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식탁의 성찬, 장봉도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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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 식탁의 성찬, 장봉도어보
  • 이세기
  • 승인 2015.12.1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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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섬이야기⑦] 이세기 / 시인

▶ 장봉도 부근 만도리어장에서 조업하는 장면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은 [자산어보(玆山魚普)]를 저술하기 위해 많은 섬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그러나 어보를 기록하매 물고기의 모양이나 형태, 이름 등이 사람마다 제각기 달라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지 몰랐다. 실제로 [자산어보]에는 섬에서 불렀던 물고기 이름이 방언으로도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물고기의 명칭을 당시 근기(近畿) 지방인 서울·경기 사람들이 쓰는 말로 기록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감생이(甘相魚), 간잼이(間簪), 민둥이(民童魚), 밴댕이(伴?魚) 등 현지 섬사람들의 생활어로 통용되는 물고기 명칭을 한자어로 옮기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은 생생한 현지어가 한자어로 바뀌는 과정이기도 하다.

약전이 물고기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흑산도 이웃 섬인 대둔도(大屯島)에 사는 장창대(張昌大)라는 젊은 사람을 소개받게 된다. 그에게 도움을 받아 어보를 작성했다고 한다. 창대라는 사람은 집안에 틀어박혀 서적 읽는 것을 좋아할 만큼 학식이 있는 젊은 선비였다.

섬사람들에게는 흔하디흔한 물고기이지만, 약전은 물고기에 대해 상세하게 글로 기록하고 싶은 학자적 욕심이 더 컸을 것이다. 약전이 보기에 물고기의 습성과 생태를 파악하는데 현지 어부보다는 젊은 서생 창대가 더 믿을 만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섬사람들은 약전이 물고기를 관찰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러구러 약전은 [자산어보]를 완성했다.

나는 [자산어보]를 ‘흑산어보’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흑산도에서 나는 물고기를 관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흑산’이라는 어감이 어둡고 음산하여 ‘검다’의 의미를 가진 자(玆)자를 빌려 자산이라고 했다지만, 그것은 외지인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약전의 어보는 가히 보물이다.

어느 학자는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지은 이유가 양반을 위한 것이었다고 평했다. 그들에게 상업적 이윤을 보장해주기 위한 저술이라는 것이다. 지나친 상상이다. 굳이 그 먼 유배지에서 얄팍한 상업적 이득을 위해 저술로 시간을 허비할 정약전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동생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과의 숱한 편지 내왕이 말해주듯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이용후생(利用厚生)에 입각한 학문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 점 하나는 바로 잡아야 한다. ‘흑산’을 ‘자산’으로 읽는 방식은 섬사람들의 언어가 아닌 조선 지식인의 언어임이 틀림없다. [자산어보]는 물고기의 종류·명칭·분포·형태·습성 등을 기록한 박물지(博物誌)이지만, 섬 생활을 알 수 있는 ‘섬생활사’로도 손색이 없다.

서해에도 많은 물고기가 잡혔다. 문헌에 의하면 조기라고 불리는 석수어(石首魚), 청어(靑魚) 등이 대표적 어종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1432)에 보면 함경도, 전라도, 충청도, 황해도 등지에 조기와 청어가 풍부하게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궁핍한 선비나 가난한 백성들이 즐겨 먹던 물고기였던 모양이다.

이외에도 갈치, 망어, 민어, 상어, 준치, 전어, 광어, 숭어 등이 지리지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 어종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조기는 1960년대 말 이후 연평도나 덕적도 근해에서는 거의 잡히지 않고, 청어는 서해 바다에서 족적을 감추었다. 이는 기후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한다. 고래는 1910년 전후부터 서해안 대청도 근해에까지 회유하여 한 때 이곳에 포경업이 발달하기도 했다. 고래의 먹이인 새우나 청어 등을 따라 대형 물고기류인 귀신고래까지 대청 앞바다까지 귀휴한 것으로 보아 당시 서해 바다에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있었는지 알만하다. 하지만 그 많던 귀신고래 등이 일제강점기 일본 포경선의 남획과 기온 변화로 사라졌다. 아쉬움이 크다.

