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김치만두 만드는 ㈜해주부용식품
상태바
고기·김치만두 만드는 ㈜해주부용식품
  • 어깨나눔
  • 승인 2016.07.28 1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터민 최창국 대표, "통일만두로 키울 터"


중국 음식인 만두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고려시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두 속에 들어가는 소의 재질과 조리법, 빚는 모양새 등에 따라 종류도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크게 빚어진 만두를 ‘왕만두’라고 부른다. 고려시대 수도인 개성에서 즐겨 먹었기 때문에 만두의 고향으로 개성을 꼽는다.

그러나 왕만두의 고향은 개성이 아니라 해주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오래 전부터 농수산물이 풍부한 해주에서 만두를 크게 만들어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기만두, 김치만두를 만들어 내는 ㈜해주부용식품 최창국(48) 대표의 말이다. 해주에서 나서 성장한 그의 말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노릇이다. 11년 전까지 그 곳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만두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이 회사는 최 대표처럼 대부분 탈북이주민들이 일하고 있다. 2012년 황해도 해주 부용동에서 이름을 따 ‘해주부용식품’을 만들어 4년 째 경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집에서 해 먹던 만두를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완전한 북한식에서 남한의 입맛을 맞추는데 시간이 걸렸다. 60년을 훌쩍 뛰어넘은 세월 탓에 그 만큼 입맛의 차이가 있었다. 시행착오를 거쳐 북한식 모양과 남한식 입맛을 제대로 결합해 성공을 거뒀다.

대량으로 생산한 만두 판매위해  교회, 성당 찾아 다녀

다음은 대량으로 만든 만두를 판매하는 것이었다. 인맥이나 홍보 등 부족한 게 너무 많았다. 최 대표는 그래서 앞만 보고 뛰었다. 교회, 성당 등을 누비고 다녔다. “탈북자가 만든 만두인데 한 번 드셔 보세요.”라고 외쳤다. “일요일에 시식행사하면서 팔아보세요.”라는 답변에 뛸 듯 기뻤다. 품질에 자신이 있었던 만큼 맛을 보면 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회사가 이제는 월 매출 1억 원에 달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인천, 부천, 시흥 등지에서 수원, 성남 등으로 판매망을 넓혀가고 있다. 종교단체에서 관공서, 식당 등으로 거래처도 다양해지고 있다.

탈북자가 만든 식품이라는 동정마케팅이 어느 정도 작용했느냐고 물었다. “물론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 입맛이 보통 까다롭지 않습니다. 동정마케팅과 품질, 위생 등이 결합돼야 인정받습니다.”

최 대표는 품질에서 뛰어나야 성공할 수 있다는 확인을 갖고 있었다. 깨끗한 제조공장을 항상 유지하는 비결이다. 위해방지를 위해 사전 예방적 식품안전관리체계인 햇썹(HACCP) 인증도 받았다.
“식품 안전성에 인증을 받으려면 많은 투자가 필요해요. 수입은 적고 투자비는 많다보니 처음에 직원들에게 잘해주지 못했어요. 탈북자들과 함께 일했는데, 떠난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 부분이 안타깝습니다.”


<최 대표가 취재나온 KBS라디오 작가와 인터뷰하고 있다>

어느 정도 안정된 경영환경이 만들어지고 나니 최 대표의 욕심도 늘어나고 있다. 회사를 더 키워 많은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올 5월에 통일부 지정 통일형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했다. 사회공헌사업을 제대로 펼치면서 더 많은 소외계층의 사람들을 채용하기 위해서다. 탈북자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족도 고용하고 있다. 9명의 직원 중 7명이 탈북자이고, 다문화가족 2명, 내국인 1명 등이다.

2005년 3월 당시 6살 딸과 3세 아들을 남겨둔 채 부인 윤향순(44)씨와 함께 탈북한 최 대표는 남한에 와서 정착하기까지 엄청난 고생의 길을 걸었다.

평양과기대를 졸업한 엘리트였지만 남한에서 학력이 인정되지 않아 연세대 경영학과에 편입했다. 부인은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사다 행상을 하면서 생활비를 보탰다. 대학을 졸업하고 국책연구소 등에서 제안 받았지만 전공한 경영학을 실전에 활용하기 위해 사업에 나섰다.

“연세대 나온 사람이 고기를 써느냐”는 비아냥을 뒤로 한 채 정육점과 ‘해주찹쌀순대국집’을 차렸다. 3년 정도 지나면서 자영업이 안정을 찾을 무렵 부인 윤씨가 신부전증으로 갑자기 쓰러지면서 순대국집을 정리했다.

“사업을 접고 병원비가 없을 때 가장 힘들었죠. 꽃게잡이 배를 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광고지를 보고 배를 타기도 했어요. 너무 힘든 일하다보니 노동의 대가가 무엇인가를 깨달았어요. 힘들어도 일하면 잡생각도 없고 좋았습니다.”

회사가 정상궤도에 오르자 (예비)사회적기업 지정받아

어렵게 모은 돈으로 ‘해주부용식품’을 차리게 됐다. 회사가 정상궤도에 오르자 통일형 (예비)사회적기업 지정을 받았다. 정부에서 일자리창출 등 지원을 받지만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은 것은 일정부분 사회 환원해야 하는 최 대표의 철학때문이다.
“그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일자리창출 등의 사회서비스를 해야 한다는데 가치를 두기 때문에 시회적기업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매달 무료급식소 5군데에 후원하고 있다. 얼마 전 남동구청에서 있었던 400명의 탈북자들에게 전하는 삼계탕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취약계층을 돕는 사회적기업 이념에 따라 10명을 추가로 채용중이다. 새터민과 다문화가족, 경력단절여성, 청년실업자 등 고용 취약계층을 품겠다는 계획이다.

“우리의 소원은 남북통일이죠. ‘통일은 해주왕만두로부터’라는 슬로건을 걸고 해주왕만두를 ‘국민만두’로 키울 생각입니다. 직원들 대우도 풍족하게 해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탈북자 장학재단을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왕만두를 만드는 기업 대표답게 최창국 사장의 포부가 크다. 그의 포부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깝게 들리는 것은 그 동안 남한에서 겪은 고통과 흘린 땀이 가져다주는 신뢰가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