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김 선생님이 요강을 알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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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김 선생님이 요강을 알라나?"
  • 김인자
  • 승인 2017.01.06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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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할머니의 두려움
 
휘청 휘청
저만치서 보라돌이 할머니가 걸어오신다.
불안정한 자세로 질꾸덕 질꾸덕 보라색 잠바에 보라색 가방을 어깨에 메고 보라돌이 할머니가 걸어오신다. 저짝에서 이짝으로 걸어오신다.
내 얼굴을 보시자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는 보라돌이 할머니.
 
"할머니~"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아. 우리 반가운 선생님이네."
"할무니 다리 아파여?"
"왜에?"
"그냥요. 울 할머니 다리 아파보여서여. 다리가 많이 아프신가해서여..."
"늙으니까 여기저기 다 고장나서 그르지. 여기저기 다 아파. 온 몸띵이가 저릿저릿햐."
"그래도 지팽이 없이 걸으실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할무니."
"그렇지이? 선상님 엄니는 잘 계신가?
겨울이라 지팽이 짚고 댕기시기 어려우시겠구만."
"네, 잘 안 나오세요. 사랑터가실 때 외에는요."
"그르니까.어무니도 조심하셔야 해. 18층 할망구 병원에 있잖아."
"18층 할무니가 병원에요? 왜요?"
"목욕탕에서 자빠져서 궁댕이에 쩍 허구 금이 갔대는구만."
"이런 그르셨구나.할무니도 조심하세여."
"그래서 나는 요즘에 화장실도 잘 안가. 자빠질까봐 무서워서. 물도 잘 안 먹어."
"그렇다고 물을 안 드심 안되요 할무니."
"물도 안 먹는데 망할 놈의 오줌은 왜 그렇게 자주 매려운지."그러더니 보라돌이 할무니가 ㅎㅎ 하고 웃으신다.
"할무니 왜 웃으세요?"
"내가 우리 김선상님한테만 얘기하는건데 요즘 내가 어다가 오줌을 싸는지 아는가?"
"어다가요? 할무니?"
"요강에다 눠."
"요강이요?"
"응, 요강. 우리 김선생님이 요강을 알라나?"
"그럼요, 할머니 저 요강 알아요.
어릴적에 우리 외할머니방에도 요강이랑 화로랑 있었는데요."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나는 할머니댁에 가면 내가 꼭 할머니방에 있는 요강을 비어드리고 깨끗이 닦아서 할머니방에 들여놨었는데.
우리 할무니 보고싶다.
"김선생님?무슨 생각! 을 그리 골똘히 하시나?
"네, 요강쓰시던 우리 외할무니 생각이여. 할무니, 요강은 누가 비어드려여?"
"비우긴 누가 비워. 내가 비우지.
우리 애들이 내가 요강에 오줌 싸는 줄 알믄 뒤로 자빠질걸. 그래서 내가 몰래 숨켜두고 쓰지.
ㅎㅎ 이거 나하고 우리 선상님하고만 아는 비밀이야. 우리 며느리가 알믄 난리 난다."
"네, 할무니 물론이지요 비밀~"
"얼릉 들어가 춥다."
"네, 할무니. 근데 할무니 어디가세요?"
"그냥 나와봤어. 답답해서.
은제 이 찬 날이 가려나.
날이 따뜻해야 우리선상님이 책읽어주는거 들을 턴데."
"할무니 책 읽어주는거 좋으셨어요?"
"응, 좋았어. 들을땐 몰랐는데
겨울이라고 선생님이 책을 안 읽어주니까 뭐가 쫌 이상해.
허전하고."
"그르셨구나.저는 할무니들 쉬시는데 괜히 제가 책읽어드린다고 귀찮게 해드린건 아닌지 걱정했어여."
"무신 소리야. 우리가 선생님 책 읽어주는거 을메나 좋아했는데.
선생님이 지방강연간다고 빼먹는 날 이면 우리끼리 심심허다. 그랬었는데."
"정말요? 할무니?"
"그럼, 정말이지않고. 노인정으로 와.
다른 할망구들도 다들 기다리고 있어."
"네,할무니."
 
"그런데 내가 걸을때 많이 절뚝거리나?"
보라돌이 할머니가 조심스레 물으신다.
"왜요? 할무니."
아까 다리 아프시냐고 물은 것이 신경에 쓰이셨나보다.
"아니 그냥. 내가 요즘 들어 다리에 힘이 읍어서 자꾸만 휘청거려.그래서 지팽이를 짚어야하나 으쩌나 해서."
"할무니 지팽이 짚는거 싫으세요?"
"싫지 그럼. 지팽이를 짚으면 나와 돌아댕기는 것도 싫을거 같어.
김선생님 어무니도 그래서 안나오시는거야."
 
말을 마치신 보라돌이 할무니 이짝에서 저짝으로 걸어가신다. 꼿꼿하게 걸으시려 애쓰시며 우리 보라돌이 할머니 질꾸덕 질꾸덕 걸어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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