해류와 해수면 온도는 물고기의 회유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유로 요즘은 서해에도 오징어가 많이 잡힌다. 서해를 대표했던 갑각류는 갑오징어이다. 하지만 동해에서 잡혀야 할 오징어가 서해까지 오는 경우가 있다. 조업법이 다른 안강망 그물에 오징어가 들어 상자에 퍼 담다가 넘쳐서 바다에 버리고 올 정도였다니,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짐작이 간다. 이 역시 바다의 기온과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뱃사람들은 태풍을 고대할 때가 있다. 바다 수온이 너무 차거나, 물이 맑아 ‘청(淸)’하면 물고기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물의 변화에 따라 이동한다. 물이 청해야할 때 탁(濁)해지고, 탁해져야할 때 물이 청하면 뱃사람들은 곤혹스럽다. 좀체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한다. 이때는 일손을 놓아야 하는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섬사람들이나 뱃사람들은 태풍이 올 기미를 보이면 ‘바다가 뒤집힌다’고 말할 때가 있다. 이 때 태풍이 불어올 징조는 바람의 세기에도 있지만, 물의 탁도를 보고 알아차린다. 청한 물이 흐린 물로 변하면 물이 뒤집혀지는데, 한번 물이 뒤집히면 사라졌던 물고기들이 들기 시작한다. 덕적군도 사람들은 우럭이 잡히는 않으면, 태풍이라도 불어오길 은근히 기대한다. 수온이 올라가고 물이 한번 뒤집혀야지 물고기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수온의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물고기는 민어다. 덕적도에 있는 용담 근방은 수심이 깊어서 민어가 많이 잡혔다는데 요즘은 영 시원치 않다. 덕적도 어부들은 그 많던 민어가 씨알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조류 탓인지 모래채취 탓인지 몰라도 어부들의 한숨이 깊다.

인천 앞바다인 경기만은 어류가 풍부하기로 정평이 났었다. 덕적군도를 비롯하여 강화도, 장봉도 등 무수히 흩어진 섬 주변으로 갯고랑과 평평한 모래밭인 ‘탄(灘)’이 발달되어 물고기가 산란하기 좋아 조기, 민어, 게, 새우가 많았다. 연평도, 굴업도, 울도 부근, 문갑도 뒷면, 덕적도 용담과 초지도 부근, 장봉도 부근은 예로부터 황금어장으로 꼽는다. 특히 강화만 일대는 한강 하류의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곳으로 갯고랑과 갯벌이 발달되어 있고, 플랑크톤이 풍부해 다양한 어종이 산란하는 터다. 장봉도 부근 만도리어장은 울도 부근 뱅이어장과 함께 경기만 최대의 어장이다.

우리가 평소에 먹는 식탁의 성찬(盛饌)은 바로 경기만이 준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잡어젓으로 쓰이는 밴댕이, 황석어, 웅어와 새우류인 새우, 곤쟁이가 지천으로 잡혔다. 인천 앞바다와 섬은 맛의 어장인 셈이다. 이들 어류는 김포 대명포, 교동 남산포, 강화도 선두포, 인천 연안부두, 소래포, 만석, 화수, 북성포 등으로 집하되어 서민들의 밥상에 싱싱하게 올랐다.

장봉도 부근 만도리어장에서 안강망 조업법으로 잡히는 계절별 물고기는 다음과 같다. 겨울인 11월부터 밀새우(중하), 망둥이, 숭어 새끼인 동어, 숭어가 잡히고, 2월 말쯤부터 황석어, 북새우, 가재(쏙), 꽃게 새끼인 해게와 주꾸미가, 3월 말부터 5월 초까지 껍질이 두꺼운 흰 새우 대때기, 북새우를 잡고, 4월 중순부터 실치가 나기 시작하여, 병어, 밴댕이, 대하 암놈, 갑오징어, 낙지, 숭어가 잡힌다.

하지만 바다 기온이 올라가면 숭어는 힘이 좋고 눈이 맑아져서 잡히지 않는다. 이 때 뱃사람들은 숭어 ‘눈이 밝다’라고 한다. 숭어 눈이 그물코를 세면서 다닐 정도로 밝아져 잡을 수 없다고 한다.

