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하는 바다 거인, 망구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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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는 바다 거인, 망구할매
  • 이세기
  • 승인 2015.12.2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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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섬이야기⑧] 이세기 / 시인

 

▲ 마실을 가는 할머니(백아도)

 

▲ 망구할매 전설이 깃든 선접산(선갑도)

▲ 망구할매가 봇돌로 사용했다는 선단여

 

 

내가 태어난 문갑도(文甲島)는 이야기꾼이 많았다. 이야기꾼은 크게 두 부류가 있었다. 섬에서 태어나 일평생을 섬에서 보낸 섬 전설에 능한 이야기꾼이 있는 반면에, 섬과 뭍을 오가며 바깥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이야기꾼이 있었다. 외지에서 들어온 이야기꾼에는 노름꾼, 선원, 장사꾼, 땜장이, 배연신굿을 하기 위해 섬으로 들어온 만신도 있었다. 이들은 날씨가 사납고 풍랑이 높아 배가 끊기면 발이 묶여 섬에서 며칠 묵으며 군불이 지핀 뜨끈한 아랫목에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곤 했다.
 

뱃사람들은 주로 먼 나라와 진기한 물건들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 중에는 물고기 종류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날개가 있어서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날치라는 물고기는 상상만 해도 신기했다. 내게 낙타가 사막을 걷는 아라비아라는 나라가 있고, 태풍을 만나 피항을 해서 가보았다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있다고 했다. 제주도라는 섬에는 바나나와 파인애플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최신 유행하는 장기도 풀어 놓고는 했는데, 팔과 몸을 흔들며 방바닥을 발로 지지는 듯한 춤사위인 트위스트라는 춤도 가르쳐 주곤 했다. 삼일 밤낮 굿을 끝낸 만신들은 아랫목에 앉아서 아이들 운수도 보아주고 덕담도 해주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뭍 이야기는 상상의 나래를 폈다. 이야기가 있었기에 섬에서 겨울밤을 지루한 줄 모르고 지냈다.


깊은 겨울로 접어들수록 섬은 한적하기 이를 데 없고, 즐길만한 놀이나 구경거리가 마땅히 없다. 그래도 아이들 웃음소리만은 가득했다. 술래잡기, 제기차기, 자치기와 썰매타기, 사방치기, 비석 따먹기, 팽이치기, 가오리연과 방패 연날리기, 누룬치기(새총)로 새 잡기 등으로 신명이 넘쳤다. 논둑에 북덕불을 놓고 썰매를 지쳤다. 물거리나무로 자를 만들어 자치기를 했다. 한 겨울이 지나면 손등이 피가 날정도 부르트고 새까맣게 흙때가 배였다. 아침나절에 시작해서 어스름에야 비로소 놀이가 끝났다.
 

섬에 한 대 밖에 없었던 텔레비전도 아이들의 놀이를 빼앗지 못했다. 내 고향 섬에 텔레비전이 들어온 것은 1969년 일이었다. 이장 집 지붕에 텔레비전 안테나가 세워지고 대청마루에 텔레비전이 설치된 날이 기억난다. 화면을 켠 순간 신기하게도 아폴로 11호가 달나라에 가기 위해 카운트다운을 세던 장면과 달에 착륙한 우주인이 화면에 나왔다. 아직도 로켓을 발사할 때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 성큼성큼 달 표면을 걷는 우주인의 모습이 생생하다. 섬에 전기가 없었던 터라 축전지를 충전해야만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걸핏하면 화면이 끊겼다. 얼마 지나자 먹통이 된 텔레비전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오히려 관심을 끈 것은 한밤중에 등잔불이 켜있는 방안에서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이야기였다.

 

“옛날에 망구할매가 살았더란다. 선접산을 쌓아올리다 그만 백 골(골짜기)에서 한 골이 부족한 아흔아홉 골에 산이 무너지는 바람에 그만 화가 난 망구할매가 주먹으로 산을 부셨지 뭐냐. 장구도, 못도, 가도, 각흘도, 굴업도, 선단여 등의 섬들이 사방으로 퍼졌단다.


망구할매는 무지무지하게 큰 거인이란다. 얼마나 큰지 바닷물이 겨우 무르팍에 잠길 정도로 큰 거인이었어. 첨벙첨벙 바다를 걸어서 이 섬 저 섬을 다녔지. 선단여는 망구할매 봇돌이란다. 망구할매가 소변을 눈 오줌물이 바닷물이 되어 덕적군도 바닷물이 마르지 않는 거란다.
 

어느 하루는 수심이 깊은 풍도골로 가서 헤엄을 치며 놀고 있는데, 중우 단속곳에 가득 새우가 든 거야, 그 길로 중우에 가득 새우를 담아 덕적군도로 돌아왔더란단다. 그 때부터 덕적군도에 새우가 무진장으로 들었단다.”

