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사무쳐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마음, '장한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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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사무쳐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마음, '장한몽'
  • 박진영
  • 승인 2015.12.1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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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한이라는 것이 오래되면 장한이 되고, 가슴속에 사무쳐 지울 수 없게 된다. 그럴지언정 아무리 뼈저리게 맺힌 원한조차 한갓 꿈결 같다 하여 장한몽이라 일컫는다. 깊이 사무쳐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마음을 뜻하는 장한몽,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로 잘 알려진 번안소설의 제목이 그렇게 정해졌다.

식민지 시기 초입인 1913년에 발표된 조중환의 『장한몽』(한국근대문학관 소장 및 전시 중)은 이수일과 심순애의 사랑 이야기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끼어들면서 벌어진 이별과 원한의 이야기다. 속되게 말하자면 빤하디빤한 삼각관계 속에서 애욕과 파경, 분노와 원망이 뒤얽히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바로 『장한몽』이다. 하기야 사랑이 영원불멸의 존재가 아닐진대 늘 슬픔과 응어리를 품고 있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대체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 뭐길래 사랑을 사랑이라 부르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가? 사랑인 것과 사랑이 아닌 것을 나누는 기준이 있기나 한 걸까? 누가 누구와 사랑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랑이냐 돈이냐 묻는 것도 어리석기 짝이 없다. 훨씬 골치 아픈 물음은 따로 있다. 어떻게 사랑해야 진짜 사랑일까? 얼마나 사무치면 비로소 사랑했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상적인 첫 문장으로 유명한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가끔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를 흉내 내서 말하자면, 어여쁜 사랑은 모두 고만고만하게 아름답지만 쓰라린 이별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아픈 법 아니겠는가? 결국 사랑을 논하는 것은 이별과 원한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호메로스의 고대 서사시부터 현대의 막장 드라마까지 꿰뚫는 독보적인 주제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본다면 『장한몽』은 식상하기 그지없다. 참하고 고운 여주인공 심순애를 둘러싸고 가진 것 없는 고아 이수일과 지나치게 많이 가진 은행 부호 김중배가 경쟁한다. 이수일이 내세울 것이라고는 어릴 때부터 정겹게 지내며 아름다운 미래를 그린 언약뿐이다. 느닷없이 나타난 김중배는 그런 줄 알기 때문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밀면서 신사적으로 접근한다. 이수일과 김중배가 원하는 것은 똑같이 심순애다. 그러니 선택하는 것은 심순애 자신의 몫이며 자기 삶에 책임져야 하는 것도 심순애다.

만약 심순애가 이수일을 골랐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름다운 인연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뿐이다. 정해진 길에는 모험이 없으니 엇비슷하고 고만고만한 이야기밖에 생기지 않을 터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은 심순애다. 심순애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본 최초의 근대 여성이며 주체적인 결단을 내리고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 최초의 히로인이다. 주어진 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심순애의 선택은 새로울 수 있었다. 이수일 말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했기 때문에 심순애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 시대까지 살아남았다.

요컨대 심순애가 깜찍하게도 이수일을 버리고 김중배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절망에 휩싸인 이수일은 저주를 퍼부으며 사라지고, 김중배와 심순애는 불행한 부부가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결과이고, 누군가에게는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여기에서 멈춘다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정작 문제는 그 다음부터 아닌가?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불행에 빠진 심순애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으려고 애쓰면서 심순애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김중배의 부인이면서 마음은 물론이려니와 몸도 내주지 않는 생억지를 부린 심순애는 끝내 남편에게 겁간을 당한다. 문학에서 표현된 최초의 부부 강간이다. 심순애는 김중배의 집을 박차고 나와 정식으로 이혼한 뒤 이수일에게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이수일이 받아들여 줄 리 없다. 참회를 거듭하며 이수일에게 끝까지 매달리는 심순애는 몸도 버리고 마음도 버렸다. 실제로 자살하려고 강물에 뛰어들기도 하고 결국 미쳐 버려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이수일도 온정신은 아니다. 심순애의 배신에 대한 복수로, 김중배와 황금만능 세상에 대한 자학의 몸부림으로 이수일은 악랄한 고리대금업자로 변신했다. 미모의 신여성이 끈질기게 구애하지만 이수일은 그마저도 거절했다. 여전히 심순애 말고는 묘안이 없는 셈이지만 몸을 망치고 마음까지 썩은 것은 이수일도 마찬가지다.

끔찍하다면 끔찍하다 할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몰고 간 것은 두 번 죽고 세 번 죽은 심순애의 눈물겨운 반성과 노력이다. 우여곡절을 거쳐 어쨌거나 심순애와 이수일은 행복하게 재결합한다. 그러기까지 무려 7년이나 걸렸다. 심순애에게는 재혼이 되니, 역시 여주인공으로서는 초유의 사건이다.

 
100년 전의 독자들은 왜 『장한몽』에 열광했을까? 어째서 노래로, 연극으로, 영화로 끊임없이 재생되면서 우리 시대까지 유전되었을까? 이수일을 위해 눈물짓거나 심순애의 비루한 배신에 치를 떠는 것으로,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를 경멸하는 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문제는 주체적인 사랑의 방법론 아닐까? 『장한몽』이 새로운 까닭, 심순애의 인생 역정이 충격적인 까닭은 미치도록 사랑해야 한다는 것, 사랑이란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그리고 생생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미모에 혹하는 사랑이란 얼마나 하찮고 천박한가 말이다. 돈이나 권세를 좇는다든지 정분에 연연하는 사랑이라고 다를 리 없다. 어느 경우든 사랑의 조건이나 결과만 따질 뿐이어서 사랑하는 방법과 과정이 빠져 있다. 누구라 할지라도 연애나 결혼이 사랑의 목표가 아니지 않은가? 그 이후의 삶과 운명을 상상하지 못한다면 한낱 허위에 지나지 않을 터. 무릇 심순애만큼 철저하게 파괴되어야 하며 심순애만큼 처절하게 사랑해야 하는 법이다. 해피엔딩에 이르는 길이 만만치 않은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요 현실이다.

어쩌면 100년 전의 심순애가 우리에게 묻고 스스로 답한 셈인지 모른다. 연애가 곧 결혼인가, 결혼이 곧 삶의 전부인가를. 아무리 사랑이 신성하다고 입으로 부르짖어도 허상이요 기만이라는 사실을 심순애는 너무 일찍 깨달았다. 그래서 사랑이 시작되자마자 이별과 원한이 함께 싹텄다. 아마 사랑을 바라는 한 이별과 원한의 이야기는 계속될 터이며, 『장한몽』도 끊임없이 변주되며 살아남을 것이다.

 
朴珍英, 1972년 서울 생.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최근 저서 『장한몽』, 『번안소설어 사전』, 『신문관 번역소설 전집』, 『번역과 번안의 시대』, 『책의 탄생과 이야기의 운명』 등. bookgr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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