5월 달에는 보리새우가 잡힌다. 장봉도에서는 보리새우를 ‘봉디’라고 한다. 6월이 되면 돌치, 백조기, 민어과가 많이 잡힌다. 농어, 민어는 가을까지 잡힌다. 민어는 이제 만도리어장에서는 잡히지 않는다. 실치, 병어, 밴댕이, 어미 꽃게는 6월말이나 7월말까지 잡힌다. 준치는 예전에는 많이 나왔으나 요즘에는 잡히지 않는다.

6월에 돌치, 백조기, 민어과가 많이 잡힌다. 8월 달은 금어기로 하절기 어한기(漁閑期)이다. 9월초부터 곤쟁이, 추젓이 잡히는데 장봉도에서는 이를 ‘자젓’이라고 한다. 젓잡이는 조금 때 주로 한다. 젓으로 쓰이는 새우와 함께 밴댕이, 갈치 새끼인 풀치를 잡는다. 장봉도에서는 풀치를 ‘빈주리’라고 한다. 북새우는 북청새우라고 한다. 이외에도 대때기, 잡어로 멸치, 등푸레기를 잡는데 장봉도에서는 디포리를 등푸레기라고 한다. 디포리는 밴댕이보다 작은 물고기이다.

가을에 대표 어종은 수꽃게, 11월 달에는 대때기, 김장 새우로 동백하가 잡히고, 잡어로는 뱀장어가 잡힌다. 5월 달부터 나오는 서대, 우럭, 노래미 역시 11월까지 잡힌다. 잡어로 간간히 잡히는 간제미 역시 4월부터 11월 달까지 든다.

만도리어장의 어종 중 봄, 가을철에 입맛을 돋구는 밴댕이와 전어 종류도 여럿이고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덕적군도에서는 전어와 비슷한 밴댕이를 ‘자구리’라고도 한다. 자구리, 밴디, 반디, 반지, 밴댕이가 모두 같은 어종의 별칭이다. 모두 덕적군도 인근의 섬과 장봉도 등 한강 하구 연안에서 잡히는 어종이다.

자구리축제를 하는 문갑도는 인근 뒷면어장에서 음력 8월에서 12월 사이에 새우가 잡혔다. 풀치라고 불렀던 섬인 대초지도 소초지도 사이에서는 6월에 민어가 많이 잡혔다. 민어가 대풍을 맞아 그물이 떠올라 ‘뿔뚝이 터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민어가 많이 잡혔다. 한때는 ‘민어 한 마리에 쌀 한 가마’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값이 나갔다. 교동도와 강화도 일대의 참숭어는 깊은 겨울철에서 초봄까지 먹을 수 있는 별미다. 이 때 참숭어의 내장 맛을 볼 수 있다.

간제미는 횟감으로도 일품이다. 홍어 맛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게 간제미다. 간제미는 선어회로도 좋다. 특히 날갯살은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아귀라고 불리는 물텀벙은 뱃사람들이 즐겨 먹는 물고기다. 뱃사람들에게 흔한 말로 ‘홍어 보다 간제미’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간제미회를 즐긴다. 소래 어부들은 요즘은 간제미나 병어도 잡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아귀는 아구, 물텀벙이라고 하는데, 아귀가 하도 많이 잡혀서 바다에 던져 버릴 때 “첨벙 첨벙”소리가 난다고 해서 얻은 별칭이다. 한때는 너무 많이 잡혀서 버렸던 물고기가 이제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뱃사람들도 물텀벙을 좋아하는데, 큰 솥에다 양념없이 푹 삶아서 간장에 찍어 먹는다. 물텀벙은 생물일 때 살이 물렁하나 삶으면 오히려 살이 탱탱해져 맛도 식감도 뛰어나다.

오늘날 대청도에 홍어가 많이 잡힌다. 대청도를 대표하는 특산품이 되고 있다. 흑산도가 홍어로 워낙 알려져 있지만 대청도도 그에 못지않다. 대청도는 인천 연안부두와 가까워서 신선한 홍어애와 날 홍어회를 제철에 먹을 수 있다.

물고기는 예로부터 화폭에 즐겨 담을 정도로 상서로운 동물로 알려져 왔다. 알을 많이 낳아 자식 번창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죽어서까지 눈을 감지 않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터라 정곡(正鵠)에 이르는 상징이기도 했다. 세상이 점점 암흑으로 돌변하고 있다. 물고기의 눈처럼 눈을 부릅뜨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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