 
 

‘망구할매’ 전설과 선단여 오누이와 마귀할멈, 이무기이야기, 처녀바위, 칠선녀, 말 발자국 이야기 등 온갖 진기한 이야기를 함께 들려줬다. 섬에서 태어난 자란 섬토박이 어머니가 어머니인 외할머니를 통해,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와, 또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통해서 구전으로 누대에 걸쳐 내려온 전설이었다.


덕적군도 탄생 전설인 망구할매 전설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옛적 한양 도읍지가 정해질 때 안산(案山)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태산이 황해를 건너오다 이미 황해도 구월산에서 출발한 산이 먼저 당도하여 안산인 목멱산(木覓山)이 되었다는 소식에 노하여, 그만 폭발한 것이 덕적군도가 되었다는 설 등, 여러 이설이 변주되어서 끊이지 않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새우신이자 풍요의 신인 망구할매의 증좌는 덕적군도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망구할매가 소변을 보기 위해 봇돌로 사용했다는 선단여, 가까이에 새우가 많이 나기로 유명한 문갑도 뒷면어장과 헤엄을 쳤다는 풍도가 있고, 섬을 쌓아 올렸다는 선접산이 있다. 궁궐 기둥으로 사용하기 위해 아흔 아홉 개의 기둥보가 선갑도에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선갑도인 선접은 산이 높고 깊은 계곡과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보기만 해도 신비스럽고 신령스러운 섬이다. 반도골에 용오름이라도 오르면 선갑도에 살고 있는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을 한다고 믿었다. 이 뜬금없는 전설은 아직도 내 가난한 영혼에 깃들어 파닥인다.


나는 망구할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거인 망구할매가 내 곁에서 쭈그리고 앉아 함께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했다. 먼 옛날 섬에 들어와 정착하고 살아온 진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그 할머니에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면 섬의 역사는 어느덧 가슴을 따뜻하게 데운다. 그 때마다 나는 덕적군도가 뜨거운 육친으로 느껴지고 내 몸속에 피로 흐르는 것을 느낀다.


섬은 겨울이 유난히 길다. 군불을 지피고 아랫목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다. 초저녁만 돼도 어두운 것이 섬이다. 저녁이 되면 칠흑 같은 어둠에 파묻히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적적한 시름을 달래려 저녁을 일찍 먹고 밤마실을 가게 되는데, 모이면 자연스레 이야기를 하고 흥이 나면 노래가 나왔다.  


그 중에는 ‘나나니타령’도 있었다. 나나니타령을 하기 위해서는 물동이가 있어야 한다. 물동이에 물을 반쯤 담은 다음에 그 위에 박으로 만든 바가지를 엎어 놓는다. 바가지를 손이나 막대기로 두드리며 물장구 장단을 맞추게 된다. 급하면 아쉬운 대로 큰 대야에 물을 잠방잠방 받아 바가지를 엎어 놓고 두드렸다. “덩덩덩” 공명이 이는 물장단에 절로 신명이 나면 어른들이 방바닥에서 일어나 여럿이 함께 노래하고 어깨춤을 덩실거리며 췄다. 노래는 돌아가면서 불렀다. 대개는 즉석에서 수심가조로 이야기를 지어 부르곤 해서 노래 가사는 그때마다 즉흥이었지만 박자와 후렴구는 같았다.

 


“나나나나 사니로구나, 아니 놀고 뭘 할소냐.”

 


나나니타령을 부를 때는 남자는 아이들뿐이었다. 주로 어머니 동갑내기들이 모여 불렀다. 시집살이 설움이나 섬생활과 갯일의 고단함 등을 노래했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부뚜막에서는 쇠솥에 물이 설설 끓었다. 그 끓는 물에 금방 국수를 삶아 찬 샘물로 씻어낸 다음 성에 낀 동치미 국물을 넣어 말았다. 때마침 출출할 때 나온 밤참 요기로 살얼음이 낀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는 국수야말로 천하 진미였다.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70년대 초입은 유신이라는 괴물이 나타난 시기였다. 칠흑의 어둠만큼이나 온 사위가 어두웠던 때이다. 섬마을에는 뱃일을 나가서 월북하여 돌아오지 않는 이웃이 있었고, 송장이 되어 가마떼기에 덮여 온 동네 사람들도 있었다. 모진 고문을 당한 뱃사람도 있었고, 간첩죄로 억울하게 감옥에 간 섬사람도 많았다.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다리를 잃고 돌아온 상이군인도 있었다. 섬마을 사람들은 제각각 깊은 설움과 원통이 차곡차곡 심중에 쌓였을 것이다. 그래도 생활은 생활대로 이어지고, 바람이 불어도 살아야 하니, 어려운 시대에 용케도 이야기는 힘이 되어주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아직도 내 귓가에는 덕적군도 앞바다를 첨벙첨벙 걸어 다녔다는 거인 망구할매가 이 겨울밤에도 흰 너울을 헤치고 눈보라를 뚫고서 올 것만 같다. 칠흑의 한겨울밤에 들었던 그 숱한 전설과 노래에 스민 즐거움과 슬픔이 아직도 내 가슴 깊이 심금으로 저릿저릿 치밀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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