도의 유별난 섬음식
  • 이세기
  • 승인 2015.11.1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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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섬이야기⑤] 이세기 / 시인

▲ 굴업도 섬음식 상차림
 

▲ 갱무침


▲ 돌김 말리는 장면


▲ 갱국
 
 
섬음식 이야기나 해볼까? 오늘날 음식은 별 볼일이 없다. 상차림이 형식적으로 바뀐 탓인지, 아니면 음식이 철철 넘치는 시대에 제 맛을 내는 음식이 없어서 일까? 그것도 아니면 입맛이 변해서인지. 이래저래 시시하다. 그래도 명절 때가 되면 으레 재래시장을 찾는 발걸음은 분주하다. 가공되지 않은 재료의 향연이 펼쳐지는 시장은 때로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갖은 찬거리가 풍성하게 진열된 것을 볼 때마다 절로 탄성이 나온다. 하지만 아쉬움도 크다. 제 고장 맛이 배인 그 풍성했던 맛은 다 어디로 갔는가.

최근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마다 온갖 음식 만들기 열풍이다. 맛의 사치가 호사롭다. 하지만 딱히 군침이 돌만한 음식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점점 ‘날맛’에서 멀어지고 온갖 향료와 재료의 향연으로 포장되어 급기야는 음식 본래의 맛과 향은 찾아보기 힘들다. 음식조차 깊이가 없는 얄팍한 세상을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없지 않다. 나는 음식에 문외한이지만 음식에 대한 기준이 있다면 담백하고 향이 짙지 않은 것을 좋아한다. 시각적으로도 화려한 것보다는 단출한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생선탕도 양념이 많이 들어가지 않은 맑은 탕이 좋다. 인공의 맛을 첨가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원초적인 맛을 좋아한다.

한번은 연안부두에서 얼굴이 꽤 알려진 요리연구가가 객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자연주의 푸드스타일리스트로 가공하지 않은 자연물에서 재료를 취해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섬 여행은 섬에서 음식재료를 찾기 위한 여행일거라 생각하니, 그의 손에서 태어날 섬음식이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함께 음식 정담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사람들과 어울릴 기색이 없었고 나 역시 낯을 가려 대면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가 섬 여행에서 섬 특유의 재료를 찾아 섬 고유의 음식을 만들어내길 은근히 기대했으나, 아직 감감 무소식이다. 아마도 섬음식과 재료에 별 흥미를 못 느낀 모양이다.

덕적군도에는 유별난 섬음식이 많다. 그 중 별미 음식을 뽑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듬북국, 생굴김국, 갱국을 꼽는다. 흰 사발에 내오는 국물요리는 시각적으로도 일품이다. 음식이라는 게 선호하는 취향이 각자 따로 있기 마련이다. 나는 지금도 듬북국, 생굴김국, 갱국을 즐겨 먹는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듬북국을 좋아한다.

덕적군도 사람들은 톳국을 듬북국이라 한다. 톳을 채취해서 햇볕에 바싹 말렸다가 토란국처럼 끊여 먹는데, 이 국은 우선 맑아야 하고, 둘째로는 길쭉하게 썬 두부가 들어가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바짝 말린 톳이 들어간다. 이 별난 국은 덕적군도에서는 제사상에도 올라가는 으뜸국이다. 무엇보다 국이 정갈하다. 설날 조반에도 이 국이 나온다. 식구들이 둘러 앉아 받는 새해 첫상에 올리는 국인 것이다.

듬북국은 ‘짐짐한 맛’을 내야한다. 짐짐한 맛이라는 게 짜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싱겁지도 않은 맛이다. 이렇다 할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아도 짐짐한 맛을 내는 것은 갯것에서 나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갯것을 우려낸 맛은 풍미가 깊다.

콩두부 향도 맛이 살아있고, 무엇보다도 말린 톳의 은은함이 미감을 움직이는데 이 맛이 일품이다. 맑게 끓인 국을 한 숟가락 떠먹으면 두부의 뜨거운 기운과 톳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깊은 겨울에는 훌훌 마셔도 좋다.

둘째로 치기 아쉬운 국 중에 하나가 생굴김국이다. 돌김에 생굴을 넣은 국맛도 그만이다. 갓 채취한 굴과 돌김을 맑게 끓여 내놓는 굴국은 맛과 향이 풍부하다. 희디힌 굴과 검푸른 돌김이 맑은 탕 안에 함께 있어 보기도 좋다. 탱탱한 굴과 부드러운 김이 목으로 넘어갈 때 식감도 일품이다. 굴과 돌김은 겨울이 제철인데 뜨끈한 게 겨울 삼동에 먹기 좋다. 향긋한 갯내음을 품은 맛은 바다의 신선함을 머금고 있어 잃은 미각도 되살릴 수 있는 맛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덕적군도 제일미(第一味)는 갱국을 꼽는다. 내가 아는 한 덕적군도 중 문갑도(文甲島) 사람들은 유난히 갱국을 좋아한다. 갱국의 주재료인 갱은 방언이고, 정확한 명칭은 대수리고둥이다. 섬에서는 ‘갱’, ‘보리갱’으로 불린다. 보리갱이라 함은 보리 이삭이 필 무렵인 5월에 갱이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다. 갱이 많은 것은 갯바위가 많기 때문이다.

