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가 부진해서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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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가 부진해서 문제라고?
  • 하승주
  • 승인 2016.01.1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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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하승주 / 동북아정치경제연구소 소장

 

한국의 경제현실을 비판할 때 참 자주 나오는 레토릭 중에 하나는 “기업의 투자가 부진하다”라는 말이다.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니 투자가 부진하고, 그래서 고용과 경기가 모두 바닥을 헤매게 된다는 논리이다. 정치권에서는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이 700조원을 넘는데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질타도 곧잘 나온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잘못된 비판이다.

 

첫째로 우리나라 기업들은 투자를 꽤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총투자율은 GDP 대비 28%를 넘는다. 한해 버는 돈의 28%를 투자한다는 말인데 이는 여타의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일본은 22%, 미국은 20%, 독일도 19%에 불과하다. 물론 국가 전체가 투자에 올인하고 있는 중국은 무려 47%나 되고, 인도도 31%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들 국가는 과잉투자 문제로 몸살을 겪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성숙한 경제를 이루고 있는 선진국 경제에서 투자율이 20%를 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총투자율이 28%라는 말은 이미 투자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둘째로 기업이 투자를 지금보다 더욱 많이 한다고 하여 고용이 늘어날 보장이 없다. IT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최근의 기업투자는 기존 인력을 기계로 대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은행이 전산투자를 늘린다면, 제조공장에 로봇을 들인다면, 기존의 인력들은 오히려 갈 곳이 없어진다. 투자와 고용의 상관관계가 점점 깨지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이다.

 

셋째로 현재의 기업환경이 극도로 불확실하기에 기업투자를 강제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간 이루어진 국내 기업들의 M&A 사례에서 ‘승자의 저주’라는 평가가 나오지 않았던 일이 있었던가? 내 기억으로는 단 한번도 예외가 없었다. 기업이 투자를 하면 정작 모두들 걱정을 한다. 왜냐하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극도의 실적부진을 기록하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나 국내 조선 3사를 보라. 모두들 적극적으로 투자를 했던 기업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 생사의 위기에 몰려 있다.

 

기업 투자를 독려해야 한다는 말은 결국 정부가 나서서 기업의 팔을 비틀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다. 기업들은 이미 투자를 하고 있으며, 그 투자는 국민들의 월급봉투를 두껍게 만들기 어려운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나마도 위태위태한 것이 현실이다.

 

정부의 산업정책은 늘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은 조금만 어긋나면 오히려 개입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못한 결과를 낳을 공산도 크다. 지금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자독려 캠페인은 오히려 우리 경제를 더욱 위기로 몰아넣을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다. 대안은 없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궁색하다. 사실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대안이란 현실세계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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