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누구를 위한 경제성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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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누구를 위한 경제성장인가?
  • 박영일
  • 승인 2010.07.2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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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 박영일 교수(인하대 국제통상학부)

   요즈음 정부의 발표를 듣고 있노라면 한국경제는 장밋빛 일색이다.  윤증헌 기획재정부장관은 “(한국경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경제회복세를 이뤄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경제를) 위기극복의 모범사례로 평가한다”고 자랑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5% 안팎에서 5.8%로 상향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은행도 금리를 상향조정하는 등 이른바 출구전략에 나섰다. 우리 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악이라는 경제위기에서 벗어나 정상궤도로 들어서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모두가 반가워해야 할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혹스럽고 꺼림칙하다. 화려한 숫자놀음 속에 일자리와 벌이는 줄어들고 물가는 올라 일반국민들의 실질소득을 줄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바로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원(KDI)이 일반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더라도, 6개월 전과 비교해서 경제가 좋아졌다는 응답이 15.7%인데 비하여 나빠졌다고 응답한 비율은 3배가 많은 46.7%에 달했다. 억지스럽지만, 정부가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을 상대로 너스레를 떠는 것 같아 괘씸스럽기까지 하다.

  
 경제성장률 등 각종 경제지표와 대기업의 실적 등은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

   이제 경제성장의 궁극적 목적을 물어야 할 때다. 무엇을 위한 경제성장인지, 경제의 궁극에 무엇이 있어야 하고, 경제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경제란 인간의 삶의 행복과 진보를 위한 물질적 수단이다. 일찍이 러스킨은 “삶 이외에 부란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그 안에 사랑, 기쁨, 경이의 모든 힘의 근원이다. 가장 부유한 나라란 고귀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인간이 가장 많은 나라다”고 규정했다. 경제성장의 궁극적 목적은 기아와 빈곤을 퇴치하고 사회적 일치와 평화를 이룩하여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의미 있는 삶을 보낼 수 있는 그런 사회를 건설하는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만약에 경제성장으로 인하여 사회경제적 차별과 도덕적 타락,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조장된다면 그런 성장은 아니함보다 못하다 할 것이다.  
  
   수단이란 무엇을 지향하는가에 따라서 선(善)도 되고 악(惡)도 된다. 경제도, 돈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 상황에서 총량적 지표만을 중요시하는 이명박정부의 성장지상주의는 악이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재벌이나 소수 특권층에게만 돌아가는 반면에 빈곤층이 확대되고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09년 말까지 빈곤층 비율은 16.7%에서 18.1%로 증가한 반면 중산층은 60.2%에서 58.7%로 감소했다(여기에서 빈곤층은 OECD 기준으로 가구별 소득의 중간에 해당하는 중위가구 소득의 50% 미만, 중산층은 50% 이상 150% 미만, 고소득층은 150% 이상 소득층을 의미). 하루 밤 사이에 300가구의 이웃들이 빈곤층으로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렇게 때문에 경제성장의 다른 한편에서 계층 간 대립과 반목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나 소외의식, 가진 자들의 끝없는 탐욕과 부도덕이 충돌하여 사회정치 전반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각종 흉악범죄의 횡행, 세계 최고의 자살률은 예삿일이 아니다. 경제적으로도 지속적인 성장기반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중산층의 쇠퇴가 구매력 감소와 내수시장 축소를 낳고 이는 얼마 가지 않아 생산을 위축시키고 경기회복을 도리어 위협할 것이다.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
   
   당연히 경제성장의 최우선 대상은 실업과 가난으로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서민들이어야 한다. 세계적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거의 모든 나라가 최저임금제를 강화하고 임금수준을 크게 끌어올리고 사회보장지출을 확대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선진화를 외치면서 정책은 선진국들과 정반대다 (본인의 칼럼, ‘낙관론에 묻혀버리는 한국경제’ 참조). 여기에서는 정부의 경제성장정책이 사실은 서민들에서 걷어다가 1%의 특권층, 재벌기업, 토건족에게 몰아주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먼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30% 이상 상승한 원-달러 환율의 효과다. 환율 상승으로 재벌계 수출기업의 원화표시 매출액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했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는 2010년 2분기 매출액이 사상 최대로 37조원, 영업이익이 5조원을 넘어섰고 현대·기아차도 최대의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반면에 일반가계의 구매력은 대폭 감소했다. 하청 중소기업도 부담만 늘어났다. 불공정한 하도급 구조로 환율상승으로 인한 원자재가격의 상승분을 납품 단가에 반영시키지 못한 때문이다. 없는 자들이 재벌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한 꼴이다.  
  
   또한 노동자에 적대적이다. 가격경쟁력을 확보한다고 비정규직만 늘려 고용불안이 가중되고 임금은 떨어지고 노동조건이 열악해졌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4110원으로 겨우 2.7% 인상돼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임금이 하락했다. 노동운동도 탄압을 받아 노동자들의 소득도, 사기도 말이 아니다.  
  
   정부의 경기부양책도 마찬가지다. 토건정권이란 비아냥거림에 합당하게 전국에 공사판을 벌려 2009년에만 약 51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다단계 하청구조로 재벌계 건설사를 비롯한 건설족들의 배만 불릴 뿐 적하현상도 일자리 창출도 미미하다. 부자감세와 함께 재정적자만 눈덩이처럼 부풀렸다. 그 귀결은 정부의 복지서비스가 줄어들었고, 머지않아 일반국민의 조세부담이 늘어날 것이다. 부담은 일반국민 몫이고, 수혜는 건설족 몫이다.  
 
   경제성장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기반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의식하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기에 ‘친서민정책’으로 서민의 생활안정에 맞추겠다고 요란을 떨고 있다. 한계는 이명박정권의 계급적 성격이다. 친서민정책의 겉치레가 화려하고 구호만 어지러울 뿐 콘텐츠가 없는 것도, 경제관이나 철학,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회개가 없이 소통이 문제고 홍보가 문제라는 것도 바로 정권의 계급성 때문이다.   
   
   몇 번이고 이야기하지만,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근본문제는 국민총생산(GDP)나 1인당 평균소득 등 총량의 부족이 아니다. 고르지 못하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심화가 문제다. 더욱 중요하게는 그 요인이 공정하지도, 정당하지도, 생산적이지도 않다는데 있다. 경제성장은 반생산적이고 부도덕한 돈벌이 기회를 차단하고, 국민 모두에게 안정된 일자리와 소득기반을 제공하여 자신의 집에서 걱정 없이 자식을 낳고 양육·교육시키고 질병과 노후에 대한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못한 경제성장은 우리 사회에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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