덕적군도에서는 외지에 나가 공부하다 고향에 온 자식들에게 보양식으로 갱국을 해 먹이는 풍습이 있다. 갱국은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우선 갯바위에서 갱을 채취한 후 일일이 으깨어 알갱이를 분리한다. 그런 후에 ‘달달달’ 바가지에 갱 알갱이와 약간의 된장 고추장을 넣고 으깨며 갠다. 된장을 넣는 이유는 날갱이 독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냥 먹으면 배앓이를 할 수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질퍽하게 갠 갱에 깨끗한 샘물을 넣어 완성하는데, 이 때 계절에 따라 오이나 생미역을 넣기도 한다.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는 한여름 갱국에 띄워진 오이와 미역줄기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모처럼 식구들이 모여 저녁밥상에 둘러 앉아 갱국을 한 그릇이 비우면 “아! 이제야 고향섬에 온 것 같다”, 라는 탄성이 터진다. 고향 바다를 입안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만큼 덕적군도 섬사람들에게 갱국은 특별나다. 맛 또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 입안이 마비될 정도로 톡 쏘는 맵고 얼얼한 맛은 청양고추 저리가라다. 홍어 삭힌 맛도 이 맛보다 강렬하지 않다. 갱에 ‘뿔뚝’이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에서 나는 독특한 향과 맛 때문이다.

갱국 맛을 본 사람들은 세상의 끝에서나 맛볼 수 있는 ‘기괴한 맛’이라고 평한다. 우스갯소리로 ‘악마의 맛’이라고 내둘렀다. 다시는 입에 댈 수 없는 음식이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한번 맛을 본 사람들은 다시 먹어 보고 싶은 음식으로 갱국을 꼽는다.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 섬에 가면 반드시 한 번 더 먹겠다고 다짐까지 한다.

나는 지금도 섬에 가면 지인들에게 갱국을 해서 대접하곤 한다. 개중에는 맛이 생소해 탐탁하지 않아 마다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먹고 배앓이를 할 수도 있다고 하면 먹기를 꺼리곤 한다. 하지만 한번 이 특별난 맛에 취하면 다시 맛볼 기회를 기다리게 된다. 그만큼 갱국의 맛은 오묘하다. 맵고 달작지근하고, 텁텁하고, 얼얼하고, 시원한 맛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간혹 재래시장에 가면 좌판에서 갱을 파는 할머니를 본다. 대개는 출향한 섬 출신이라 짐작된다. 갱을 먹어보지 않은 도시인들에게 이 낯선 음식은 관심 밖이다. 이따금씩 갱을 알아보는 섬사람들만이 사 간다. 하지만 갱도 수난을 겪고 있다. 요즘에는 간에 좋다고 해서 몸보신용으로 찾는 이가 많아 씨앗까지 다 쓸어가 즙으로 먹는다니 한심스럽다. 음식이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음식이야말로 제 고장만한 것이 없다. 싱싱한 음식 재료와 산지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갱국이나, 듬북국, 굴김국 등 이런 맛은 깊은 섬에나 들어가야 맛볼 수 있는 진미다. 섬음식 문화라는 게 섬에서 채취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드는 것이니 당연 그럴 수밖에. 하지만 요즘은 섬음식을 제대로 하는 섬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채취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정성이 들어가는 음식을 내올 사람도 사라지고 있다.

언젠가 섬음식을 주목할 때가 올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섬음식 중 굴회, 돌김, 톳, 우무, 말린 복국, 백미를 넣어 푹 고아낸 우럭이나 숭어 백숙 등은 상급에 속하는 음식이다. 나는 간혹 섬음식이 나오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섬 특유의 음식 맛을 찾아보기 어렵다. 있다하더라도 구이로 나오는 장대, 박대, 간제미, 서대 정도가 겨우 이 맛을 낸다. 이 차에 섬음식을 연구하고 만드는 이도 많이 나오길 바란다.

날것 그대로 섭생하는 것은 아마도 인류의 오랜 맛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가공되지 않은 맛의 원천이 섬에 있다. 이 맛의 보고가 바로 ‘갯티’이다. 섬 둘레에 형성된 크고 작은 갯바위에서 나는 재료가 바로 섬음식의 텃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갯티도 오염되고 있다. 섬에서 흔하던 돌김이나 굴조차 이젠 오염되어 갯바위에 돋지 않아 먼 섬으로 가야 찾아볼 수 있으니.

오늘날 음식은 ‘날맛’에서 멀어지고 있다. 사람의 성품이 먹을거리인 음식에서 나온다고 한 말은 예나 이제나 틀린 말이 아니다. 세상은 날로 포악해지고 있다. 극단의 맛도 알고 보면 독점욕에 사로잡힌 성질에서 나온다. 오염되지 않은 좋은 음식의 기준이라는 게 오늘날에는 돈과 관련되어 있으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맛도 공평을 상실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 세상의 맛이란 게 이처럼 간사하고 치사한 것이다.

하지만 뭐라 해도 섬음식은 성정으로 치자면 으뜸이다. 원시의 우주가 빚어주니, 그럴 수밖에. 바다와 파도가 깨워주고, 갯벌이 살을 찌게하고, 사시사철 갯바람에 물든 손맛이 맛을 내니 그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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